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 세계관을 구축해낸 일본 포스트록의 상징점
모노(Mono)의 서정적 노이즈, 그리고 섬세한 오케스트라로 주조된 가슴 뜨거운 희망의 사모곡(思母曲)
[For My Parents]
"이번 앨범은 인종과 세대를 넘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들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 안에는 8년 만에 귀경하여 처음으로 부모님과 포옹했던 내 자신의 경험도 있었다. 전 세계를 여행한 이후 솔직해질 수 있었던 내 자신이 좋았고, 또 동시에 음악을 통해 부모님께 보은을 할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일본인의 경우 부모님께 직접적으로 감사의 표시를 전한다는 것은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다-더군다나 포옹은-. 이 앨범이 직접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대신 전해줄 것이다. 언젠가는 전하고 싶은 기분, 말로써 전해지지 않았던 부모님에 대한 생각들을, 아직 늦지 않은 지금 이 곡들을 통해 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Taka (Mono의 기타)
한결같이 훌륭한 작품들을 꾸준히 연주해내는 밴드였던 모노(Mono)는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소수의 의견을 무시라도 하듯 여러모로 굉장한 족적들을 남겨갔다. 정력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결성이래 끊임없이 지지를 얻어나갔던 이 일본 출신 4인조 포스트록 밴드는 심원한 기운으로 새겨진 소리의 편린들로 말미암아 알 수 없는 미지의 목표를 향해 돌진해나갔다. 자국인 일본을 비롯 다수의 국가에서 절찬 되어졌고, 단순히 록밴드로서의 테두리 안에 국한되어 다뤄지지 않으면서 수많은 추종자들을 양산해내기에 이르렀다.
서사를 갖춘 굉음을 기타로 연주한다는 기준에서 볼 때 모과이(Mogwai)나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 등의 포스트 록 밴드들과 줄곧 비교되기도 했지만 사실 모노의 계보는 하다카노 라리즈(裸のラリーズ: Les Rallizes Dénudés)나 메르쯔보우(Merzbow)의 연장선, 즉 일본 노이즈/싸이키델리아 노선 뒤에 놓여지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들의 데뷔작은 해외에서는 짜딕(Tzadik)에서 릴리즈되기도 했는데, 포스트 록에 큰 흥미가 없는 요즘의 내가 아직도 모노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의 첫 앨범이 짜딕에서 발매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밴드의 중심 축인 타카아키라 "타카" 고토(Takaakira "Taka" Goto)와 74년 스트라토캐스터를 쓰는 기타리스트 요다(Yoda), 여성 베이시스트인 타마키(Tamaki), 그리고 드러머 야스노리 타카다(Yasunori Takada)의 4인으로 구성되어있다. 2001년 짜딕에서 공개된 [Under the Pipal Tree] 이후 2002년도에 발표한 [One Step More and You Die]가 차례로 팬들을 매혹시켜갔다. 현 인디록 씬에서 가장 중요한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인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i)와 함께 2006년 작 [You Are There]부터 함께하면서 현재 가장 중요한 포스트 록 밴드로써의 입지를 점차 굳혀나간다. 같은 해 9월에는 동경 출신 현대음악/일렉트로닉 아티스트 월즈 엔드 걸프렌드(World's End Girlfriend)와의 콜라보레이션 앨범 [Palmless Prayer/Mass Murder Refrain]을 발표하면서 다음 해 월즈 엔드 걸프렌드와 함께 한국을 찾는다.
기존의 EP, 그리고 바이닐로만 프레싱된 음원들을 담아낸 미발표곡 모음집 [Gone : Collection of EPs 2000-2007] 역시 독특한 커버 아트웍을 바탕으로 정규앨범 만큼의 인기를 얻었고, 앨범과 함께 발매됐던 투어 영상을 담은 DVD [The Sky Remains The Same As Ever]에는 한국의 파스텔 뮤직 스텝들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 킨스키(Kinski)를 비롯한 미국 밴드들과 투어, 그리고 ATP 페스티발 등을 통해 성공적인 미국 진출을 이뤄나갔다.
[Hymn To The Immortal Wind] 발매무렵에는 오케스트라를 본격적으로 접목시켜 나갔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라던가 고레츠키(Henryk Górecki)를 레퍼런스로 뒀던 이들이었기에 이는 사실 예정된 진로이기도 했다. 20인조 규모 이상의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꾸려나갔던 퍼포먼스를 뉴욕과 도쿄, 런던, 멜버른, 쿠알라룸프루 등지에서 실현시켜냈고 그 중 뉴욕 공연은 [Holy Ground: NYC Live With The Wordless Music Orchestra]라는 타이틀로 라이브 실황음반/DVD 포맷으로 발매되기도 한다. 앨범이 공개됐던 2009년부터 2011년 사이 총 30개국에 걸쳐 약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월드 투어를 완수해내며 현재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 밴드로 각인 된 모노는 여전히 피치포크(Pitchfork)나 롤링스톤(Rolling Stone) 지에서 언급되어지면서 영미 권에서의 인지도를 유지해나가고 있는 편이다. 아시아 투어 당시 대부분은 매진이었고 이는 한국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거치게 되는 일련의 복잡한 감정들을 더욱 격렬하게 탐구해나가면서 파괴력과는 상관없이 굉장한 절경을 선사해냈다. 마치 이는 황량한 대지, 혹은 폐허의 잔해 사이로 비추는 무지개 광선 같았다. 세상에 만연한 혼돈스런 현실 세계로는 눈을 돌리지 않는 듯 보였던 이들은 순수한 아이와 같이 어떤 이상을 추구한 채 자신만의 노이즈들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 슬픔의 굉음은 언어의 표현력 이상으로 듣는 이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가곤 했다.
