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Lulu] 여름으로 향하는 빈티지와의 여행.
이상은이라는 이름에게서 당신이 쌓아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자. 0으로 돌아가, 그녀가 내민 한 장의 앨범에 손을 뻗어보자. 5월스러운 햇살과 초록 나뭇잎이 장난기 머금은 눈빛과 교차되어 일렁이는 첫 페이지를 열면 이제 음악은 당신의 귀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Lulu]는 이상은의 ‘호기’에서 시작되었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해보자‘는 결심이 한 장의 앨범을 완성시켰다. 동기는 다를 수 있으나,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음악인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미 음악을 해 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고민과 호기심이 포화가 된 상태였다. 오키나와와 뉴욕 등 새로운 환경에서 터를 잡아 그 곳에서 획득한 것들을 묶어 낸 그간의 앨범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층, 다른 차원의 마블링이 Made in 홍대라는 소제목 아래 구성된 셈이다.
언제나 다수보다 성큼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어떠한 것과 마주쳤을 때의 놀라움 그리고 뿌듯함.. 이러한 감정선의 보호막으로 다수가 이상은의 포인트를 짚어내고 있을지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는 그 방향이 반대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라디오는 그가 잊고 지낸 여러 가지를 이끌어내게 했다. 올드팝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옛날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흘러들었고, 표지에 입고 있는 원피스처럼 익숙해서 마음이 놓이는 색깔들이 나란히 배치되었다.
이상은의 영혼이 숨 쉬는 계절은 여름이다. 겨울의 외로움에 맞서 작업하는 순간순간 생명력이 환히 드러나는 여름의 태양을 떠올리며 마음을 달랬다. ‘태양은 가득히’는 꿈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위한 응원가다. 몽글몽글한 속삭임으로 시작되는 ‘기차여행’은 따뜻하고 감성적이었던 지난날을 마주하게 한다. 커다랗고 짙은 눈동자 그림이 바로 연상되는 ‘캔디캔디’의 귀엽고 쉬운 멜로디, 살짝 돌려 쓴 가사(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요)는 옛 감성을 자극하며, ‘1985’가 그 흐름을 이어받아 앨범이 빈티지와 여행 중에 있음을 재차 강조한다. 이상은의 지난 음악을 사람들이 곱씹는 이유 중에는 치유와 위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그 순기능은 이번 앨범에서도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들꽃’은 2000년대 이후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어느 일본 잡지의 특집 기사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기사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에 발끈해 소리를 내는 여성 인디뮤지션의 분노와 사회적인 시선을 담고 있지만, 그러한 느낌조차 소외받지 않고 살아있는 모습 중 하나라는 것, 틀에 맞춰지지 않는다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받은 일이라는 것을 글을 통해 느끼게 됐다고 이상은은 말한다. 같은 여성으로서 받게 되는 내면의 복잡하고 힘든 감정을 ‘들꽃’은 조용히 두 팔 벌려 감싸 안고 토닥인다. 누군가는 그랬다. 여성이 연주하는 목소리는 가장 성스럽고 고귀한 울림이라고. 치유의 일면에서 '들꽃‘은 그 누군가의 표현에 아주 가까이 있다. 잠시 침묵을 삼켰다 싶더니, 영화 ‘아멜리에’의 대비 선명한 색채가 눈앞을 아른거린다. 짙은 빨강, 초록, 노랑.. 미국의 빈티지 옷가게 이름이라는 ‘Lulu’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지는 트랙이다. 동네 소박한 카페에서 흐른다면 파리의 뒷골목이 펼쳐질 듯. ‘태양은 가득히’에 이어 두 번째로 쓰인 영화 타이틀 ‘인생은 아름다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상은이 생각하는 삶이 조곤조곤 풀이 되어있다. 한여름의 태양으로 시작해 앨범은 ‘초여름’으로 거슬러간다. 막 시작된 여름이 부르는 계절의 찬가랄까. 짐을 내려놓고 어디든지 머물고 싶게 하는 연주곡이다.
'밝고 쉽고 편안한 앨범'. [Lulu]의 전부라고 봐도 되겠다. 처음으로 시도해본 여러 가지 작업들에 이상은이 느꼈을 즐거움이 잘게 나누어져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가 얻고 찾아낸 여러 가지를 어느 찰나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이 앨범은 당신이 되어 함께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