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 - Lust For Life.
처음 이들의 목소리가 2009년에 들렸을 때, 인디 씬은 얼핏 단순한 복고 재생이라고 판단될 수 있는 그 노래들에 조금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즉각적이고도 뜨거운 반응을 보여줬다. 스타일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굳이 소속을 분류하자면, 그 곡들은 정말 60년대 팝과 90년대 그런지가 21세기 샌프란시스코에서 어쩌다 이뤄낸 즉석만남 같은 것이었고, 보기에 따라서는 그 자체로 그냥 끝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그 노래들을 ‘누가’ 부르는가가 새로운 관건으로 떠올랐다. 정확히는 ‘어떤 배경을 가진 어느 누가 부르는가‘였다.
'소녀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다 큰 남성 듀오는 곡의 소스를 제공하는 1인과 그것을 가공하는 1인으로 꽉 차게 돌아가는 분업 체제이다. 그 중에서도 원 소스 제공자인 크리스토퍼 오웬스(Christopher Owens)의 존재감은 그가 살아온 길지 않은 인생의 족적이 거의 스캔들에 가까운 남다른 경험의 연속이었던 지라 유독 두드러졌다. 이제는 상당히 알려진 얘기지만, 그는 "신의 아이들"이라는 몹시 폐쇄적이고 수상쩍은 유사 종교적 컬트 집단에서 청소년기까지를 보내다 십대 때 그곳을 탈출했고, 텍사스에서 펑크에 한참 심취했다가 어느 부유한 석유 부호의 비서 겸 예술지망생으로 몇 년간 일했고, 그러다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음악과 약을 하다가 지금의 파트너 쳇 JR 화이트(Chet JR. White)를 만나 걸스를 결성하고 지금에 이른다. 이렇게 요약해놓고만 봐도 서른 몇 해 인생으로는 꽤나 굴곡진 편인데,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면 인간극장 다큐드라마를 제작해도 시즌 3정도까지는 만들 수 있을 만큼 그 전환의 면면이 극적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절대 입에 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종교집단 시절의 일부 기억들과 스스로 거의 매번 솔직하게 입에 올리는 자신의 약물 경험 및 양성애적 태도는 공히 걸스의 음악을 듣는데 있어 충실한 액세서리 역할을 해왔다 본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각성 - FATHER, SON, HOLY GHOST
[Album]만큼이나 [Father, Son, Holy Ghost]이란 타이틀도 참 무시무시하다. 또한 편리하기도 하다 -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이는 자신의 울트라 종교적 유년기를 투영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잖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이를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기독교식 독해로보다는 보다 원초적인 개념, 즉 ‘나를 이루는 근원과 정체성과 영혼’으로 보아주길 바란다. 성서적이진 않을지라도 영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성서는 의외의 지점에 레퍼런스로 숨어 있다.
첫 싱글인 ‘Vomit’은 제목이 주는 심히 비위생적인 심상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용은 떠난 연인을 찾아 한밤중에 미친 듯이 온 세상을 찾아 헤매는 실로 절절한 가사들로 가슴이 먹먹해질 지경인데, 이는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라는 잠언 26장 11절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자기 따윈 돌아보지도 않고 찾아주지도 않는 연인을 부질없이 뒤쫓아 매달리던 자신의 옛 행각을 두고 그건 미련한 짓이었다며 자조적으로 붙인 타이틀이지만, 노래는 흡사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듯 절절하다. 거기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여성 코러스까지, 이 곡은 블루스로 시작해 가스펠로 끝나는 일종의 영적 체험이다.
'Vomit’과 함께 ‘Die’는 이들의 첫 작품인 [Album]보다도 더 이전에 쓰여졌던 초창기 작품 중 하나로 이번 앨범에서 가장 헤비한 트랙이다. 멜로디라인이 딥 퍼플의 ‘Highway Star’와 놀랄 정도로 닮았는데, 이것이 의식적인 차용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기본을 이루는 기타 리프는 오웬스가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Oh Well’을 염두에 뒀다고 언급한 바 있다. 화제의 데뷔 싱글 ‘Lust For Life’의 첫인상을 재현하는 트랙은 역시 앨범의 첫 곡인 ‘Honey Bunny’인데, 블루스에 가스펠에 하드록, 컨트리 풍까지 아우르는 여타 수록 곡들에 비하면 거의 깜찍할 정도로 곡이나 가사나 다 상큼 발랄하다.
사실 오웬스가 만든 곡들에서는 상당히 자주 일말의 여성적인 감수성이 저변에 깔려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혹시 그가 정말로 여성성을 의식적으로 발현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아직 모성, 혹은 모성의 대체제로서의 여자들과의 관계에 있어 분리불안을 극복 못한 유아기적인 단계를 스스로가 떨치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Honey Bunny’는 그래서 이 앨범의 다른 수록 곡인 ‘My Ma’(아직 그 종교집단 소속인 실제 그의 엄마와의 관계 회복이 도모되고 있는)와 ‘Magic’(비슷하게 낙천적이고 희망적인 러브송이라는 점에서) 등과 묶음으로 들었을 때 하나의 맥락을 이룬다.
'상처 입은 아티스트’ 역할을 연기하기 딱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걸스는 전통적인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연출하기 보다는 차라리 언제든 폭발하며 치고 나올 수 있는 한 자락 치명적인 그늘을 가슴 속에 숨긴 채, 화창한 샌프란시스코 한낮 거리를 짐짓 경쾌하게 걸어나가는 쪽을 택할 친구들이다. 그 뒷모습은 어딘지 쓸쓸하고 애처롭지만, 정작 돌아보며 함박 웃는 쪽은 그들인 바, 다시 말하지만 이들의 음악적 스타일은 펑크적으로 재해석된 비치 보이스(Beach Boys) 따위가 아니라 그 미소의 깊이만큼의 파토스여야만 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