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놀이에는 스페이드가 있다.
카드놀이에 등장하는 다른 카드와 마찬가지로 스페이드카드에는
카드 마다 몇 개의 알파벳과 숫자가 적혀있지만 카드에 1이라는 숫자는 없다.
[SpadeOne]은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는 숫자일까,
무엇을 의미하는 패일까.
그것은 무엇을 뜻할 수도 있겠지만 꼭 무언가를 뜻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규호는 오랜만에 [SpadeOne]이라는 이 의미심장한 패를 들고
가장 첫 번째 트랙인 ‘세상 밖으로’ 부터 ‘오래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라는
지난 시간의 고백 같은 인사를 전한다.
스페이드의 원래 의미는 검(劍)을 뜻한다고 한다.
얼핏 검은색 나뭇잎의 모양을 띈 스페이드는 거꾸로 뒤집어보면 하트모양 같기도 하고,
다시 거꾸로 세워보면 커다란 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보는지 그 관점에 따라 모양이 뒤바뀌는 스페이드카드의 그림처럼,
‘물구나무 거꾸로 본 하늘은/ 숨 막히게 높은 빌딩 숲/ 한가득 이고지고’ (세상 밖으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이규호의 [SpadeOne]에는 이처럼 열 개의 시선들이 모이고 이내 펼쳐지며
만화경을 돌려보며 느끼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세계가 펼쳐진다.
‘세상 밖으로’의 시작에 귀를 기울여보자.
바람이 불어오고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어느새 몸이 흔들리고 그대로 밖으로,
지구 반대편까지, 태평양 건너서까지,
우주 멀리까지 기나긴 행진을 가벼운 바람에 실린 듯 시작한다.
그 바람 속에서 춤추듯 걷기까지의 시간은
마치 ‘나를 버려야 지키는 나를/ 나를 지키려 못 버린 나를’ (세상 밖으로)
돌고 돌며 해왔던 고민들처럼, 걷다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또 다시 걷고 있고
그렇게 넘어지고 걷기를 반복하던 세월이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마당 한 구석에/ 숨어 앉아 흙에게 얘기해왔지/
언젠가 신나게/ 난 대문 밖으로 갈 거야’(세상 밖으로)라며 되새기던 오롯한 다짐이었을 것이다.
다짐은 걸음이 되고 걸음은 풍경이 되고
풍경은 계절이 되고 계절은 돌고 돌아온다.
‘다시 돌아올 걸 아는 봄처럼/ 영원히 함께할 친구처럼’
그렇게 흙에게만 몰래 얘기한 다짐은
이제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와
‘매일 지구 굴린다/ 매일 난 내가 되려다 말다 하더라도’(매일 지구 굴린다)
개의치 않고 경쾌한 춤이 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회전을 반복하고 있는 지구처럼,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선명하게 와 닿기도 하는 꿈처럼.
멜로디는 반복되며 또 다른 멜로디층을 형성하고
또 다시 반복되며 듣는 이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그 지구의 한 쪽에는 ‘그리우면 북쪽하늘 별에 기대 소식을 전하는...
시계 없는 동굴 나라’ (없었다)의 아무것에도 위로 받지 못한 왕이 살기도 하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숲을 찾아 나선 길/ 말라버린 흙더미 포크레인’(포크레인)이 발견되기도 하고,
또 어디에선가는 매일 얼음이 녹아가고,
다른 어디에선가는 길을 잃은 동물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동요시킨다.
또 그 지구에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는 '
떠다니다가 백프로 침몰할/ 알파벳 자음 모음’ (Virus)들이
‘무엇 하나 되살리기에 늦은 무덤‘ (뭉뚱그리다)이 되어있기도 하고,
’내일 또 찾아올 이야기‘(Virus) 속에 노출된 채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언제고 되돌아올 수 있는 스캔들이 있음을,
’흘러간 시간/ 사실과는 달리 그저 우리를 다시 서로를/
한때 감정이란/ 막연함과 허공 속에‘(뭉뚱그리다)
가두기도 함을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보물섬’에서는 하나의 목소리가 또 다른 목소리로 이어지고,
그 소리들이 여러 겹으로 포개지며 뭉클한 파장으로 커진다.
귀가 밝은 사람들이라면 이미 눈치 챘겠지만
‘보물섬’은 ‘푸른곰팡이’ 가족이라 불러도 좋을 동료, 선후배들이 한 자리에 모여
‘꿈을 찾다 보물이 된/…(중략)…/꿈을 찾아 보물이 될/ 우리 작은 섬’(보물섬)을 노래한다.
커다란 나무가 작은 잎들로 이루어져있듯,
그 작은 잎들이 모여 커다랗고 울창한 나무가 되고 또 숲이 되듯
이규호의 [SpadeOne]앨범에서는 이들이 모여 목소리로 힘을 보태기도하고,
연주로 색을 덧입히기도 하며 서로 어우러진다.
다시 나무가 흔들리고 나무에 가려졌던 불빛들이 새어 들어온다.
똑바로 가던 시계바늘이 멈추고 ’뭉뚱그리다‘에서는 어지러운 공기가 밀려들어온다.
’빛이든 아니든 헤매이다 닿을 수 없는/
내 가장자리를 끝도 없이 맴돌아가는 아린 별‘(술 취한다)의 곁에서 말을 잃고
’술 취한다‘에서 공기는 어른거리며 밤의 불빛들을 흐린다.
눈을 감으면 어디에선가 희미한 종소리와 함께 오르간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길을 걷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 발걸음은 흙에게만 몰래 얘기했던 서글픈 다짐과도 닮아있다.
’또 멍이 들고 그걸 모르고/ 웃는다 걷는다/ 발이 기억하는 그 길로‘(너의 길로 홀로이 가라)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너의 길로 홀로이 가라‘ 말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는 ’머나먼 겨울 교회 종소리/어린 소년의 기도‘ (너의 길로 홀로이 가라)를 회상하기도 하며,
’먼 어느 날 문득 현관문 앞을 보니/ 웅크린 우리 할머니’(순애의 추억)의 모습에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트랙 ’순애의 추억‘은 그렇게 쓸쓸하게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추억은 암시를 남기고 이 모든 순간들의 연속에서
다짐은 또 다시 걸음이 되고
걸음은 풍경이 되고
풍경은 계절이 되고
계절은 돌고 돌아온다.
이규호는 그 삶의 모습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가며
조각조각 [SpadeOne]의 그림을 완성해 갔는지도 모른다.
2014년03월 아를 & 기린그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