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사람`이란 가수의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 바래고 해체된 요즘이다.
여성 가수들을 둘러보면 더욱 그렇다. 지금 여기, 시장에 나와있는 여자 가수들 십중팔구, 그 이상은 `싱어`도, `송라이터`도 아닌, `댄서` 정도로 스스로를 바겐세일 한다. 우리 메이저 음악 신에서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있는가.
도원경이라는 가수가 돌아왔다. 90년대 초반, 보기 드문 여성 로커이자 싱어송라이터로 록 마니아와 대중들을 놀라게 한 인물이다. 요즘 10~20대가 `성냥갑 속 내 젊음아` 라는 곡을 알 지는 의문이지만, 몇 년 전 소리 없이 수많은 라디오 리퀘스트를 받았던 발라드 `다시 사랑한다면`의 절창을 기억하는 이는 적지 않을 것이다. (부활의 김태원이 만든 이 곡은 도원경만의 음색과 창법 외에 더 나은 해석을 상상하기 힘들다.)
도원경의 본령은 록이다. 이번 앨범에서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둔중한 힙합 비트 위에 오토튠 처리된 나른한 보컬을 싣는다. 클럽에서나 나올 법한 일렉트로니카 비트에 디스코와 펑키가 혼합된 댄스 넘버도 있다. 그러나 그의 안엔 여전히 단단한 록이 박혀 있다. 곳곳에서 활약하는 기타 사운드만 꼽는 건 아니다. 시원시원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이 지향하는 곳은 느끼한 R&B나 가벼운 댄스가 아닌, 바로 록이다. 옛 록의 순정한 기반에 다양한 음악적 관심사와 동시대적 편곡을 얹은 앨범이라는 묘사가 더욱 정확해 보인다.
어떤 싱어송라이터의 자위를 위한 실험은 결코 아니다. 이 앨범은 어느 팝 앨범에 뒤지지 않는 강력한 후크(hook)를 갖고 있다. 그녀는 지금 싱어로서도, 송라이터로서도 그 어느 때보다 야심 차다.
오토튠의 사용, 일렉트로닉 힙합의 차용 등 최근 조류를 좇은 인상이 없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 앨범의 매력을 단 한 가지로 요약해낸다면 다름 아닌 도원경의 시원스럽고 관능적인 보컬임에 분명하다.
여기 록의 청량감과 동시대 팝의 감각을 버무린 다섯 곡이 있다. 도원경은 잠시 내려놔도 좋다.
아니, 그녀,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어쩌면 15년 전 `성냥갑 속 내 젊음아`의 당찬 도원경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1. 착한 사람
단 한번에 각인되는 파워풀한 후렴구를 장착한, 미디엄 템포의 파워 발라드. 도원경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트랙을 최선으로 소화한 곡이다. `다시 사랑한다면`의 더욱 록킹한 버전의 속편으로 봐도 좋다.
이별한 지 꼭 1년 되는 오늘 걷는 `바로 그 거리`는 내리는 비만 빼면 그날과 똑같은데, 과연 너는 나보다 착한 사람을 만났을까.
순정한 멜로디.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 도원경 보컬의 매력이 가장 잘 살아난 트랙. 후렴구에 빗소리처럼 쏟아지는 전자기타 사운드가 그녀의 시원스러운 보컬과 꼭 맞아떨어진다.
2. I Do
둔중한 힙합 비트와 적재적소에 차용된 전자 음악적 요소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첫 트랙.
도원경의 보컬은 록과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느린 단조의 악곡을 능숙하게 타고 넘으며 끈적한 감성을 멜로디로 풀어낸다.
3. Hot Like Fire
도원경이 옛 영광에 정박해 있지 않고 다양한 음악적 관심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트랙.
느린 비트와 차갑게 왜곡된 루프, 간헐적인 오리엔털한 음계가 끌고 나오는 관능이 도원경 보컬의 퇴폐적인 카리스마를 만나 독특한 클럽 넘버를 만든다.
자신의 음색이 가진 장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보컬리스트가 보인다.
4. Rock Your Body
도원경식 후크송. 디지털 싱글로 선공개해 주목을 받은 곡이다.
`Rock your body, body / Move your body, body / Feel your body, body / Clap your hands up`의 후렴구가 단번에 각인되는, 매우 중독적인 트랙.
한국적인 멜로디. 중독적인 전자음과 두터운 비트, 후반부에 치고 나오는 남성 랩의 이면에는 역시 스카 리듬과 왜곡된 전자기타 톤 등 록이 분명한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는 독특한 곡이다.
5. Like That
가장 빠른 템포의 본격 클럽 넘버.
펑크(funk)와 디스코의 신나는 리듬을 도입부부터 뿜고 나왔다가 이내 클럽 트랙으로 변신해서 끝까지 달리는 곡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