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나츠 얀 파데레프스키(Ignace Jan Paderewski 1860-1941)<BR><BR>파데레프스키에 대해서도 수없이 많은 엇갈린 평가가 내려져 왔다. 다만 확실한 것은 청중을 동원하고 청중을 사로잡는 힘에 있어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마력을 발휘했던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그럭 저럭 피아노를 배우고 12세 때 연주회를 가졌지만, 기본기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그 후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했다. 음악원에서 그는 가능성을 별로 인정받지 못한 볼품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마침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1880년 그는 음악원의 동급생이었던 안토니나 코르사크와 결혼해서 그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불행히도 아내는 출산중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불행을 잊기 위해 그는 바르샤바를 떠나 베를린으로 향했고, 그의 연주 기량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레셰티츠키 문하에서 다시 피아노를 연마했다.<BR>
재생 피아노 장치에 관심이 많았던 파데레프스키는 1906년부터 벨테 미뇽에 녹음을 하기 시작하여, 벨테 미뇽에 14개 그리고 두오 아트에 30여개의 피아노 롤을 남겼다. <미뉴엣>이라든가 <나그네의 노래> 등의 사랑스러운 가락은 엇박자가 주류를 이루어 활기찬 율동이 넘치는 폴란드 무곡 <크라코비엔느> 등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BR>
청중들은 그가 연주한 쇼팽에도 언제나 매혹되었다. 왈츠의 미묘한 루바토라든가 발라드 A플랫 장조와 스케르초 C샤프 단조의 기품 등을 통해 우리는 고도로 성숙된 그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왈츠에서도 파데레프스키는 그의 아름다운 톤과 매혹적인 강약의 변화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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