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피에프 사후 50주년 기념 앨범
프로코피에프- 무서운 아이 (미니 사전 앨범)<p>- 2 CDS WITH 24 TRACKS FROM PROKOFIEV`S OPERA, BALLETS, SYMPHONIES, CONCERTOS, AND OTHER WORKS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Vladimir Ashkenazy)
내가 세르게이 세르게에비치 프로코피에프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52년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였다. 스피아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의 지휘와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의 연주로 협주 교향곡(Sinfonia Concertante)이 초연된 후 무대에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위대한 작곡가 프로코피에프는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Dmitri Dmitrievich Shostakovich)와 함께 생전에 이미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러시아 음악계에서 그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존경과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1948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석상에서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이 로스트로포비치와 여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과 함께 반인민주의적 작품이라는 통렬한 비난을 받은 후, 그에게는 순교자적인 이미지가 더해지게 된다. 나를 포함하여 당시 음악 활동을 하던 예술인들은 공산당을 추종하는 음악가들의 간섭을 극도로 경멸하였으나 프로코피에프를 공개적으로 옹호할 수는 없었다.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MGB(KGB의 전신)가 쇼스타코비치를 수용소로 보내기 위한 문서를 작성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프로코피에프도 이런 위험에 처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말년에는 공산당 체제하에서 자신의 운명을 걱정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있다. 러시아의 유명한 작곡가 로디온 쇠드린(Rodion Shchedrin)이 말했듯이 그 누구도 강제 수용소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영화음악 베를린의 몰락(The Fall of Berlin)에서 스탈린에 대한 찬양으로 작곡가로서의 생명을 유지하였다면, 프로코피에프는 당국의 요구에 순응하여 평화의 수호(On Guard for Peace), 볼가와 돈의 만남(The Meeting of the Volga and the Don) 등의 작품을 써야만 했다. 소련 시민권자였던 프로코피에프는 자유롭게 해외 여행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소련 연방(USSR)으로 돌아온 지 몇 해 안 된 1935-1936년경에 여권을 빼앗기고 1948년에는 그의 스페인 출신 부인마저 강제 수용소로 보내지자 프로코피에프는 소비에트 당국에 협조할 수 밖에 없었다.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이 나의 음악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일부분이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나는 운좋게도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에 대한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지휘자로서 프로코피에프의 관현악곡 대부분을 지휘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피아노 소나타 제6번, 제7번, 제8번을 연주할 기회가 주어졌고 이 소나타 연주곡이 데카(Decca)사의 음반으로 출시되었다.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적 재능 중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하는 부분은 그가 음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의 방대함과 다양성이다. 피아노 협주곡 제1번과 스키타이 모음곡(Scythian Suite)을 통해 음악계의 `무서운 아이(enfant terrible)` 로서의 재능을 보여주면서 교향곡 제5번과 제6번, 오페라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에서는 웅장한 서사성을 표현하고 있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과 발레음악 신데렐라(Cinderella)를 통해 동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Love for Three Oranges)과 수많은 소품에는 괴이하고 풍자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오페라 수도원에서의 약혼(Betrothal in a Monastery)과 그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느린 악장은 따뜻한 서정주의를 추구하는 모습을 담고 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비극성을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그의 작품들은 독특하고 고유한 프로코피에프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프로코피에프의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나에게는 큰 영광이다.
<b>발레리 게르기에프 (Valery Gergiev)</b>
프로코피에프는 21세기 음악계, 특히 러시아 음악계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25년 전 마린스키 극장(전 키로프 오페라 극장)에서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로 데뷔한 이래 프로코피에프의 작품들은 나 자신의 생애에서 뿐만 아니라 마린스키 극장의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