For My Parents
[For My Parents]는 이들의 커리어 역사상 가장 긴 인터벌인 3년 반 만에 공개되는 정규작이다. 제목, 그리고 그의 코멘트에서 일러뒀듯 자신들의 부모님에게 바치고 있노라고 밝히 고있는 본 작은 결국 전세계를 돌아 다시 스스로의 뿌리로 돌아왔음을 선언함에 다름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8월 22일, 그리고 미국에서는 9월 4일 발매가 예정되어 있다.
앨범이 공개되기 이전인 올해 7월 28일, 4년 만에 갖는 후지 록 페스티벌의 무대에서 모노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본 앨범의 수록 곡들을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한다. 참고로 타카는 공연에 앞서 후지 록에 대한 코멘트를 하기도 했는데, 당일에는 리허설도 할 수 없고 기후를 비롯한 모든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있어 이것은 가장 즐거운 도박과도 같다는 언급을 했다. 참고로 모노는 후지록 이틀째인 토요일 3시 서브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펼쳐 보였는데, 후지록과 동시에 일정이 진행되는 국내의 지산 벨리 록 페스티발의 둘째날 3시 서브 스테이지에서 나는 모노의 첫 내한 당시 함께 공연했던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와 함께 연주하고 있었다. 이건 좀 재미있는 우연같다.
2004년 작 [Walking Cloud and Deep Red Sky, Flag Fluttered and the Sun Shined] 이후 꾸준히 콤비를 이뤄나갔던 전설의 프로듀스 스티브 알비니와 결별한 후,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와 바네사 빠라디(Vanessa Paradis) 등을 다뤄온 뉴욕 출신 엔지니어 헨리 허쉬(Henry Hirsch)와 함께 본 작을 작업해냈다. 레코딩 역시 기존에 해왔던 시카고가 아닌 뉴욕에서 진행됐는데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대성당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워터프론트(Waterfront) 스튜디오에서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이뤄졌다.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어레인지, 오직 모노만이 가능한 무형으로 이루어진 심상의 풍경을 파악하는 비전, 그리고 최선의 형태로써 현재의 모노를 그려냈다.
전작 [Hymn To The Immortal Wind]와 마찬가지로 20피스 규모의 오케스트라 레코딩이 진행됐는데, 컨덕터를 비롯한 모든 연주자들이 그때와는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이전 오케스트라 라이브 앨범 제목이기도 했던 '홀리 그라운드(Holy Ground)'를 아예 오케스트라 이름으로 명명하면서 '홀리 그라운드 오케스트라'라 칭하게 된다. 현악파트의 구성은 거의 비슷한데 팀파니와 심벌의 경우 이전 작에서 드러머 타카다가 전부 연주했던 것과는 달리 별개의 연주인원을 채용하기도 했다. 더욱 세밀하고 강력한 힘을 바로 이 오케스트라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다시금 확보해냈다.
비교적 길었던 인터벌을 통해 이들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보다 날카로운 송라이팅, 그리고 치밀하고 섬세한 역동감으로 흘러넘치는 어레인지와 프로덕션 정도가 있을 것이다. 여전히 멜로디에는 정감으로 가득 차있고 이 소리들은 영혼의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준다. 기존보다 어두운 느낌은 줄었으며 일본풍의 감성적인 소리들로 짜여 있는 편이다. 긴장감 사이에 발현되는 아름다움이 강렬하게 돌진해가는 와중 결국 클라이막스에서는 모노와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조화로 인해 결국 듣는 이들의 눈물샘을 느슨하게 만들어내고야 만다. 총 다섯 곡 중 3곡이 10분을 넘어가고 있으며 나머지 두 곡 또한 거진 10분에 달했다. [Hymn To The Immortal Wind]의 스토리를 작성했던 히야 소(Heeya So)가 앨범 수록곡들의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심원한 트레몰로 아르페지오로 시작하는 앨범의 첫 곡 [Legend]의 비디오가 먼저 공개됐다. 중반의 몇몇 부분에 사용된 멜로디 라인은 오히려 한국의 사극 드라마 사운드트랙을 연상케 하는데 아무래도 부모님들에게 바치기 때문에 이런 멜로디를 차용한 게 아닌가 싶다. 아름답고 거대한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담은 비디오가 피치포크 TV를 통해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다. LA 출신 작가 헨리 준와 리(Henry Jun Wah Lee)의 작품으로 아름다운 지구의 경관을 저속촬영으로 담아내고 있는 그는 사회공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독립작가라고 한다. 주로 캐논(Canon) 5D MK2로 촬영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 바란다. 이런 뮤직비디오에 흐르는 현악파트는 마치 뷰욕(Björk)의 [Jóga]를 떠올리게끔 만들기도 했다.
