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한나의 음악을 들을 때 마다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된다.
‘내가 과연 그녀를 얼마나 아는 것일까?’
늘 상냥한 웃음 뒤에 다양한 잔향을 느끼게 하는 꽤 아리송한 그녀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떤 미해결 사건 보다 계속적인 추리를 요하게 한다.
내가 아는 그녀는 이탈리아 로마의 명문 산타 체칠리아(S. Cecilia) 국립음악원과 아츠 아카데미(Arts Academy)에서 오페라를 전공했고, 루치아노 파바롯티(Luciano Pavarotti) 국제콩쿠르, 자우메 아라갈(Jaume Aragall) 국제콩쿠르 등 유수 국제콩쿠르에서 줄줄이 입상했으며, 오페라 라 보엠(La Boheme)으로 데뷔, 지속적으로 오페라 무대에서 크게 활동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음악과 인물, 상황에 대한 그녀의 철저한 분석과 표현력은 ‘음악적 드라마’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으며, 특히 풋치니와 레온카발로, 마스카니 등 사실주의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자들의 작품에 대한 그녀의 이해와 애정은 무대에서 비범함으로 그 빛을 발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렇게만 알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나의 머리를 몹시도 혼란스럽게 한다. 한 동안 오페라, 뮤지컬, 크로스오버, 동서양 민속음악, 가스펠, 대중음악 등 다양한 레파토리로 음악회를 찾아간 청중의 음악적 매너리즘을 황홀하게 꾸짖더니, 갑자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일을 멈추고 밀라노 근처 외딴 도시의 재즈스쿨에 틀어 박혀 유럽대중음악을 연구할 뿐 더러, 이탈리아의 국민가수 산토 오로(Santo Oro)와의 듀오 컨서트로 칸초네의 전령사로 변신하는가 싶더니,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 BGM을 이탈리아어로 작사하는 등 무언가 소리 없이 분주한 사람들이 주는 은근한 압박감을 나에게 마구 느끼게 했던 것이다. 그러다 오늘 그녀는 결국 새 음반의 라이너 노트로 다시금 나를 흔들어 깨웠다. “왜 라틴...재즈?” 라는 나의 질문에 “여기 자유로운 드라마가 있네요” 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의 현실에는 얼마만큼 드라마가 절실한 건가.
오페라적 드라마로는 그녀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재즈를 빌어 표현하고자 하는 라틴적 드라마는 그녀다운 잔향을 가지고 있을까.
한 곡 한 곡 트랙이 넘어 갈 때마다 상냥한 웃음 뒤편의 내가 알지 못했던 모습들이 하나씩 그 이유를 드러낸다. 천 번 밥을 같이 먹은들, 백만 번 이야기를 나눈들 알 수 없을 그녀의 음악과 자유 그리고 삶의 드라마가...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이며 작가이며 음악인이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등을 포함 많은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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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nema e core (영혼과 마음)
1950년 세계적인 테너 티토 스키파가 처음으로 부른 이래 널리 알려진 이 곡은 이탈리아의 작곡가 살바토레 데스포지토가 작곡하고 도메니코 티토만리오가 나폴리 방언으로 작사하였으며 ‘그대는 나의 영혼과 마음, 잠시라도 떨어지지 말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즈 피아노 스타일의 곡에 하몬 뮤트의 트럼펫이 어우러지게 편곡되어 그 감미로움을 더 한다.
2. Hymne à l'amour (사랑의 찬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사랑의 찬가의 재즈 Trio 버전에 굵은 첼로의 사운드와 보이스가 잘 융합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원곡은 에디트 피아프가 자신이 사랑하던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을 위해 작사하였는데 1949년 9월14일 뉴욕의 베르사유 카바레에서 처음 불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10월 27일, 그녀를 보기 위해 오던 중 세르당은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고 절망감에 빠진 그녀는 가수생활을 지속하지만 술과 모르핀을 의지하다 결국 47세에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3. Garota de Ipanema (이파네마의 아가씨)
시인 모라에슈는 리우 데 자네이루의 이파네마 해변의 어느 카페의 단골이었다. 그곳에서 자주 마주치던 ‘엘로’라는 이름의 아리따운 소녀에게서 영감을 얻어 시를 썼고, 후에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곡을 붙였다. 이렇게 탄생한 이 곡은 1960년대 중반 세계적인 히트곡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보사노바의 대표곡이 되었다.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와 함께 활동한 브라질 연주가 발치노 아나스타시오와 길한나의 듀엣이 생동감 있는 멜로디의 조화를 이룬다.
