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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moonn6pence from shootingstar
르그랑블루...(Le Grand Bleu) 이영화만큼... 기억에남는영화는없는것같다. 주인공이누워있는방안에...거꾸로물이차오르던장면... 가끔은...주인공처럼...다른세상을꿈꾼다. 말이필요없는세상.. 끝없이푸르른세상.. No regrets, no tears. Only a strange feeling, sleeping without falling. I'll try another World where the water is not blue anymore, another reallity. Oh, my baby I love you, My lady blue. I'm looking for something that I'll never reach. I seek eternity. No more sun, no more wind. Only a strange feeling, leaving without moving. I'll try another World and the sky slowly fades in my mind. Just like a memory. No more reasons, no fears Only this strange feeling, giving without thinking. Oh, my baby I love you, My lady blue. I'm looking for something I'll never reach. Baby, I love you my lady blue. I'm searching for something that I'll never reach. I seek eternity. 깊은 바다 속으로 - Eric Serra [My Lady Blue] 출처..조병준님(joon6078)Blog 일본어 자막이 담긴 비디오로 처음 <그랑 블루>를 보았습니다. 물론 전 일어를 전혀 못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합니다. 혼자 캄캄한 방에서 비디오를 보다가 울었습니다. 사람도 외롭고 사랑도 외로워서, 그리고 허망해서 울었습니다. 지갑 속에 가족 사진 대신 돌고래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사내, 인간의 몸에 돌고래의 영혼을 지닌 사내, 물 속에 들어가면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산소가 뇌로만 집중되는 사내, 영혼만이 아니라 몸까지 돌고래인 그 사내 자끄가 저를 울렸습니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그 주인공에 제가 왜 그렇게 스스로를 동일시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깁니다. 서른살 초년병 시절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주인공 자끄가 끝내 그 깊은 바다, 그 위대한 푸른 색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게도 그렇게 돌아갈 수 있는 ‘영혼의 고향’이 있었으면 해서였겠지요. 햇빛도 들지 않는 바다 깊은 곳으로 떠나는 연인의 손을 놓아주며 여주인공 조안나가 말합니다. “가세요, 가서 보세요, 내 사랑.” 내게도 그런 여인이 있어 주기를 꿈꾸었던 거겠지요. 그 사내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으면서도 그 얘기를 하지 않고 사내를 깊은 바닷속으로 보내 주는, 그런 사랑을 꿈꾸었던 거겠지요. 그리고 에릭 세라의 음악이 있었습니다. 뤽 베쏭과 에릭 세라는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없는 샴 쌍둥이 같은 관계입니다. 뤽 베쏭의 모든 영화에는 다 에릭 세라의 음악이 동반되지요. 에릭 세라의 신세사이저는 거의 완벽하게 바다와 돌고래와 인간을 표현했습니다. 가장 비자연적이고 가장 비인간적이라는 핀잔을 듣는 전자악기로 말입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했던가요. 그 차갑고 기계적인 전자 악기들이 다른 어느 어커스틱 악기보다 더 절절하게 인간의 영혼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릭 세라의 음악이 그렇고, 쟝 미셸 자르나 마이크 올드필드의 음악이 또 그렇죠. 많은 사람들이 ‘도리도리’ 체조음악으로 오해하고 있는 테크노 음악도 그렇습니다. 정말 제대로 만들어진 좋은 테크노 음악은 거의 명상 음악의 수준으로 깊이깊이 잠수합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 영화의 마지막 부분, 깊은 바다 속으로 주인공 자끄가 잠수해 들어갈 때, 그 배경으로 <세상을 뒤로 하고 떠나며(Leaving the World Behind)>가 흘렀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자마자 성급한 극장의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삐거덕 삐거덕 소리를 내며 극장을 나섰습니다. 바보들!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요. 허겁지겁 극장을 나섰던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이 진행되는 동안에 흘러 나왔던 [그랑 블루]의 마지막 노래,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노래를 놓쳐 버렸습니다. 작곡자 에릭 세라가 직접 노래한 <나의 푸른 여인(My Lady Blue)>이었습니다. 나의 푸른 여인 후회도 눈물도 없네 그저 낯선 느낌 뿐 추락한다는 느낌도 없이, 그저 스며드는 듯한 나는 또 다른 세상을 찾으려 했네 바다조차 청색을 잃어버리는 곳 또 다른 현실을 오, 내 사랑, 당신을 사랑하오 나의 푸른 여인 나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오 내가 찾아 헤맨 것은 영원이었다오 이제는 햇빛도, 바람도 없네 그저 낯선 느낌 뿐 아무런 움직임 없이도 나는 살아 있네 나는 또 다른 세상을 찾으려 했네 이제 하늘은 그저 추억처럼 내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오네 더 이상은 이성도 두려움도 없다네 그저 이 아주 낯선 느낌 뿐 아무런 생각 없이도 나는 살아 있네 오, 내 사랑, 당신을 사랑하오 나의 푸른 여인 나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오 내가 찾아 헤맨 것은 영원이었다오 누구나 저처럼 황당한 꿈을 꾸고 살던 시절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멀쩡한 육상동물이면서 돌고래가 되기를 꿈꾸고, 한 사람이 내 옆에 죽을 때까지 머물러 있기를 바라면서도 떠나고 싶어하고, 뭐 그런 황당한 꿈 말이죠. 그래도, 황당하다고 스스로 알면서 그런 황당한 꿈을 그린 소설들, 영화들, 노래들을 대하며 눈물 흘릴 수 있었던 그 시절은 참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삶이 영화보다 소설보다 더 황당하게 사람을 괴롭히다 보니, 더 이상 그런 황당한 꿈에 눈물 흘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가끔 「그랑 블루」를 턴테이블에 올립니다. 「나의 푸른 여인」을 듣습니다. 이제 더 이상 눈물이 흘러내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슴 한켠이 묵직해지곤 합니다. 그나마 다행한 일입니다. 가슴 한켠조차 묵직해지지 않는 그런 날이 올까 봐 불안해집니다. 결코 찾지 못할 그 무엇을 찾아 그 깊은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어느 사내, 그 사내를 목숨보다 더 사랑하면서 떠나보내는 어느 여인. 황당한 인물들. 황당한 꿈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그런 황당한 꿈을 가끔씩 꾸며 살고 싶습니다. 꿈이 황당하기를 멈추는 순간부터 삶은 황당함의 극에 달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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