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국민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 드보르작은 스메타나의 뒤를 이어 민족 음악 운동에 헌신하면서도 체코 민족 음악의 영역을 벗어나 세계인이 공감하는 명작품들을 후세에 남겼다.
귀족인 스메타나에 비해 평민 출신이었던 드보르작은 여관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보통 사람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는데, 타고난 음악적 자질과 열정은 그를 음악가의 길로 인도했고 시골 사람들이 느끼는 인간적 유머와 건강한 내음을 바탕으로 표출해낸 따뜻한 인간의 얼은 억지로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려오고 감동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덧 감동의 늪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1891년부터 3년여에 걸쳐 새로운 세계인 미국에서 활동하며 작곡한 신세계 교향곡을 비롯한 첼로 협주곡, 현악 4중주 아메리칸 등은 불후의 명작일 뿐 아니라 민족음악의 영역을 벗어나 누구에게나 밀착된 감정을 유발시키고 있다.
자네트 더버 부인의 초청으로 뉴욕에서 음악원 원장으로 일하게된 드보르작은 특히 흑인들이 부르는 흑인 영가에 매료되어 많은 영가들을 수집했고 조국 보헤미아의 민요와 같이 흑인 영가도 5음 음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고는 새로운 창작 의욕이 불타올라 흑인 영가의 선율을 음악 속에 담아 냄으로서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흑인 영가의 선율이라고 했지만 완전히 자신의 정신 속에 용해된 새로운 음악의 세계였고 사랑과 눈물 그리고 고향을 그리게 하는 한없는 따스함은 듣는 이의 가슴속에 긴 여운으로 남는다.
슈베르트 교향곡 8번 B단조 '미완성교향곡'
영원한 보헤미언으로 불리는 슈베르트는 179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조그만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던 아버지의 13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못한 가세에 형제들은 많아 생활이 궁핍했고 사회적인 환경도 어려워 많은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청년들을 자유분방한 보헤미언적 생활로 끌고 갔는지 청년 슈베르트 역시 하느님보다는 마리아를 더 좋아했고 무엇보다도 억압된 자유에서 낭만의 숲으로 도피시켜 주는 음악의 매력에 사로잡혀 언제나 음악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밤마다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거리를 헤매며 감격과 자극을 찾은 슈베르트는 결국 집에서 쫓겨나 친구의 집으로 옮겼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창작의 불길은 끝없이 타올라 수많은 가곡과 실내악곡 그리고 교향곡을 작곡함으로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낭만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지휘자 에프게니 므라빈스키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의 대명사로 이제는 전설적인 지휘자로 기억되는 에프게니 므라빈스키의 음악적 업적은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이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을 맛보게 했거니와 므라빈스키는 매우 다양한 경력을 소화해 내면서 세계적인 지휘자의 반열에 올랐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의 대부분을 초연했고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슬라브 사운드의 명성을 지켜온 므라빈스키 - 레니그라드 필의 명 연주는 수많은 레코드를 통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1978년에 녹음한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은 새로운 만남이어서 흥미롭기 이를 데 없다. 어찌보면 므라빈스키 - 레닌그라드 필의 슈베르트가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감정의 지나침이 없이 굵은 사운드로 표출해 내는 미완성교향곡은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