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한 꽃 인줄로만 알았던 박지윤이 나무가 되는 꿈을 노래하며 돌아왔다.
박지윤 정규 8집 [나무가 되는 꿈]
박지윤 8집 '나무가 되는 꿈'은 지난 2009년 7집 '꽃, 다시 첫 번째' 앨범 이후 2년 10개월 만에 발표하는 정규앨범이다. '나무가 되는 꿈'은 박지윤이 직접 프로듀싱한 앨범으로, 인간으로서의 박지윤 그리고 아티스트로서의 박지윤이 얼마나 변화하고 성장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11개 트랙의 구성이 마치 잘 차려진 코스요리를 마주하듯 섬세하게 배치되어있다. 개개의 곡이 주는 아름다운 감동과 동시에 앨범 전체를 감상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커다란 울림은 박지윤이 자신을 담아내는 방법을 영특히 깨우쳐 나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8집 그 긴 여정의 첫 걸음을 떼는 '그땐'은 박지윤 작사 작곡, 0(영)의 편곡으로 오르겐 피아노, 목소리만으로 읊조리듯 시작된다. 고조되는 감정 끝에 절규하듯 터뜨리는 보컬과 그 감정을 더욱 고조시키는 화려한 하모니가 돋보이는 곡이다. 불연 듯 떠오른 과거의 어느 순간, 그때는 미처 몰랐던 나와 상대방에 대해 이제야 이해하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담겨있는 곡이다.
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엔 과거가 된 기억, 그 사이 밀려오는 그리움이 점점 더 웅장해지는 곡의 진행 속에 호소력 짙게 전해진다.
기분 좋은 멜로디가 인상적인 '그럴꺼야'는 박지윤 작사 0(영)의 작곡, 편곡으로 기존의 발랄한 박지윤표 댄스곡을 그리워하던 이들에게 반가울만한 곡이다. 7집을 인상 깊게 들은 이들은 박지윤이 더 이상 댄스곡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선입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럴꺼야'는 그런 걱정 어린 선입견에서 기분 좋게 벗어난다.
'오후'는 박지윤 작사 작곡,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출신인 권영찬의 편곡으로 완성된 곡이다. 2011년 5월 뷰티풀 민트 라이프 페스티벌에서 공개했던 곡에 현을 추가하는 등의 재정비로 더욱 포근해진 느낌이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카페에 마주 앉은 지난 연인과의 재회를 그린 부드럽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곡으로, 7집의 따뜻했던 곡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감성을 느낄 수 있다.
타이틀 곡 '나무가 되는 꿈'은 이번 앨범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색채의 곡이다. 박지윤 작사, 노리플라이의 권순관 작,편곡,스트링편곡을 맡았으며, 잔잔함으로 시작하여 점차 웅장해지면서 마치 어둠에서 빛으로 밝아지는 그라데이션이 연상된다. 간주부분 또한 긴장되는 기타루프에서 화려하게 뻗어나가는 현악음으로 구성되어있어,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밝은 빛으로 날아가는 느낌을 준다. 누구나 언제든 상처입고 고독을 느낀다. 그런 때, 우리는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단 한명의 위로를 원한다. '나무가 되는 꿈'은 삶의 어둠 속에서 지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누는 나무처럼 쉼터가 되어주는 노래이다.
첫 구절부터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고백'은 디어클라우드 용린의 곡으로 지난 7집 타이틀곡이었던 '바래진 기억에' 그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박지윤의 음악적 감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용린이 박지윤의 감성과 목소리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곡을 만들어냈다.
안정감 있어 친숙하게 느껴지는 발라드곡이지만 용린과 박지윤의 호흡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짙은 감성이 인상적이다.
