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댓 마스터피스 (All That Masterpiece)
[명작의 모든 것]이란 뜻의 한국 대중음악 명반 컬렉션이 발매됩니다.
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매혹적인 마스터피스들이
24비트 디지털 리마스터링과 초호화 가사집, 그리고 초판 한정 Gold CD로 부활합니다.
[올 댓 마스터피스 - 신촌블루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촌블루스는 한국 블루스 음악의 개척자요 완성자였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에서 블루스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마땅한 그룹이며, 실제로 한국의 블루스 사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룹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국적인 감성의 블루스를 창시한 신촌블루스는 대중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른바 '가요 블루스' 의 종결자였다.
즉, 단순히 외국 것을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빌어 우리의 정서, 우리의 감성을 담아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때때로 블루스의 정통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한 음악을 구사했다.
특히, 이 팀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엄인호의 기타 연주는 정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때때로 엉터리같은 블루스를 구사한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형식에 얽메이지 않고 창의적인 음악을 구사하는 팀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1980년대 후반 등장한 신촌블루스는 우리 가요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으며, 우리 가요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또한, 블루스 불모지인 이 땅에 블루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면서 블루스를 파급시키고 확산시켰던 오피니언 리더 격인 그룹이었다.
또, 한영애, 김현식, 정서용, 정경화, 강허달림, Mr. 킴 등 한국 가요의 자산이 되는 걸출한 아티스트들이 거쳐 갔거나 배출되었다는 점에서 가수 사관학교로서의 기능도 했었던 팀이다. 그런 즉 신촌블루스는 우리 가요의 든든한 자산이었다.
신촌블루스의 탄생 그리고, 파격적이었던 데뷔 음반
신촌블루스의 탄생은 1970년대 중반 이정선과 엄인호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두 사람이 만나지 않았으면 신촌블루스는 탄생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부산에서였다. 이미 그때 이정선은 어느 정도 명성을 누렸던 유명 가수였다. 반면 엄인호는 부산 일대에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낱 지방 다운타운가 DJ에 불과했다.
그런 그를 우연히 만나게 된 이정선은 그에게서 특별한 매력을 발견했다. 사실 엄인호는 부산 사람이 아니었다. 서울 출신이었는데, 대학 진학에 실패한 후 재수를 하라는 부모님의 요구를 묵살하고 가출해 부산까지 왔던 것. 그리고, 그는 DJ로 생계를 잇고는 있었지만 음악에 대한 혜안과 기타 연주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그의 기타는 스스로도 인정했듯 막기타였지만 흡인력이 있었고 독특했다. 특히, 자기만의 확실한 톤이 있었다. 결국 이정선은 엄인호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를 보살피며 음악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78년 이정선은 엄인호와 함께 그룹 풍선을 결성했다. 이 팀에는 나중에 유명 가수가 되는 이광조도 가세했다. 1979년에는 첫 음반도 발표했다. 멤버들은 이 음반에서 블루스를 시도하고 싶었지만 제작자의 간섭에 시달리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음악을 부르게 되었다.
블루스와 트로트, 포크, 록이 제각각 어지럽게 혼재하는 음반이었고, 결국 음반은 실패로 돌아갔다.
풍선 이후 이정선은 다시 솔로 활동을 했고, 엄인호는 그룹 장끼들에 참여한다.
그리고, 이 그룹에서 엄인호는 그토록 갈망하던 블루스를 연주했다.
하지만 이 팀도 오래가지 못했다. 낙담한 엄인호는 한때 음반사에서 가요 음반 기획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개그맨 전유성의 소개로 알게된 신촌의 레드 제플린을 출입하게 되었고, 급기야 인수까지 하게 되었다. 당시 신촌은 음악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예술하는 사람들에게 문화 해방구와도 같은 곳이었다.
예술 지망생부터 기존의 예술가, 무명의 예술가 등 다양한 계층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서로 교류했다. 당연히 음악하는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이들이 자주 만나 술 마시고 노래하는 곳이 생겼다.
레드 제플린도 그런 곳의 하나였다. 여기서 엄인호는 이정선과 다시한번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앞으로 레드 제플린에서 누가 알아주든 말든 간에 마음가는대로 자유로운 음악을 연주하기로 했고, 두 사람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블루스를 중심에 두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리고, 주변 음악인들을 하나둘 끌어 모았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일일이 멤버들을 섭외했지만 나중에는 김현식의 경우처럼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이윽고 1986년 4월 신촌블루스는 공연을 시작했다.
