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프 가브릴로비치(Ossip Gabrilowitsch 1878-1936)/
올가 사마로프(Olga Samaroff 1882-1948)<BR><BR>그 누구보다도 가장 우아한 피아니스트?로 일컬어졌던 가브릴로비치는 1878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가 10세 때 그의 연주를 들었던 안톤 루빈스타인은 그의 뛰어나 음악성에 감탄하면서 피아니스트로 대성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예언했다. 피아니스트로 대성한 루빈스타인은 그를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시켜 제자로 삼은 뒤, 빈으로 가서 레셰티츠키한테 더 배우도록 권고했다. 빈에서 2년 동안 레셰티츠키한테서 피아노를 배운 가브릴로비치는 1896년(18세 때) 아르투르 니키쉬가 지휘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협연하여 데뷔한 다음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순회공연을 가졌다.<BR><BR>올가 사마로프? 또한 가블리로비치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늦게 틔인 피아니스트였다. 그러나 그 재능이 활짝 꽃피었을 때 사마로프는 어떤 피아니스트도 압도할 만한 연주 역량을 발휘하여 갈채를 받았다. 텍사스의 산 안토니오에서 태어났을 때 그녀의 이름은 루시 메어리 올가 히큰루퍼였다. 사마로프는 기교적으로는 이미 누구 못지 않은 기량을 지니고 있었지만, 음악성이 약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마침내 극적인 표현과 서정적인 표현을 시적으로 결합시키는데 성공하여 ?미국이 낳은 최초의 위대한 여류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그 후 10여년 동안(1911~1923) 스토코프스키와 결혼 생활을 하다가 이혼한 후로 다시 연주를 시작했으나 손가락을 다쳐 연주 생활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줄리아드를 비롯해서 커티스 등에서 후진들을 가르치는데 여생의 온 정열을 쏟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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