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모든 민족들 중에 가장 게으른 자들, 따라서 남부 유럽 국가 중에 가장 못 사는 나라 이탈리아, 이탈리아 민족은 하지만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던 봉건의 검은 장막을 걷어내며 저 찬란한 르네상스를 꽃피운 것도 그들이었고,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 2차 대전후 전쟁의 참화에서도 `네오 리얼리즘`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영화 언어를 만들어낸 것도 그들이었다. 뿐인가. 폭력적 백인 우월주의 세계관을 기조로 한 미국의 서부영화에 대한 조롱으로 만들었던, 선악의 구분 자체를 뭉개버린 그들만의 서부극 `마카로니 웨스턴`은 얼마나 통쾌했던가.
낭만적인 가곡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70년대 전세계 팝시장을 석권했던 칸초네. 밀바,도메니코 모두뇨, 지미 폰타나…… 뉴트롤스, PFM, Fomula3를 비롯해 록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사운드를 창조해냈던 아트록 밴드들, 신이 내린 목소리 루치아노 파바로티. 열거하자니 끝도 없다.
기실 그들은 지중해 연안의 쾌적한 기후 환경 덕에 갖게 된 특유의 낙천성과 더불어 삶을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는 긍정적 세계관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아름다움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그 긍정적 세계관을 우리는 선명히 기억한다. 바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를 통해서 말이다.
비극적 현실을 너무 희화화한 게 아니냐는 일부 지나치게 심각한 자들의 걱정 속에서 공개되었던 이 영화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배꼽을 움켜쥐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들은 삶에 대한 경건한 자세가 어떤 것인지 로베르또 베니니를 통해 깨달았다. 그 영화를 통해서 감독이자 주연배우였던 로베르또 베니니는 아카데미를 석권하며 단숨에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는 건 익히 잘 알고 있다. 그 때 아카데미 시상식장의 단상에 섰던 또 한 명의 이탈리아인이 니콜라 피오바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사운드트랙으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음악 시장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한 또 한 명의 이탈리아인이 된 니콜라 피오바니는 여러 면에서 엔니오 모리꼬네와 비교가 되는 뮤지션이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낭만적 서정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선 엔니오와 흡사하지만, 엔니오가 선 굵은 멜로디 라인에 힘을 싣는 반면, 니콜라 피오바니는 드라마틱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잔재미를 놓치지 않으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1946년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태어나 올해 56살이 된 니콜라 피오바니는 1967년 피아노로 학위를 받았고, 우리에겐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지도 아래 작곡의 테크닉을 익혔다. 영화는 물론 텔리비젼과 연극, 거기다 콘서트 음악과 챔버 음악까지도 두루두루 섭렵할 정도로 클래식 감각이 뛰어난 재원인데, 작년에는 `Composing by Images`라는 테마 아래 영화 음악의 작곡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할 정도로 지식과 열정으로 충만한 인물이다.
사실 그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영화 감독인 페데리코 펠리니, 난니 모레티 등과 손잡고 수많은 영화에 영감을 실어줬지만, 우리나라에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개봉되기 전까지, 그리고 그 영화의 음악으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그리 친숙하게 거론되던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살펴보면 그 이전에 미처 우리가 주목하지 못 했지만, 문자 그대로 주옥 같은 작품들을 수없이 발견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인터비스타]와 [달의 목소리], 그리고 스페인의 비가스 루나 감독과의 우정어린 작업인 [하몽하몽], [달과 꼭지]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최근엔 난니 모레티 감독의 영화 가운데 [아들의 방]와 [나의 즐거운 일기], 이 두 편은 우리가 새삼 그에게 주목을 하게 된 이유가 된 작품들이기도 하지만, 난니 모레티 감독과 특별한 우정을 주고받는 니콜라 피오바니의 가슴을 울리는 멜로디가 극명하게 살아있는 작품들이다.
본작은 니콜라 피오바니의 대표작인 10편의 영화에서 엄선한 17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져있다. 1986년부터 2001년작까지 근 15년의 세월간 그가 지켜온 음악세계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앨범이다. 각 트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은 북클릿에서는 제작사의 성의가 느껴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