(나는 당시 공연을 지켜 본 사람으로서 말한다. 그 때 그들은 최고였다!)
강렬하면서도 영감에 찬 연주는 사람들을 열광시켰고, 황홀경에 빠뜨렸다.
반응은 갈수록 뜨거웠다. 엄인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연스럽게 팀 이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곧 신촌에서 블루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연주한다는 의미로 신촌블루스로 명명했다. 이들은 점차 레드 제플린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더 많은 라이브 무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어 음반을 취입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1988년 1월 드디어 신촌블루스는 대망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이 음반에는 이정선, 엄인호를 두 축으로 기타, 하모니카에 윤명운, 드럼에 정태국, Bebot, 베이스에 김영진, 색소폰에 강승용, 보컬에 박인수, 한영애, 정서용이 참여했다.
이 음반은 누구나 인정하듯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두 마에스트로, 즉, 교과서적이라 할 정도로 정교한 음악을 지향했던 이정선과 즉흥적인 필링을 중시했던 보헤미안 엄인호가 서로 절충하여 완성한 음반이다.
음반의 포문을 여는 곡은 엄인호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그대 없는 거리].
본래 제목은 [도시의 밤]이었는데, 제작자인 서희덕의 제안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다음은 이 곡에 대한 엄인호의 회상.
"싸구려 셋방 살면서 정말 가슴 아플 때 만든 곡이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한다는 게 괴롭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매일 술 마시고 그럴 때였다. 근데 아내가 고생해도 좋으니까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다.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갔는데, 이불 밖으로 우리 갓난쟁이의 발이 나왔는데 애 발가락을 보는 순간에 '야, 이거 이렇게 살아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울컥했다. 그래서 다시 나가서 신촌역 앞 포장마차에 가서 해가 뜰 때까지 술을 진탕 마셨다. 이 곡은 그때 막 가사가 떠올라서 쓴 곡이다."
이 곡에서는 한영애가 리드보컬을 담당했다. 한국적인 감수성이 느껴지는 신촌블루스표 블루스의 정수. 한영애의 묘한 (?) 보컬도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이어지는 곡은 가요팬들에게는 이광조의 음성으로 더 친숙한 이정선 작사 작곡의 [오늘같은 밤]. 리드 보컬은 엄인호. 작곡자인 이정선이 직접 부르지 않고, 엄인호가 부른 것은 좀 더 블루지한 느낌의 곡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는데, 애초 의도대로 엄인호는 한결 블루지한 필링으로 소화했다.
[나그네의 옛 이야기]와 [봄비]는 1970년대 신중현 사단의 보컬리스트였던 소울 가수 박인수가 게스트 보컬로 참여해 노래한 곡들. '한국의 제임스 브라운' 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름끼치는 가창력을 자랑하는 박인수는 과연 명성에 걸맞는 탁월한 창법으로 노래했다.
[한밤중에], [바닷가의 선들]은 이정선이 작사 작곡하고 노래한 곡들이고,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연주곡 [Overnight Blues]도 그가 작곡한 곡.
이 곡들을 들어보면 그의 블루스적 감성이 결코 엄인호의 그것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엄인호가 작사 작곡하고 엄인호, 정서용이 함께 부른 [아쉬움]은 이 음반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곡. [신촌 블루스는 '가요 블루스'다] 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 되었을 정도로 대중성이 있었던 곡. 그렇지만 이 곡을 통해 엄인호가 멜로디메이커로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컬리스트로서도 개성적인 보컬을 구사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중간부 강승용의 색소폰도 감미롭다.
끝으로 한영애가 한번 더 리드보컬로 나선 [바람인가]는 엄인호 표 블루스 록의 개가다. 이런 곡은 결코 흔히 만날 수 있는 곡이 아니다. 한영애, 엄인호의 포스에 모두가 환호를 보냈던 바로 그 곡!
신촌블루스의 최대 명반, 두 마에스트로가 함께 했던 마지막 음반
신촌블루스 1집이 세상에 나왔을 때 가요 팬들은 물론 가요 관계자들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자극을 받았다. 가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음악을 좀 듣는다 하는 사람들, 음악 좀 한다하는 사람들은 모이면 신촌블루스의 음악을 화제로 삼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찍이 우리 가요사에서 이처럼 블루스를 전면에 내세웠던 예가 없었고, 또, 그런 가수나 음반이 성공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촌블루스는 1집 음반의 성공만으로도 우리 가요의 골격을 튼튼히 함과 동시에 우리 가요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한 셈이다.
