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하고 좀 웃긴 이발사의 두 번째 EP - ‘좀 웃긴'
기타 한 대로 문득 EP 앨범 한 장을 던지듯 툭 내놓았던 이발사-윤영배가 두 번째 EP를 내놓는다. 빨간 고무 대야,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 하얀 빨래비누와 빗자루가 널브러진, 어쩐지 낯익은 마당 한 켠의 풍경. 말수 없고 상냥하지 않기로는 앨범 커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쩐지 낯익고, 어쩐지 자연스럽다. 이 “어쩐지"란 표현은 그렇게 내내,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EP라 하지만 10개의 트랙이 빼곡히 들어찼다. 가만 들여다보니 5곡이 두 가지 버전으로 담긴 것이다. 편곡이 다른 버전도 아니어서 어지간히 귀 밝은 청자가 아니라면 그 차이를 알기 쉽지 않을 두 가지 버전의 차이는 바로 마스터링에 있다. 그 미세한 차이를 둔 두 버전의 노래들을 수록한 까닭은 그 차이의 의미를 고민하는 이들이 이 음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녹음 기술과 소리의 후 공정이 발달할수록 원래 그 처음의 소리와 전혀 다른 소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마치 평범한 사진 한 장이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광고 사진과도 같은 찬란한 색깔과 명암을 지니게 되듯, 소리도 디지털에 의해 원형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성형’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오토튠 같은 노골적인 문제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진짜 보다 더 흔해진 성형된 소리들에 의해 진짜 소리에 대한 도전과 의구심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윤영배와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환경 가운데 연주자가 연주 현장에서 담고자 한 감성의 고저가 녹음실의 훌륭한, 하지만 주관적인 엔지니어에 의해 왜곡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하여 마스터링의 가장 본래의 목적인 표준 볼륨을 맞추는 작업 외에는 그 어떤 효과나 조탁도 가미하지 않은 버전의 노래들을 (그나마 최소한의 범위에서) 관습적인 스타일의 마스터링 버전과 함께 싣기에 이른다.
물론 이것이 완전한 본래의 소리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이것은 어떤 선언적인 의미, 그들에게 소리가 어떠해야 하는가, 음악이, 표현이, 나아가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하는 물음까지 닿는다.
지난 앨범은 기타 한 대가 이상하리만치 풍성했다면 이번 앨범은 몇몇 친구들의 소리가 덧붙여지는데 이상하리만치 비어 있다. 그 채워져 있지만 ‘어쩐지' 빈 느낌의 소리는 또한 ‘어쩐지’ 구면이다. 참여자의 이름을 읽는다. 조동익. 태연하게 또, 십 수 년 전 무대 뒤, 핀 조명이 떨어지지 않는 그늘에 서서 무심하게 베이스를 치던 모습처럼 슬그머니 들어와 앉은 반가운 이름. 첫 EP 이후 일 년 남짓의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간, 하나음악이라는, 다시 되새기기 벅찬 이름 아래 모였던 사람들이 다시 하나 둘 모여 ‘푸른 곰팡이'라는 레이블을 살려내었고, 그들이 또 슬그머니 어울리며 뭔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이름 아래 음반이 나오고, 공연이 열렸다. 그리고 이 음반, 또 당연한 일처럼 그 이름을 달고, 그들의 이름을 담고 나타났다.
제주에서, 편리한 아파트의 도시 가스 난방과는 거리가 먼, 직접 나무를 해서 그 다운 방식으로 겨울을 나는 윤영배는 오랜 그의 이웃, 조동익의 집에서 노래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마침 여행을 온 친구이자 훌륭한 기타리스트 이상순은 여기 자연스럽게 가담하여 자신의 연주를 담았고, 이를 지켜보는 또 다른 이웃 장필순은 빈 깡통에 마른 파스타를 담아 만든 쉐이커 소리와 자신의 보석 같은 목소리로 함께 한다. 그리고 마침내 조동익도, 그 내성적이고 따뜻한 베이스와 낮은 음성을 보태어 태연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한 곡, 또 한 곡을 만들어내었다.
“긴 안목이라 듣는다/김 아무개 라고 말해도/내 성격은 꽤 유쾌한/편이라고 생각해왔다”는 ‘좀 웃긴’ 농담 같은 윤영배의 노래는 시종일관 자신만의 세계를 지어 간다. 자유롭지만 완고한, 편리하거나 친절하지 않지만 거짓 없는 그의 세계는 “낮게 나즈막하게/작게 자그마하게” 시작되지만 “높게 까마득하게/깊게 아득도하게” 완성된다. 이 무심한 세계는 매끈하지만 어쩐지 차가운 시멘트가 아닌 거칠지만 따뜻한 나무로 축조된다. 그 안에 ‘어쩐지’ 망각해버린 바람이, 소나기가, 숲이, 자전거가, 새 한 마리가, 침묵이, 낮잠이, 그리고 농담이 살아 있다. ‘어쩐지’ 그리운 그것들 말이다. - 2012년01월 by 기린그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