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가고 싶은 마을
백영규 작사
백영규 작곡
백영규 노래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글/ 구자형(방송작가, 음악평론가)
이 노래는 환상적으로 시작된다. 어디서 들려오는 걸까? 하늘에서 들려오는가. 그런 것 같다. <가고 싶은 마을>은 백영규가 진행하는 경인 에프엠 방송(iTVFM90.7Mhz)의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는 매일 두 시간짜리 음악방송이다. 프로그램 타이틀도 백영규가 작명했고 이렇게 새로운 노래 <가고 싶은 마을>도 백영규 작사, 작곡, 노래로 세상에 태어났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고, 2017년 그 다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중국 어선들이 한국 바다를 멋대로 드나들며 물고기를 잡아가고, 우리의 해경들이 다치고 있다. 젊은이들도 일자리가 없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이력서 낼 기력도 못 내고 막걸리 한잔에 위로를 찾아 다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13위라는 말도 있고, 10위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양극화 현상의 문제, 그 고통이 이야기 된다. 그러나 현실만 지적할 뿐, 근본적 대책이라는 게 없어서 사람들은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기대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시점에 이 노래가 나타났다. <가고 싶은 마을!> 그 마을은 누구나 꿈꾸는 마을이다. 백영규가 그곳에 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백영규는 아름다운 가을에 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꿈을 시작한다. 왜 가을일까? 모든 것들이 회귀하고 회향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뒤덮을 듯 난리 치던 저 무성한 숲의 이파리들도 가을이면 저 마다 붉게 물들어 서서히 낙하한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 대지는, 숲은 어머니의 품이요 고향인 것이다. 그곳엔 무한도전, 무한경쟁 대신 무한인정, 무한사랑이 넘실거린다. 사람들은 바보처럼 웃고, 지혜롭게 사랑한다. 그러나 그 꿈의 고향을 갈 수 없다. 백영규는 솔직히 고백한다. 우리들을 대신해서, 대변해서… 배부른 도시를 쫓다 그리 됐노라고.. 그렇다. 우린 늘 번민한다. 꿈을 쫓을까? 배부른 도시를 쫓을까? 배부른 도시를 이익과 이기주의라 해도 좋다. 그래서 마음은 꿈을 향하고 몸은 배부른 도시를 쫓곤 해 왔다.
그러나 이 노래 <가고 싶은 마을>을 통해 백영규의 꿈은 이륙한다. 도시에서의 좌절과 절망을 딛고, 그 허망한 광경을 활주로 삼아 비상하기 시작한다. 별빛과 아침이슬이 반짝이는 그 곳, 가고 싶었던 마을로 소풍 떠나듯 떠나자고 권유한다. 그래서 엄마 품속 같은 곳에서 예쁜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노래한다. 솔직히 난 이 노래 들으며 울컥했다. 마음 아팠고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져 동심원을 그리며 파문으로 번져 나갔다. 왜냐고? 왜 그런 주책 내지는 주접을 떠냐고? 그것은 이 노래가 끝나면 우린 또 다시 현실이라는 파도를 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해 보자. 1980년대에 해바라기의 갈 수 없는 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백영규는 <가고 싶은 마을>도 다시 시작한다. 이것은 한국음악사의 꿈의 행군인 것이다. 대장정이라고 해도 좋다. 1968년 트윈 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에 보면 고향을 떠나 올 때 눈물로 흔들어주던 하얀 손수건이 등장한다. 이어서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가 나타난다. 이처럼 떠나 옴과 이별은 교차한다. 꿈과 현실이 우리의 마음과 몸을 지배하듯이.. 71년에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있었다. 광야로 떠나가는 노래였다. 그리고 87년에는 안치환의 광야에서가 있었다. 16년 만에 도착한 광야였고, 그로부터 민주화가 구현되기 시작된다.
이처럼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한국의 모던 포크는 늘 사랑과 평화를 꿈꾼다. 그것은 노래하는 이로 태어난 이 시대 싱어 송 라이터들의 숙명이다. 하늘의 꿈을 위대한 싱어 송 라이터들은 현몽한다. 그리고 작고 외로운 어느 구석진 곳 한 켠에서 그들은 그 꿈의 잉태를 기타라는 침대 위에서 노래라는 아이를 해산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명이기도 하고,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렇다.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을 들어보라, 노래를 듣지 말고 그의 숱한 비명을 들어보라. 그토록 간절한 고향 가고 싶은 그 절규를 들어보라.
그리하여 그대는 나처럼 눈물 한 방울 뜨겁게 흘러내리거나 아예 막걸리 한 두통 비우고 그날 밤 엉엉 울지도 모르겠다. 그대가 살기 바쁘다고 살기 힘들다고, 꿈이 밥 먹여 주나? 노래가 밥 먹여 주나?하고 냅다 치워버린 고향으로 가는 이정표, 그것이 여전히 우리들을 향해, 마치 어머니처럼, 그 고운 미소처럼 여전히 아무렇게나 쳐 박힌 그 꿈과의 결별 현장에서 우리들을 끝까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꿈과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자 감사함이다. 왜냐고? 우리가 이 세상 소풍 끝마치는 날, 귀천이라는 걸 해야 할 때, 그때 도시의 배부름을 뒤로 한 채 또 어디론가 가야 할 때, 그때 우리를 기다려 주던 꿈의 이정표, 그 버림받은 현장에서 어머니와 고향은 우리에게 꿈이라는 무럭무럭 김 나는 뜨거운 밥상 잘 차려 우리에게 안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 온 사방이 역동적으로 힘겨루기 하는 이 싯점에 순결한 꿈의 회복을 위한 노래가 들려 온다. 그것이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이다. 진정한 꿈이 다 죽어버린 세상, 2012년의 봄에 꿈의 새싹이 돋았다. 꿈도 노래도 죽지 않는다. 그것만이 사랑이고 생명이고 진실이고, 꿈을 위해 죽었기에 꿈이 그 보답으로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마을
백영규 작사, 작곡, 노래
i 아름다운 가을에 나 살던 고향에 돌아가리
늘 꿈꾸고 있지만 사는 게 꿈처럼 쉽진 않아
살아간다는 핑계를 삼아
그저 배부른 도시 쫓다
가슴 한 켠에 고이 간직한 순결 무너지고
파란 하늘도 잊은 채 생각 무너지고
ii 별빛 맞으며 잠이 들고 (잠이 들고)
아침이슬로 마음 씻는
가고 싶었던 마을로
소풍 가듯이 떠나자
엄마품속에 안 기우듯 살고 싶어
예쁜 생각 품고 살고 싶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