4. Besame mucho (키스 많이 해줘요)
멕시코의 여류작곡가 콘수엘로 벨라스케스가 1940년에 작사 작곡한 <베사메 무초>는 ‘오늘밤이 마지막인 것처럼 많이 키스해주세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세계적인 히트곡을 20대에 작곡한 벨라스케스가 이 곡을 쓰기 전 단 한 번도 키스한 경험이 없다는 재미난 일화가 있다. 보이스의 다양한 색감이 구구절절 숨어있는 사랑의 메시지들을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5. E penso a te (너를 생각해)
1970년 이탈리아의 모골이 작사하고 루치오 밧티스티가 작곡한 이탈리안 러브 송!
브루노 라우찌가 처음 부른 이후 세계 많은 가수들의 애창곡이 되었으며, 특히 피아니스트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연주로 국내에 알려졌다. 불발로 끝난 만남과 그 사랑에 대한 아픈 갈망을‘너를 생각해’라는 구절을 통해 대변하는 곡으로, 길한나의 보이스와 이우창의 피아노 화음이 어우러져 그 애절함을 더한다.
6. Quando, Quando, Quando (언제, 언제, 언제)
1962년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테스타가 작사하고 토니 레니스가 보사노바 풍으로 작곡하여 산레모 가요제에 소개 된 후 전 세계에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곡으로 “언제 내게 올지 말해줘. 언제, 언제, 언제? 언젠가 넌 꼭 내게 키스하며 말할 거야. 절대 헤어지지 말자고.” 라는 가사를 가지고 있다. 신선한 편곡과 보이스, 트럼펫, 섹소폰, 트롬본, 리듬섹션 등 재즈 nontet 의 발랄한 무드가 한층 돋보인다.
7. Quizás, Quizás, Quizás (글쎄, 글쎄, 글쎄)
쿠바의 오스발도 파레스가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1947년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다. “나는 너에게 ‘언제, 어떻게, 어디서’라고 늘 묻지만 너는 항상 ‘글쎄, 글쎄, 글쎄’라고만 하는구나. 시간이 흘러가고 나는 절망하는데 너는 여전히 글쎄, 글쎄, 글쎄 라니!”.
구애의 구절을 반복하는 보이스의 다양한 표현력이 매혹적이다.
8. Amor, amor, amor (사랑, 사랑, 사랑)
재즈 nontet 으로 편곡하여 곡의 묘미를 한 층 더한 이 곡은 멕시코의 가브리엘 루이스와 리카르도 로페스 멘데스가 작곡, 작사하여 1943년에 발표된 이래, 세계적인 가수 빙 크로스비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영어와 스페인어로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신의 가호와 영혼, 희망으로부터 태어난 너와 나의 사랑”이라는 사랑 예찬론을 언급한다.
9. Les feuilles mortes (고엽)
자크 페르베르의 시에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조젭 코스마가 1945년에 곡을 붙인 곡으로, 1946년 영화 <밤의 문>의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다. 시적인 분위기를 살린 이브 몽땅의 감상적인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1950년 에디트 피아프가 프랑스어와 영어로 불러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우창, 허진호, 이종헌의 Trio 색채감에 실린 길한나의 루바토(rubato) 인트로가 돋보이는 곡.
10. Manhã de Carnaval (카니발의 아침)
루이스 봉파와 안토니우 마리아가 공동으로 작곡한 <카니발의 아침>은 그리스의 비극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프랑스의 마르셀 카뮈 감독이 현대적으로 각색한 영화 <흑인 오르페>에 삽입되었다. 애잔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로 인해 1950년대 브라질 보사노바의 대표곡으로 알려졌으며 원곡의 분위기를 재즈 Quartet 으로 재현하여 그 아름다움을 한 층 더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