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론의 여지없이, 산울림은 한국 록 역사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는 존재다. 1977년 ‘아니 벌써’로 데뷔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산울림은 당대의 아이돌 스타이자, 한국 록의 신 조류였다. 특히 신선하고 과감한 에너지가 담긴 산울림의 음악은 당대 영국과 미국, 일본에서도 찾기 힘든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하고 있었다. 가령 해외 음악관계자들에게 한국 록의 독창성을 제시한다면, 신중현 다음에 마땅히 산울림을 들려줘야 할 것이다.
산울림이 특별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들의 음악이 후배 밴드들에게 아직까지도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청바지, 황신혜 밴드부터 눈뜨고 코베인, 장기하와 얼굴들까지 한국 인디 신에서 70년대 한국 록의 이디엄을 추구한 후배들에게 산울림은 바이블 같은 존재로 자리해왔다. KBS ‘탑밴드’ 시즌1에서 우승한 톡식도 산울림의 곡을 색다르게 리메이크한 바 있다.
이처럼 산울림의 음악이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 이유는 특유의 기발함과 함께 해외 밴드에게서 접할 수 없는 한국적인 매력, 그리고 거기서 오는 공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중현 이후 미8군 출신 밴드들이 영미 록의 스타일을 받아들였다면, 1977년 대학가요제 이후 산울림과 함께 등장한 ‘캠퍼스 밴드’들은 해외 조류에 매몰되지 않은 신선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열기는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차지한 샌드 페블즈의 ‘나 어떡해’로 지펴졌다. 바로 산울림의 베이시스트 김창훈이 만든 노래다.
산울림 출신이자 ‘한국 캠퍼스 밴드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김창훈이 정규 3집 [행복이 보낸 편지(A Letter From Happiness)] 로 돌아왔다. 김창훈은 한국적인 록을 말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될 아티스트다. 형 김창완과 함께 산울림의 주축을 담당한 김창훈은 작곡가로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산울림의 대표곡 ‘회상’, ‘산할아버지’,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을 작곡했으며 이외에 김완선의 ‘오늘밤’, ‘나홀로 뜰앞에서’를 만드는 등 다양한 음악적 성정을 선보였다. 김창훈은 산울림 곡 중에서도 특히 헤비하고, 실험적인 곡들을 만들었다. 18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산울림 3집의 한 면을 꽉 채운 ‘그대는 이미 나’, 위악적인 보컬이 담긴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 일찍이 한국적인 하드록을 시도한 ‘무녀도’ 등이 김창훈의 작품이다. 이러한 김창훈의 악곡 덕분에 산울림은 보다 강력한 록 사운드를 낼 수 있었다. 흔히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70년대 후반 한국에서 산울림은 상당히 헤비한 밴드였다. 한국 최초의 하드록 밴드로 평가 받는 무당의 리더 최우섭은 무당 이전의 하드록 밴드로 산울림을 거론하기도 했다.
산울림 이후 김창훈은 1992년에 1집을 발표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 첫 행보를 밟았다. 1997년에는 데뷔 20주년을 맞아 재결합한 산울림으로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가 담긴 13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2008년 산울림 14집을 준비하던 중 동생 김창익이 비운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김창완은 산울림에서 못 다 이룬 꿈을 펼치기 위해 2008년 김창완 밴드를 결성했고, 김창훈은 동생을 잃은 상실감을 2009년 정규 2집 [Love]로 승화시켰다.
김창훈이 이번 앨범을 만들게 된 것은 최근의 산울림 재조명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김창훈은 작년 산울림 35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트리뷰트 앨범 [Reborn 산울림]과 공중파 방송 ‘탑밴드’, ‘나는 가수다’에서 후배들이 산울림의 곡을 재해석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금 창작열이 불타올랐다고 한다. [Love]이후 약 3년 만에 발표하는 3집 [행복이 보낸 편지]는 원래 미니앨범으로 기획됐었다. 김창훈은 곡 개수에 연연하지 않고 단 한 곡을 만들더라도 심혈을 기울인 대곡으로, 모든 정성과 힘을 쏟아서 결정체로 만들겠다는 의도 하에 미니앨범을 염두에 뒀다. 그렇게 2011년 12월에 5곡의 녹음을 마쳤지만,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음악적 감성이 계속 이어져 올해 1월 추가로 6곡을 녹음했다. 덕분에 <행복이 보낸 편지>는 11곡이 담긴 온전한 정규앨범으로 세상에 나오게 됐다. 팬들에게는 축복인 셈이다.
