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목소리라면 내 마음 기꺼이. 아마도이자람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는 이자람(보컬,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이민기(기타), 이향하(퍼커션), 곰군(드럼), 강병성(베이스)로 구성되어 있다. 밴드의 초창기부터 함께 해 온 생선(김동영, 드럼)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탈퇴한 후에는 이렇게 5인조로 이어오고 있다.
2005년에 결성됐다. 첫 공연 때 밴드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음. 아마도 ‘이자람 밴드’가 되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했던 게 스탭의 착각으로 ‘아마도 이자람 밴드’로 포스터에 나가게 되었는데, 고치기 귀찮아선지 아니면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했던지 그게 그대로 밴드 이름이 되었다. 이러한 일화에서 느껴지듯 집요하고 열성적인 캐릭터보다는 느긋하고 게으른 쪽에 가까운 그들의 성품은 음악 활동에 있어서도 여실히 나타나 결성 5년차인 2009년에야 네 곡이 수록된 EP 《슬픈 노래》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서 아마도이자람밴드는 이자람의 보컬이 가진 탁월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아주 일상적인 소재에서 조울적인 정서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특유의 방식으로 ‘어쿠스틱 기타’와 ‘여성 보컬’에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전형적인 느낌과는 다른 음악적 색깔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앨범 이후로 아마도이자람밴드는 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킨다.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그 사이 이자람은 ‘사천가’와 ‘억척가’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판소리 아티스트로서 확고하게 자신의 위치를 다졌고, 이향하와 곰군은 악사로서 그녀의 행보를 뒷받침했다. 더불어 강병성은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만의 도전을 시작했고, 이민기는 또 다른 밴드인 '장기하와 얼굴들'의 일원으로 불꽃 같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밴드의 '다섯'이 함께 한다는 의미가 그들에게는 큰 것이었고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멤버들은 틈틈이 곡을 만들고 다듬어 편곡하고 녹음하면서 서서히 앨범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몇 년 간을 이어왔던 작업에 급격히 박차를 가한 것은 2012년 말. 장영규 프로듀서의 인도 아래 결성 이래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한 끝에 드디어 첫 번째 정규 앨범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9년 만에 1집을 내는 밴드의 자조적이면서도 나름 결연한 심정을 담아, 1집의 제목은 [데뷰]. 여기서부터 이제 시작이다.
귓가에 조근대는 그녀의 목소리. 아마도이자람밴드 1집 [데뷰]
이자람이라고 하면 일단 떠오르는 것들.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콜라보레이션. 10대 시절 최연소 춘향가 완창으로 기네스북 등재. 촉망 받는 차세대 젊은 소리꾼. ‘서편제’의 뮤지컬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 브레히트의 희곡을 판소리와 결합한 ‘사천가’와 ‘억척가’ 연작의 주연 배우이자 음악감독, 작가. 국내외 각종 시상식 수상. 연일 매진. 그리고 쉴 새 없는 해외 공연. 확고하게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소리꾼이자 아티스트.
하지만 이자람은 나한테는 다른 것들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대학의 교정에서 파란색의 안경을 끼고 노래패의 공연에서 코러스를 하던 그녀의 첫 인상. 그 다음에는 와일드 체리의 노래를 커버하던 훵크 밴드의 보컬이었고,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아니 디프랑코의 ‘Shameless’를 커버하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200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후 ‘아마도이자람밴드’를 결성하고 홍대 인근의 작은 클럽에서 공연 시작.
판소리를 하는 이자람이 무대 위에서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적인 아티스트라면 밴드에서의 그녀는 좀 더 내밀하고 복잡한 내면을 드러낸다. 더불어 판소리의 이자람이 많은 관객들을 홀로 대적하는 고독한 아티스트라면 밴드의 그녀는 다른 네 명의 멤버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다. 이 두 가지는 그녀 안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면모를 표현하는 거울쌍이다. 그래서 아마도이자람밴드는 이자람에게 있어서 단순한 취미 생활이나 외도가 아닌, 자신의 창작 세계를 좀 더 완전하게 해 주는 또 다른 표현 방식이다.
때문에 그녀가 어떻게든 밴드 멤버들과의 끈을 놓지 않으며 꾸준하게 노래를 만들고 녹음을 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9년이 지나고서야 결실을 맺었다. 아마도이자람밴드의 1집 [데뷰]다.
다들 예상하는 바겠지만 이 앨범의 중심에 있는 것은 역시 이자람의 목소리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가장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이자람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익숙한 창법으로는 도저히 만족스러운 느낌이 나오질 않았고, 그래서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 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러한 난항 속에서 돌파구를 제시한 것이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가 앨범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 그를 통해 수잔 베가와 같은 예상 가능한 이름부터 레너드 코헨 같은 정말 의외의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레퍼런스가 제시되었고, 결국 지르는듯한 창법을 가능한 줄이고 속삭이듯이 섬세한 뉘앙스의 표현에 집중한 매력적인 보컬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물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어디까지나 솔로가 아닌 밴드로서의 작업이라는 점이다. 편곡에 있어서 잡다한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다는 방향 아래 곰군(드럼)과 향하(퍼커션)이 만들어낸 간결한 리듬 라인 위에 병성의 베이스 라인 역시 자기 선을 명확히 지킨다. 여기에 민기의 기타 라인이 깨소금 같은 최소한의 양념을 첨가하여 이자람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간결한 구성의 노래들을 만들어냈다.
이와 같은 세팅 위에서 내밀한 속내를 일상적이고 담백한 말로 풀어내는 이자람 특유의 노랫말들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됐다.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달라며 투정부리듯 노래하는 타이틀 곡 ‘행방불명’이나 우아한 목소리로 떠난 님에 대한 소소한 저주를 퍼붓는 ‘우아하게’, 그리고 벽시계와 전화기 등의 물건들에 발끈하며 자아를 주장하는 ‘I’m Round’ 등이 자아내는 귀여운 느낌이 카리스마적인 이자람을 기억하는 이라면 기대치 못했을 느낌이라면 또 다른 타이틀곡인 ‘선택’이나 크라잉넛의 박윤식이 함께 한 ‘괜찮을까’에 담긴 무거운 느낌은 그 귀여움 반대편에 있는 내면의 어두움을 표현한다.
결성으로부터 9년, 지난 EP로부터는 4년이 걸렸다. 그동안 ‘이번엔 나온다’, ‘곧 발매된다’ 수없이 공수표를 날려왔다. 그런 양치기 소년소녀의 행각은 이제 정말로 그만이다. 물론 만만치는 않다. 9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온 만큼 결연한 심정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간의 지지부진함을 떨쳐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점에 섰다는 설렘도 있다. 그래. 어디까지나 이건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첫 번째 정규 음반이다. 그 마음을 담은 것이 이번 앨범의 제목인 [데뷰]다.
붕가붕가레코드 대중음악 시리즈 열여덟 번째 작품이다. 모든 노래의 작사 및 작곡은 이자람, 편곡은 아마도이자람밴드 멤버들이 함께 했다. 프로듀서는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 보컬 녹음도 그의 인도 아래 진행됐다. 나머지 세션에 대한 녹음은 조윤나(토마토 스튜디오)와 나잠 수(쑥고개III스튜디오), 믹싱은 나잠 수, 마스터링은 최효영(SUONO Mastering)이 맡았다. 커버 디자인은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 디자이너 김 기조가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예전 멤버이기도 한 생선(김동영)과 함께 진행했다. 사진은 생선(김동영)과 유경오의 작품. CD 및 디지털 음원의 유통은 미러볼 뮤직이 맡는다.
글 / 곰사장 (붕가붕가레코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