하루가 다르게 인기가 치솟자 이들은 라이브에 진력하면서 2집 음반 작업에도 착수했다. 2집 음반은 1989년 3월 출시되었다.
이 음반에서 이정선과 엄인호, 두 사람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내 최상의 사운드를 뽑아냈다.
이정선, 엄인호, 정태국을 제외한 연주진도 교체되고 보강되었다. 피아노에 김명수, 베이스에 이원재가 가담했고, 키보디스트 김효국과 괴물같은(?) 보컬리스트 김현식도 가세했다.
이 중 김현식의 참여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미 여러 장의 독집 음반을 발표한 상태였던 김현식은 한창 인기 상승중인 가수였는데, 음악에의 갈증을 해소하기위해 전격적으로 신촌블루스에 가담했다.
한편, 봄여름가을겨울도 게스트 뮤지션으로 참여했다.
첫 트랙인 [황혼]은 1982년 산울림의 노래를 유혹적인 분위기로 리메이크한 곡인데, 여성 보컬리스트 정서용의 미친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곡. 그녀는 한영애의 공백을 메우며 눈부신 가창을 들려준다. 마치 듣는 이를 빨아들일 듯한 기세다. 그녀는 이정선이 작사, 작곡한 [빗속에 서있는 여자]도 불렀다.
[바람인가 빗속에서]는 엄인호가 쓴 곡인 '바람인가' 와 이영훈이 쓴 '빗속에서' 를 접속곡으로 완성한 것. 엄인호의 진득한 보컬에 김현식도 추임새를 넣으면서 중량감을 더해주었다.
흡사 제프 벡을 연상시키는 서릿발같은 기타 연주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정선의 자작곡 '산 위에 올라' 는 파워풀하면서도 리듬감 넘치는 곡. 이정선 자신의 포크 히트곡을 완전히 해체해 재구성했다.
이정선은 자작곡 [아무 말도 없이 떠나요]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데, 비단 두 곡 뿐만 아니라 음반 전체에 걸친 이정선의 작편곡 능력은 놀라울 정도다.
신촌블루스에 처음 참여한 김현식은 두 곡을 부르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엄인호의 곡이다. 두 사람은 즉흥적인 감정을 중요시한다는 측면에서 두 사람은 통하는 데가 있었고, 충동적인 개인 성향도 닮은 데가 많았다. 엄인호는 김현식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엄인호는 김현식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보컬의 전형이자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소울틱하면서도 영감에 찬 목소리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이다.
김현식이 부른 곡 중에는 [환상]도 좋지만 [골목길]은 말 그대로 압권이다.
김현식 이전 여러 명이 취입했던 [골목길]은 평범한 노래에 불과했지만 김현식이 부르고부터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즉, [골목길]은 김현식으로 인해 진정한 가요 명곡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은 음반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감상하기에는 좋은 나긋나긋한 보사노바 트랙.
그러나, 솔직히 이 곡은 신촌블루스가 아닌 봄여름가을겨울 자신들의 음반에 수록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음반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한영애 작사 엄인호 작곡의 [루씰].
이 곡은 1988년 한영애에 의해 발표되어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곡. 여기서 엄인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하는 한편 기교를 넘어선 영감어린 기타 연주로 전율을 선사하고 있다.
전문적인 기타 교습도 받지 못했고, 제대로 된 작곡 수업도 받지 못했던 그가 이런 곡을 쓰고 연주하고 노래했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그는 과연 천재였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앞서 다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신촌블루스 1, 2집은 한국적 블루스의 정의를 내려준 역작이자 그들 최대의 명반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요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고 값진 유산이 된, 음악사적 가치가 높은 음반이다. 최근 7080가요가 인기를 얻고, 세시봉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신촌블루스도 우리 앞에 다시 설 수는 없는 것일까?
만약 오늘 이렇게 리마스터링되어 세상에 다시 나온 음반들이 큰 호응을 얻게 된다면?
어쩌면 음악의 신이 그들을 움직여 우리 앞에 다시 서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엉뚱한 기대일 수 있겠지만 누가 또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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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은 명예의 전당에 보관된 먼지 쌓인 음반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듣는 음반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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