[Nostalgia]는 제목만큼이나 현재와 너무도 멀리에 떨어진 빛 바랜 추억들을 소생시켜내려는 듯 보였다. 기타 아르페지오 이후 같은 멜로디로 연주되는 스트링이 깔리는 고전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중반부부터 시작되는 고조감은 기존 그들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되 드럼보다는 현악기들이 이 역동적인 구성을 견인해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
베이스의 타마키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Dream Odyssey]의 경우에도 피치포크를 통해 미리 공개됐다. 아름다운 두 대의 기타와 웅장한 현악기가 점층되면서 종반으로 향하는 거대한 소리의 덩어리가 짙은 감동을 선사한다. 전반적으로 리버브가 다수 깔렸던 앞에 위치한 두 곡과는 차별화 된 선명한 스네어 톤을 들을 수 있는 트랙으로 과도한 격렬함은 없지만 여전히 마음을 흔들어낸다.
동양적인 멜로디는 [Unseen Harbor]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막바지 현악파트의 저음이 유독 두드러지는 곡은 일관되게 슬픈 감정을 머금은 채 대하 역사극 한편을 구성해나간다. 타카가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이상과 현실의 틈에서 갈등하는 순수한 영혼의 포효 같은 게 이런 곡에서 좀 드러나는 듯 싶다.
무한대로 이어지는 콘트라베이스 보잉과 스트링으로 곡이 가이드되는 [A Quiet Place (Together We Go)]는 꽤나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리듬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채 현악기 중심으로 구성된 곡에 기타와 글로켄스필이 양념처럼 첨가되는데, 지금보다 기타의 비중을 더 줄인다면 여느 거장의 오리지널 스코어에 비견해도 크게 이질감이 없는 형태로 인식될 것이다. 마지막 한음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이 대단원의 교향곡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이 앨범이 마치 아이가 부모님께 드리는 중요한 선물 같은 것이었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계속 바뀌는 한편, 이 사랑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결코 변함이 없다." - 밴드의 코멘트
시네마틱하고 환상적인 사운드스케이프가 계속된다. 광범위한 멜랑꼴리는 어떤 기분 좋은 치유의 감정을 지니며 온기로 가득한 섬세한 멜로디들은 점차 투명해져 갔다. 이 음들은 머릿속에 기억되기 보다는 아무래도 은연중 가슴속에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뿔뿔이 흩어진 사고와 감정들은 이렇게 조용하게 재구축되어간다.
한층 더 깊이를 늘린 작품이었다. 소름이 돋는 와중 마음은 무심결에 감동으로 가득채워진다. 일말의 안타까운 감정들로 인해 근처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무심결에 껴안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굉음조차도 차분히 앉아 그 정취를 감상하는 방법이 더 어울리는 듯 보인다. 다시금 기이한 압도감이 엄습한다.
앨범 발매 이후에는 8월 31일에 도쿄를 시작으로 9월 7일 오사카 공연이 계획되어 있고, 그 이전에 먼저 중국과 한국을 방문할 예정에 있다. 모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격렬한 감정의 기복을 수반한 정에서 동으로의 드라마틱한 전개가 펼쳐지는 장엄한 풍경을 다시금 공연장안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 한번 이 스펙터클을 맛볼 기회를 얻게 됐다.
근 얼마 사이 포스트 록이라는 것이 꽤나 보편화됐고 지나치게 흔해져 마치 하나의 패턴인 냥 자가복제 되어갔다. 하지만 여느 후발 주자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범접할 수 없는 규모, 그리고 밸런스감을 이들은 다시금 완결 지어냈다. 스스로의 역사를 아우르는 미세한 변화들이 꾸준히 감지되는 가운데 이 소리들은 다른 이들에게 다시금 새로운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뭐 이것을 뉴에이지(혹은 힐링뮤직), 경음악, 혹은 사운드트랙 정도로 기분상 분류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신념을 담아 새긴 한 음 한 음은 가슴 속 깊숙이 존재하는 열기, 그리고 냉기 사이에 용해되어 마음의 적정온도를 유지시켜 준다.
부모님으로부터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과 마주한 스스로의 시선을 100퍼센트 음악으로 승화시켜낸 작품이다. 진지하고 감성적이며, 확고부동한 이 강력한 울림은 타카의 코멘트처럼 국적이나 인종, 그리고 세대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마침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의 연작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에는 꽤나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다. 사망한 미군 포로의 주머니에서 나온 절절한 부모님의 편지를 일본인들이 번역해 읽은 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다. "어머니의 마음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똑같구나." 확실히 이 대사는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였고, 타카의 코멘트로 미루어 봤을 때는 본 앨범에서도 썩 그럴듯하게 적용되는 듯 보였다. 그 어떤 조건도 없는 궁극의 사랑 같은 것을 밴드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은 괜히 음악 한다고 부모님 속썩이지 말고 현재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효도를 몸소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이 정도면 꽤나 실용적인 교훈 아닌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