[행복이 보낸 편지]에는 산울림에서 이어지는 김창훈의 진솔하고 독특한 록이 담겼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곡 ‘시간 나에게’에서 드러나듯이 김창훈은 예전의 ‘나 어떡해’에서 선보인 젊은 감수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알리바이’, ‘부메랑’, ‘난난 여기, 넌넌 저기’, ‘그래, 물처럼’에서는 육중한 로큰롤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특히 ‘알리바이’와 ‘부메랑’에서는 김창훈이 산울림 시절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에서 들려준 위악적인 보컬이 잘 살아있다. 김창훈은 가사를 통해 여전히 청춘의 설렘을 노래한다. 그의 노래에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관조는 없다. 특히 사랑의 알리바이를 추궁하는 내용의 타이틀곡 ‘알리바이’에 그러한 면이 잘 나타난다. 이 노래는 마치 장기하와 얼굴들의 신곡을 듣는 것 같다.
‘우리사랑 몇 살인가?’, ‘너 떠난 후’에는 산울림 시절의 풋풋함도 보인다. 이 노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김창훈이 형 김창완보다도 오히려 과거의 향취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장생활과 사업 등을 병행해온 그(현 CJ푸드 미국지사 부사장)가 이런 순수한 면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우리사랑 몇 살인가?’라는 제목은 마치 김창훈이 철없는 자신에게 물어보는 자전적 질문으로 보인다.
앨범 수록 곡들은 김창훈이 미국에서 현지 연주자들과 녹음한 것이다. 하지만 ‘행복이 보낸 편지’, ‘어느새 여기까지’, ‘너와’에서 특히 잘 나타나듯이 전반적으로 기타 톤, 사운드 면에서 70~80년대 가요와 같은 질감이 배어 나온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음악 말이다. 이는 작사•작곡뿐 아니라 악기 편곡과 믹싱 등 전반적인 부분에 김창훈의 의도가 깊숙이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곡 ‘못다한 얘기’는 진중한 멜로디로 앨범의 대미를 장식한다.
[행복이 보낸 편지]에서 김창훈은 긴 세월을 뛰어넘은 듯 젊은이의 감성으로 노래한다. 그러한 작업 자체가 김창훈에게는 ‘행복’이 아니었을까? 그 행복은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팬들에게 전해진 듯하다. 산울림 팬카페 ‘산울림매니아’에서는 김창훈의 새 앨범 소식을 듣고 예약판매를 시작해 1,000장의 초도를 매진시켰다. 열정과 성숙함을 두루 지닌 김창훈의 새 노래들은 산울림의 음악을 듣고 자란 이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그래, 네가, 네가 하자는 대로, 그래, 네가, 네가 가자는 대로 너처럼, 낮은 데로,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흘러 너처럼, 담는 대로, 담아 담아 담아, 담아 담아 담아 강 되어 바다 되어 흐른다. 비 되어 마른 땅을 적신다 굽이 굽이 굽이, 돌아 돌아 돌아, 물 되어 낮은 곳을 채운다 하늘로, 땅으로, 바다로, 산으로, 어디든지
그래, 네가, 네가 하자는 대로 그래, 네가, 네가 가자는 대로 너처럼, 낮은 데로,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흘러 너처럼, 담는 대로, 담아 담아 담아, 담아 담아 담아 강 되어 바다 되어 흐른다. 비 되어 마른 땅을 적신다 굽이 굽이 굽이, 돌아 돌아 돌아, 물 되어 낮은 곳을 채운다 하늘로, 땅으로, 바다로, 산으로, 어디든지 하늘로, 땅으로, 바다로, 산으로, 어디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