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을 전하는 ‘이지 리스닝’
영준의 솔로 데뷔 앨범 [Easy]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멤버 영준이 솔로 정규 1집 앨범을 선보인다. 정엽, 성훈의 뒤를 이어 멤버 중 세 번째로 솔로 정규 앨범을 선보이는 영준은 이번 앨범을 통해 솔로이스트로서의 가치를 입증해 보이고 있으며, 강렬한 성공 또한 예견케 하고 있다. OST나 앨범 수록곡 중 솔로 퍼포먼스를 통해 인정받았던 그의 대중성이 고급스러운 사운드와 오묘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 근래 들어 볼 수 없었던 낯선 친근함에 마음이 살랑거린다.
선공개 되었던 ‘꽃보다 그대가’의 두 가지 버전을 포함 총 9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에는 외모에 어울리게 묵직하면서도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영준 특유의 목소리가 알차게 담겨 있다. 전홍준과 함께하고 있는 본인의 작곡, 작사 팀 ‘제이앤준(Jay n Jun)'의 역량 또한 극대화 되었으며, 피처링 뮤지션 래퍼 쌈디와 색소폰 연주자 장효석의 참여 또한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음악
세련된 90년대 사운드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이라는 음악 장르가 있다. 대개는 듣기 편안한 BGM용 연주곡들을 칭하지만, 1960년대 한국 음악씬에 상륙한 ‘이지 리스닝’ 음악들은 다채로운 세속 음악들과 결합하면서 1990년대 팝발라드 음악의 모태로 자리할 수 있었다. 클래식과 다른 조촐한 편성의 관현악,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가 특징인 ‘이지 리스닝’ 성향의 음악들... 영준은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과 방향성에 있어 ‘이지 리스닝’이라는 용어에 주목하고 있다.
1990년대 음악을 들으며 성장해 왔던 음악적 환경 속에서 본인이 느꼈던 것처럼, 편안한 느낌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영준은 누구나 쉽게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음악들로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꾸몄다. 들어서 좋은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명료한 상식이 바탕이 된 연유로 앨범의 타이틀이 [Easy]다.
영준의 이번 앨범은 ‘이지 리스닝’을 지향하는 그의 성향처럼 듣기 편하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멜로디는 단순하며, 사운드는 복고적이다. 그렇다면 음악적 완성도는 어떨까? 다행히도 부드럽고, 단순하고, 복고적이면서도 음악적 수준은 만족스럽다. 팝재즈의 고급스러운 요소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세련미를 확보했기 때문. 소울을 최소화하고 담백한 팝을 표현한 이번 앨범에서 옅은 블랙 컬러가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브라스어필 보이스
물처럼 흘러가는 9 tracks
고음역대까지 폭넓은 음역대를 소화하면서도 편안함을 잃지 않는 타고난 보컬리스트 영준. 나얼, 정엽에 못지않은 그의 매력적인 솔로 퍼포먼스가 너무 늦게 시동을 걸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브라스와 너무 잘 어울리는 영준의 따뜻한 목소리가 담긴 9곡을 소개한다.
1. Serenade
- 연주곡으로 수록될 인트로 곡이었으나 보컬이 담긴 깊이 있는 곡으로 재탄생 되었다. 작업실에서 보컬과 기타만으로 작업한 러프한 곡이지만 러블리한 느낌과 오묘하게 맞물려 있어 만족을 전했다는 인트로 곡. 2번 트랙부터 이어지는 메인 트랙들을 살리기 위해 전체적인 레벨보다 살짝 낮은 볼륨으로 마스터링 했다.
2. 휴(休)
- 앨범 타이틀에 가장 잘 어울릴 법한 유쾌한 휴식을 느낄 수 있는 트랙. 영준의 바람 같은 보컬은 물론, 장효석의 소프라노 색소폰 피처링과 찰랑거리는 피아노 애드리브가 넣어 두었던 여행 욕구를 마구 끄집어낸다. 메이저 씬의 뮤지션이 표현하는 재즈 어필, 참 오랜만이어서 더욱 반갑다.
3. 꽃보다 그대가
- 앨범 발매에 앞서 선 공개 되었던 곡. 가벼운 흥겨움으로 어필하면서 싱글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꽃보다 그대가’라는 가사처럼 섬세한 영준의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며, ‘술보다 그대가’라는 가사처럼 묵직하고 푸근한 남성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
4. 잊어요
-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영준이 표현하고 싶었던 1990년대 팝발라드 음악과 가장 닮아 있는 곡이다. 키보드와 현악 스트링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고 가며 감상(感傷)의 속된 감성을 전형적으로 표현했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발라드 곡임에도 앨범의 타이틀로 매력으로 뽐낼 수 있는 이유는 1990년대 어느 발라드 곡에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발라드에 너무 잘 어울리는 영준의 유니크한 목소리 때문. 이별의 상심을 경험해 본 많은 남녀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5. She
- 재즈 브러쉬로 연주하는 드럼 사운드가 나른한 편안함으로 다가오는 곡. 가늘게 읊조리는 영준의 보컬에서 정엽스러움이 느껴지며, 크리스 보티의 곡을 연상시키는 여백 가득한 트럼펫 사운드가 아름다운 배경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운드가 따뜻한 봄을 기대하게 만든다.
6. 그랬으면
- 두터운 악기 편성이 돋보이는 감성 발라드 트랙. 두터운 악기 편성 때문에 다른 곡들보다 진중한 분위기가 강하다. 어쿠스틱 기타와 키보드로 곡의 문을 연 뒤 브라스 악기로 슬픔의 강도를 더했다.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 곡이지만, 리듬감을 잃지 않는 아기자기한 연주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7. 눈 내리는 밤
- 겨울의 상심을 느낄 수 있는 발라드 곡. 흰 눈이 내리던 날 나누었던 사랑의 기억을 이미지로 풀어내고 있다. 현악 스트링을 잔잔하게 깔아 드라마틱한 서정미가 곡의 끝부분까지 지속된다. 클라이맥스를 주지 않고 툭툭 내던지는 보컬과 연주가 과거의 기억에 대한 체념과 회한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클라이맥스 없이도 심심하지 않은 영준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곡.
8. 꽃보다 그대가 feat. Simon D
- 힙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브라스 위주의 소울 사운드에 랩이 얹어졌다. 쌈디가 사랑스러운 곡의 분위기에 대만족했다는 이 곡은 영준은 물론 쌈디에게도 가치 있는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자 비트의 향연이라 할 만한 힙합씬에서 경험하기 힘든 따뜻한 느낌의 피처링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꽃보다 그대가’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사랑스러움’이 넘쳐나는 러브송을 완성한 영준과 쌈디. 남자다운 매력으로 가득한 두 뮤지션이 이렇게 부드러운 곡을 만들어 내었다는 부분이 재미있다.
9. 작별
- 넘실거리며 달려 온 앨범의 끝에 자리한 차분하고 쓸쓸한 마무리 곡. 여백 가득한 피아노 연주가 앞뒤의 슬픈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지만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에는 여전히 리듬감이 살아 있다. 피아노 사운드 위에 살포시 얹히는 첼로의 깊고 진한 색이 영준의 목소리와 많이 닮아 있다.
리드미컬한 연주 위에 얹힌 영준의 목소리에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첼로처럼 가슴 저 밑에 있는 감성까지 다가와 만져 주는 영준의 목소리. 편안함과 깊은 감상이 공존하는 그의 곡들에 많은 대중이 빠져들 것임이 확실해 보인다. (글/대중음악 평론가 이용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