클라비코드는 현을 금속(탄젠트)으로 쳐 올려 소리 내는 가장 간단한 액션을 가진 건반악기이다. 하프시코드에 비해 음량이 작고 섬세한 악기였기 때문에 가정의 연습용 악기로 용도가 제한되었다. 특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 같은 건반음악의 거장들에게 사랑받았는데 18세기 독일 이론가들은 클라비코드를 연주해야만 진정한 터치를 익힐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클라비코드는 하프시코드와 달리 자유롭게 강약 조절을 할 수 있었고 인성이나 현악기 같은 섬세한 아티큘레이션이 가능하여 진정한 칸타빌레를 연주할 수 있었다. 소리가 나는 동안 탄젠트와 현이 계속 접촉하기 때문에 음량은 작았지만 소리가 나는 동안에도 변화를 줄 수 있었고 심지어 비브라토(베붕)도 연주할 수 있었다.
연주에 사용된 악기는 함부르크에서 활동한 건반악기 명장 요한 아돌프 하스가 1763년 제작한 클라비코드이다. 하스 가문은 화려하게 장식된 프랑스 악기와는 다른 기능적이고 간결한 외형이면서도 구석구석 한 치 빈틈없이 마감하고 음색에 있어서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진정 ‘독일인’다운 악기를 제작했다. 하스가 제작한 클라비코드는 음역이 5옥타브이며 저음은 옥타브로 조율된 이중현으로 구성한 전형적인 대형 클라비코드이다. 네덜란드 상인 얀 식스가 주문한 악기로 1767년 모차르트 부자가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때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이 귀중한 악기는 현재 영국의 유명한 옛 건반악기 컬렉션 가운데 하나인 레이먼드 러셀 컬렉션에 연주 가능한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대 바흐 최후의 제자로 더 잘 알려진 요한 고트프리트 뮈텔은 1728년 함부르크 근교 태생으로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 처음 음악을 배웠다.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 플루트, 건반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한 신동이었는데 겨우 열아홉 살에 음악애호가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2세가 통치하고 있었던 슈베린 궁정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될 정도였다.
배움의 욕구가 왕성했던 젊은 뮈텔은 특별히 허락을 받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게 배우기 위해 라이프치히를 방문했는데 만년의 바흐와는 겨우 세 달 만을 함께 지냈을 뿐이었다. 결국 대 바흐의 마지막 제자로서 한 시대가 마감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바흐가 죽은 후 뮈텔은 슈베린으로 돌아가지 않고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드레스덴의 하세, 베를린의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 함부르크의 텔레만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자신을 아껴주던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2세가 죽자 결국 뮈텔은 슈베린이 아닌 현재 라트비아에 속하는 리가에 정착한다. 리가는 당시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도 살았던 국제적인 문화도시로서 헤르더는 뮈텔을 “Kenner der Tonkunst”(음악의 권위자)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뮈텔은 리가 생활에 만족한 듯 리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소수의 작품만을 남겼기 때문에 동시대 사람들에게도 뮈텔은 낯선 인물이었다. 18세기 영국의 음악사가 찰스 버니는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당시의 음악계를 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겼는데 독일인들조차 뮈텔 작품의 진가를 잘 모른다고 탄식했다. 현재 남아있는 독주와 협주곡을 들어보면 뮈텔의 다양한 시도와 넘치는 창의에 깜짝 놀라게 되며 그가 적은 수의 작품만을 남겼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1756년 누렘베르크에서 출판된 세 개의 소나타와 두 개의 아리오소 변주곡은 뮈텔의 첫 출판 작품이다. 세 개의 소나타는 모두 장조작품이지만 다감양식 시대의 작품답게 다양한 감정으로 충만하다. 소나타의 1악장은 로코코다운 우아함이 넘치며 2악장은 특징적인 반음계와 멜랑콜리가 로맨티시즘을 예감한다. 3악장 드라마틱하고 대조와 변화가 풍부한 빠른 악장으로 뮈텔의 실험정신을 읽을 수 있다. 찰스 버니는 “헨델, 스카를라티, 쇼베르, 에카르트 그리고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를 모두 정복하고 나면 뮈텔에 도전해 볼 만 하다”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는데 세 개의 소나타는 거기에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G장조와 c단조 두 곡의 아리오소는 아리오소 주제와 열두 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감미로움이 넘치는 G장조 변주곡과 장중한 c단조 변주곡이 좋은 대조를 이룬다. 치밀한 변주 구성 속에서 모든 건반 기법과 표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뮈텔의 아리오소와 변주곡은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연상케 하는 바가 있다.
메노 판 델프트는 저명한 귀스타프 레온하르트와 봅 판 아스페런 그리고 오르가니스트 피이트 케이와 자크 판 오르트메르센 등 현재 네덜란드 최고의 옛 건반악기 권위자들을 사사한 바로크 건반악기와 음악학 전문가이다. 1988년 함부르크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 콩쿨의 클라비코드 부문에서 젊은 나이로 우승하여 천부적인 재능을 과시했다. 현재 앙상블 쇤부른, 네덜란드 바흐 악우회 등에서 건반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옛 건반악기와 바소 콘티누오를 가르치고 있으며 네덜란드 레이블을 중심으로 활발한 녹음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18세기 거장을 재발견한 TEKNON레이블의 진정한 승리라고 이 음반을 요약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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