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음에도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무관의 제왕” 뮤즈그레인. 당시 이들의 재즈와 클래식을 접목한 실험적인 음악과 매혹적인 보컬은 음악 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이는 곧 열렬한 지지로 나타났다.
뮤즈그레인은 콘트라베이스와 마라카스 등이 동원된 독특한 밴드 구성과 수준급 연주도 눈에 띄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김승재의 보컬이었다. 무심코 듣다 보면, 미성의 남자가 부르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인가 여자로 탈바꿈되기를 반복하는 그의 보컬은 그야말로 성(性)의 경계를 완벽하게 허물어트린다. 여기에 안정적인 고음 처리와 감정 조절까지 뒷받침되어 매력은 배가 된다.
이번 싱글 음반에서도 뮤즈그레인의 음악이 듣는 이의 감성 깊은 곳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김승재의 보컬이다. 이 개성만점의 보컬리스트는 감정의 흐름에 따라 강약을 조절해가며 곡의 심상을 매우 훌륭하게 전달한다. 특히, 싱어 송 라이터 김승재가 직접 지은 보석 같은 노랫말이 유려한 멜로디 위로 흐르는 보컬을 통해 이미지화되는 것은 음악의 또 다른 백미다.
‘마지못해 웃는 내 눈에 떠나는 그대 모습’, ‘새하얀 그대의 뒷모습 그대 점점 흐려지네요 참던 눈물이 나나 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안타까운 순간을 마치 영화 필름 안에 담아낸 듯한 타이틀곡 “웃는다”에서 드러나는 탁월한 시각화는 당시의 애절한 감정을 한 치 흘림도 없이 고스란히 연출하면서 듣는 이의 가슴을 더욱 깊이 아리게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홀로 키워온 ‘달’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자 달” 역시 애처로움이 한 가득 배어나는 구절들이 모여 한 편의 아름답고 슬픈 설화를 탄생시켰다. ‘하얀 달 그댈 비추네/내 몸 야위도록/이 밤이 다 지나면/그대 날 알아줄까’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좀 더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트랙과 뮤즈그레인 만의 색을 느낄 수 있는 실험적인 트랙으로 양분되어 있다. 단아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어 클래시컬한 진행으로 이어지는 “웃는다”가 전자라면, 국악적인 요소와 월드뮤직 사운드를 크로스오버시킨 “그림자 달”은 후자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지극히 동양적이고 애절한 멜로디 라인과 드라마틱한 구성이 어우러진 “그림자 달”은 음악 특성상 오늘날 뮤즈그레인을 있게 한 비운의 명곡 “Into The Rain”의 연장선에 있는 곡이어서 이들의 음악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처음 뮤즈그레인이 등장했을 때 음악 팬들이 환호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음악이 획일적인 가요계의 흐름을 거슬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가장 도전 정신으로 빛나야 할 가수를 꿈꾸는 이들조차 주류 음악 따라 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때, 뮤즈그레인이 보여준 실험 정신과 두둑한 배짱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리고 약 3년이 흘렀지만 이러한 점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보컬은 예나 지금이나 한없이 매혹적이고 음악적 완성도는 더욱 탄탄해졌다.
이번 싱글 음반을 통해 뮤즈그레인은 ‘무관의 제왕’에서 한국 대중음악 신에 확실히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뮤지션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