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소년원 아이들에게 선포할 말씀을 준비하고 눈을 좀 붙여 보려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야, 서종현. 너 선교사니까 한번 대답해봐. 천국이 있어?"
술에 잔뜩 취한 이 친구에게 나는 그냥 뻔한 답을 해줬다. 좀 피곤하고 귀찮기도 했다.
"있어. 근데 넌 거기 못가."
화가 난 듯한 친구가 되물었다.
"술 좀 취했다고 못 가는 게 천국이냐?"
제대로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너 술 취한거랑 상관없어. 니가 알콜중독으로 죽어도 예수 믿으면 가."
더욱 화가 난 듯한 친구가 쏘아붙인다.
"야이 병신아! 그게 무슨 논리야? 하여튼 기독교인들은 논리적이지를 못해!!!"
나도 쏘아붙였다.
"병신은 너야, 병신아! 넌 사랑이 논리적이냐?"
딸꾹질을 몇 번 하더니 친구는 내게,
"알았고. 여기 서박사 곱창집인데 와 봐. 얘기 좀 하게."
이 녀석이 굉장한 이유는 딱 두 가지다. 모두가 일하고 있을 시간에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모두가 퇴근해서
귀가하고 잠들었다가 다시 출근할 때까지 술을 마실 수 있는 엄청난 체력을 지녔다는 점과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자기 나이 보다 10년은 늙어 보이는 엄청난 얼굴을 지녔다는 점.
어디에서나 담배를 사서 피울 수 있어서 좋았지만 교복을 벗으면 버스요금을
성인으로 내야만 하는 그런 녀석이었다. 혹자는 학생증 보여주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동생 학생증까지 들고 다니면서 버스비 몇 백 원을 사기 치냐고
비웃음을 사기가 더 쉬웠으니 그냥 몇 백 원 더 내는 게 득이였달까. 나이는 좀 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맑은 얼굴이었고 크게 소리 내며 웃을 때는 남성다움이 멋진 친구였는데 이날 본 이 친구의 얼굴은
나이가 들어 보인다기 보다는, 뭐랄까, 속상하고 슬픈 일에 표정을 너무 사용해서, 너무 괴로운 일에 표정을
지나치게 사용해서, 무척 지치고 낡아 보였다.
이참에 천국얘기나 더 해볼 요량으로 나가긴 나갔는데 뭘 말하기는 고사하고 새벽 5시까지
미주알고주알 자기 얘기를 늘어놓더니 나중에는 술에 취해서 발음이 미끄러지는 통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일어날 수는 없었다. 내가 선교사라고 하니까
나한테 문제를 얘기하면, 내가 기도해주면 좀 편해질지도 모를 것 같으니까 자기 얘길 좀 들어 보라는
이 녀석을 두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선교사라서가 아니라 친구라서가 아니라 내 얘기를 좀 들어 달라고
애원하는 그의 모습이 왠지 여전히 세상을 짝사랑하고 계시는 예수의 모습과 너무 닮아서였다.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듣지 못하는 세상을 향한 주님의 간절함과 너무 닮아서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했다.
'그래 다 말해봐. 하나님은 네 심정 아실 것 같다. 내가 전해줄 필요는 없어. 지금 여기 계시거든.'
한참을 듣고 있다가 식어버린 탕을 데우려는데 가스가 떨어졌다.
"아줌마 가스 좀 주세요."
아줌마는 조금 죄송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들, 우리 이제 문 닫아야 돼. 미안해."
계산을 해야 하는데 이 엄청난 친구는 돈도 없이 이 많은 술을 마셨나 보다. 마시기는 지가 다 마셔놓고 돈은 내가 냈다.
사실 내고 싶었다. 선교사라서가 아니라 친구라서가 아니라 인간이 지어 놓은 죄값을 대신 치르신 예수님의 모습과 닮고 싶어서였다.
말씀 전해서 번 돈으로 친구 술 사주니까 기분 좋았다. 성경 어딘가에서 보았던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장면을 떠올리며 그날 예수님은 얼마를 냈을지 궁금해 하면서 씨익 웃고 서있는데 친구가 쿵! 넘어졌다.
나는 친구를 모시다시피 데리고 나와서 몇 발자국 걸어 보다가 포기하고 길바닥에 같이 앉아 버렸다.
우리 앞으로 봉고차 한 대가 멈추더니 아줌마들이 우르르 내렸다. 새벽기도 차량이었다. 하필 그 꼴로 술 취해서
메롱이 된 친구와 길바닥에 앉았는데 거기가 교회 앞마당이라니. 아줌마들이 내게 다가와 물어 봤다.
"학생, 교회 다녀? 예수 믿고 천국 가!"
그 상황에서 이거 내가 선교사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고 맹구처럼 웃어 버렸다.
봉고차에는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이 적혀있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새벽 5시 그 말씀과 술에 취해 교회 앞마당에서 곤하게 잠든 친구를 번갈아 보았다.
혼잣말로 내가, "이 새끼 진짜 쉬고 있네. 하나님 앞에 와서 쉬고 있어. 잘 왔다. 잘 왔어. 수고하고 짐 진 친구야. 잘 왔어." 라고 말하니까,
들었는지 아닌지 이 친구는 씨익 웃으면서 입맛을 다신다. 이 녀석이 코까지 골면서 아주 잘 잔다.
요즘 본 녀석의 표정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좀 더 자도록 놔둬야 할 것 같아서
나도 옆에 같이 누워 버렸다. 비가 올 것처럼 먹구름이 잔뜩 낀 뿌연 하늘은 내 친구의 불투명한 오늘과 닮아 있었다.
'먹구름아. 너도 하나님 집에 쉬러 왔구나. 그래. 짐 진거 다 쏟고 가라. 괴로운 먹색은 다 뿌리고 가라.'
먹구름이 비를 쏟아 내고 맑아지듯 내 친구도 여기 주님 앞에 진 짐을 쏟아 놓고 맑아지기를 기도했다. 어느 여름날의 멋진 새벽기도였다.
누군가는 더럽다고 말한 세상의 어딘가에 앉아서 나는 좀 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네 얘기를 주님께 전해 드릴 필요는 없어. 지금 여기에 너랑 같이 계시거든."
사실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 왜 주님은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짝사랑 중이실까? 이제 그만 오시면 안 되나?
오늘은 주청프로젝트 선교회의 3집 앨범이 발매 되는 날이다.
주님 기다리다 기다리다 이렇게 또 한장의 앨범을 더 만들어 냈다. 이 앨범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해두자. 주님께서 세상을 버리지 못하시고 여전히 사랑하셔서 짝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주신 선물.
딱 그 정도. 복음. 이 앨범이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니, 믿음대로 될 지어다, 하신 주님 앞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망한다. 이 앨범이 그들에게 좋은 소식임을 믿는다.
-주청프로젝트 선교회 대표 서종현(미스터탁)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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