쓸쓸한 감성이 짙게 배어나는 '사랑하지 않아'는 메이트 정준일의 곡으로 나일론 기타와 박지윤의 처연한 목소리만으로 채워냈다. 이 곡의 특별한 점은, 원작자 정준일과 가창자 박지윤이 곡을 해석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다른 해석은 조화롭게 노래에 녹아있다. 따라서 듣는 이의 감성에 따라 노래에서 각기 다른 감정이 느껴지는 이 곡을 들으며, 과연 나의 감성이 두 사람 중 누구의 해석과 닿아있는지 상상해보는 것도 이 곡을 듣는 재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산뜻한 멜로디로 다가오는 '너에게 가는 길'은 박지윤 작사작곡, 디어클라우드 용린 편곡의 곡이다. 피아노의 독특한 선율이 잔잔한 행복과 옅은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따뜻한 멜로디와 다르게 슬픈 노랫말은 밝은 햇살 아래의 슬픔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디어클라우드 용린의 빠른 템포의 곡을 좋아해서 특별히 요청해서 만들어진 '그날들처럼'은 용린 특유의 음악적 색채가 박지윤에 덧입혀져 기분 좋은 조화를 이룬다. 드럼의 달리는 듯 한 리듬감이 노래를 더욱 극적으로 완성시킨다.
스프링드럼이 내는 바람소리로 시작하는 '별'은 박지윤 작사작곡 디어클라우드 용린의 편곡으로 박지윤 본인이 직접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참여한 곡이다. 곡은 세 파트로 구성되어있는데 파트별로 세 개의 곡인 듯, 끊길 듯 이어져 하나의 곡을 이루어내는 독특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곡의 변화의 흐름을 느끼고 있자면, 제목 그대로 '별'이 가득한 까만 하늘이 떠오른다. 맑은 보컬과 차분하게 채워진 멜로디의 조화로 동화적 색채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곡이다.
지난 달 온라인으로 선공개되었던 'Quiet Dream'은 박지윤 작사작곡 디어클라우드 용린이 편곡했다. 깊은 음색은 격정적인 감정 표현이나 기교를 덜어내는 과정에서 더욱 풍부한 울림을 전한다. 담담히 읊조리는 소망의 노랫말과 설레는 왈츠 선율이 듣는 우리를 아련한 꿈결로 안내한다. 박지윤은 아름다운 꿈결에서 깨어나 그 아련한 감정을 잊고 싶지 않다는 생각, 꿈속 행복을 함께 하고 싶다는 감정들로 이 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 행복한 창작동기만큼 이 곡은 따뜻하게 채워졌다.
장장 7분 31초에 달하는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 '소리'는 이 앨범을 깔끔히 마무리함과 동시에 대미의 절정으로 이끌고 간다. 박지윤 작사 박아셀 작곡편곡으로, 박지윤의 제안으로 1절에는 한 음절로 흐느끼듯 슬픔과 고독을 짙게 표현했다. 이 곡에는 노래 제목처럼 '소리'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는데, 아름다운 선율위에 놓은 소리들이 이색적이면서도 한편으로 편안한 감성을 조화롭게 완성됐다. 박아셀의 목소리는 박지윤의 목소리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평화로운 하모니를 완성했다.
앞서 설명했듯 박지윤 8집은 하나의 코스요리 같다. 하지만 11번 트랙인 '소리'는 코스의 마지막,
디저트 치고는 너무 쓰고 짙다. 그럼에도 완벽한 마무리이다. 앨범을 끝남과 동시에 짙은 울림으로 마음 밑바닥에 박지윤이라는 아티스트를 남기기 때문이다. 모든 곡이 끝나고, 들고 있던 플레이어를 미처 멈추지 못하게 하는 노래, 다시 앨범의 처음 곡을 재생시키면서 '내가 알던 박지윤이 이만큼 성숙 했었나' 생각하게 하는 노래. 아티스트로의 박지윤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게 하는 곡이다.
박지윤은 이 앨범에서 나무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나무, 성장하고 싶다는 것인지 꽃보다 오래토록 서있고 싶다는 것인지 혼동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을 듣고 나면 그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아름드리 나무가 주는 휴식, 위로 그리고 내 슬픔을 가만히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이라는 공감. 7집의 박지윤이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 했다면 8집의 박지윤은 당신의 아픔을 듣고자 말을 건넨다.
우리가 일년생 화려한 꽃으로 비교하곤 했던 박지윤은 사실 견고히 자라 품 넓은 아름드리 나무를 꿈꾸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