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부터 1850년 사이의 5년간은 침묵속에 지냈는데 그는 음악가로서의 생활과 성직자가 되고자하는 갈등속에서 지낸 것 같으며 이 기간동안 주로 슈만과 베를리오즈의음악을 연구하였고 그의 유명한 "성 세실리아"의 "장엄미사"도 이 기간중에 구상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베를리오즈에 의해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손꼽힌 구노의
교회음악의 대표작으로 간주되는 "성 세실리아"의 "장엄미사"는 1855년 여름에 완성되었고, 그 이전에 이미 이곡 중 단편적인 작품들이 들려졌고, 칭송을 받고있었으며, 전국의 초연은 1855년 11월 29일 "성 유스타스"교회에서 이루어졌다.구노 자신은 이곡의 창작과정에서 "음악으로써 심오하고 끝없는 신앙의 세계를표현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더구나 나처럼 보잘것 없는 사람으로서는...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고백했다. 오페라 작곡가인 구노지만 이곡에 있어서는 화려하고 표면적인 극적효과를 피하고 고전적인 자세와 경건한 신앙적 내면을 음의 색채와 감각적인 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1880년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이옹 드 뇌르" 훈장이 그에게 수여되었고, 그후 종교적인 신비에 싸여 말년을 보내다가 1893년 10월 18일 "쌩 크라우"에서 75세에 운명하였다. 그는 후세 사람들에 의해 프랑스 근대음악의 선구자로,프랑스 오페라의 대표자로, 그리고 교회음악의 대가로 추앙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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