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르게 변하는 음악 트렌드 속에서도
꾸준히 서사적 플롯을 지켜내며 구현해 낸
한편의 수필같은 음악영화(music film),
싱어송라이터 더필름의 정규 3집 네번째 에피소드
"꼭 붙잡아 준다 했잖아."
2011년 새 해 '힘을 내요, 그대'를 발표하며 힘차게 출발했던
싱어송라이터 더필름이 다시 그의 정규앨범 작업을 재개했다.
이번 앨범은 그의 정규 3집의 네번째 에피소드에 해당한다.
더필름은 작년 초 여러 인터뷰와 방송에서 자신의 정규 3집을 '길고 긴
자신과의 작업'이 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남녀의 사랑에 관한 역사를
서사적인 구조를 갖추어 마치 한 편의 수필같은 뮤직필름(music film)으로
만들 계획이라 했는데, 현재 이와 관련하여 20개월간 더필름은 세 장의
에피소드를 통해 총 13곡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네 번째 에피소드도
정규 3집 프로젝트의 연장선 상에 있으며, 더필름이 추구하는 뮤직필름을
드라이브 여행 으로 비유한다면 이번 에피소드는 본격적인 가속페달을
밟는 시점이 되겠다.
더필름은 세번째 에피소드부터 영화에서 쓰이는 씬(scene) 부호(#)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번 에피소드는 5번째 장면부터 8번째 장면에 해당한다.
"꼭 붙잡아 준다 했잖아"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앨범 타이틀은 작년초,
더필름이 출간하여 1만부 가까이 판매되었던 책,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구절 중 한부분이다.
네번째 에피소드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기자기한 제목들.
책을 낼 정도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본인 스스로도 가장 만족해 한다는
보기만 해도 감성적인 제목들이 에피소드의 감정을 잘 전달해 주고 있다.
네번째 에피소드의 효과적인 감상을 위해서는 바로 전작인 세번째 에피소드의
트랙들과 연관시키면 스토리를 더 잘 그릴 수 있는데,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우리 다시 연락해요'를 통해 그 사람과의 추억을 회상한 주인공은 시간을
돌려주는 약을 먹고 (시간을 돌려줘) 3년전 과거로 돌아간다. 네번째 에피소드는
그렇게 3년전으로 돌아간 주인공이 사랑하는 연인을 처음 만난 시점으로
청자(聽者)를 안내하고 있다.
트랙을 살펴보자면 에피소드의 첫 곡은 그들의 3년여의 사랑을 언급하는
첫 마디, "저기요"로 시작되는 따뜻한 피아노와 휘파람이 인상적인 스탠다드
재즈팝 '저기요, 이름이 뭐에요? #5'로 출발한다. 마치 로맨틱 코미디에
어울릴 것 같이 두 사람의 만남을 다소 엉뚱한듯 따뜻하고 예쁘게 바라보는
첫 곡이 끝나면, 사랑을 겪고 난 후의 모습인 듯한 관조적 독백으로 시작되는
'대관람차 놀이 #6'가 펼쳐진다. 더필름이 그간 피아노소품집 등을 통해 발표해온
인스트루먼탈 팝(Instrumental Pop)이 놀이동산에 놀러온 연인들의 현장음과
절묘하게 섞여 있는 신나는 곡이다. (이 곡의 끝자락에서 주인공이 읊조리는
"하나, 둘, 셋"은 대관람차가 하늘 꼭대기에 닿았을 때 주인공이 연인에게
키스하기 위해 마음 속으로 세는 소리로, 자연스럽게 이 앨범의 타이틀곡
'우리의 첫 키스는 하늘 위에서 해 #7'의 브릿지 (Bridge)역할을 하고 있다.)
네번째 에피소드 타이틀곡에 해당하는 '우리의 첫 키스는 하늘 위에서 해 #7'는
첫키스는 집 앞이나 영화관처럼 흔한 곳이 아닌 하늘 위에서 하자는 주인공의
풋풋한 마음이 표현된 곡으로 고고 리듬 위에 브라스와 따뜻한 어쿠스틱 기타가
얹혀진 감성적인 트랙이다. 따뜻하고 밝은 멜로디에 슬프고 아련한 가사가 오묘하게
느껴지는 이 곡은 더필름 앨범에서 만나기 힘든 모던락인 점도 이채롭다. 마지막
트랙이자 아웃트로에 해당하는 '처음부터 지금 고백하는 이 순간 까지 #8'는
에피소드 끝자락에서 연인과의 사랑의 시작됨을 알리고 있다. 불을 꺼놓고
친구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피아노 하나만으로 연인에게 따뜻한 고백을 하는
느낌의 이 노래는 더필름 1집의 From To를 재해석 한 곡이다.
2010년 1월 첫번째 에피소드 '두근두근'을 시작으로
두번째 에피소드 'I'm Sorry..' (2010년 4월), 세번째 에피소드 '우리다시 연락해요'
(2010년 6월)까지 줄기차게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형식을 구현해 내기 위해 애썼던
더필름은 그 이후 피아노 소품집과 가수 테이와의 작업, 슈퍼스타K출신 반광옥과의
작업등으로 잠시 정규 3집 프로젝트와 멀어져 있었다. 충분한 휴식을 발판으로
네번째 에피소드를 발표한 더필름은 연이어 11월에 다섯번째 에피소드를 진행할
예정이며 타가수들과 의 앨범작업도 진행 중이다.
날이 갈수록 빠르게 변하는 음악시장과 더욱 더 심각해 지는 음악 프로그램의
예능화 속에서 여기, 20개월 가까이 자신의 방식으로 꾸준한 발자욱을 남기고
있는 한 사람의 몸짓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