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마력의 디스코와 몽환적 오케스트레이션, 풍부한 화성이 돋보이는 아카펠라 등 그녀가 만들어낸 다채로운 사운드! 더 큰 무게와 존재감을 가진 아티스트로 진화한 싱어송라이터 한희정, 오직 그녀이기에 가능한 음악적 스펙트럼의 확장. 위트와 재미로 뭉쳐진 두 번째 정규 앨범 [날마다 타인]
- 시인 허수경, 화가 무나씨, 해금연주자 김보미 등 다양한 예술인들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한희정 표 음악의 진수!
Artists’ Comments
이번 앨범에 실린 몇몇 노래들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시작한다. 현악기와 피아노로 시작할 때조차도 그 음은 마치 그녀의 목소리를 닮았다. 이 목소리 앞에는 숨을 끌어오는 고요의 순간이 있다. 바로 이 고요와 목소리가 그녀의 노래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목소리에, 그 전에 먼저 고요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게 바로 한희정의 노래를 듣는 일이다. - 김연수 (소설가)
그녀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오랜 시간을 혼자 방에서 보낸 사람의 목소리. 섬세하고 풍부한 악기 같은 목소리. 그녀가 쓰고 편곡한, 공력과 고집이 느껴지는 이 곡들을 듣는 동안, 어디론가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읽었다. - 한강 (소설가)
“새로운 앨범에 무나씨 그림을 넣고 싶다”는 희정씨의 제안에, 기세 좋게도 “좋아요!” 하고 대답해버렸다. 2009년, [끈] 앨범 때에도 그렇게 대답해 놓고는 일주일 만에 자신이 없다며 어그러뜨렸던 것을 잊어버렸던가보다. 아차, 싶었지만, [날마다 타인]이라는 앨범 제목을 듣고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너를 본다', '바다가', '더 이상 슬픔을 노래하지 않으리', 등 주옥 같은 곡목과 가사들을 읽는 동안에는, 이미 머리 속에 수많은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음악이 보여주는 장면들을 들여다보며 그림 두 장을 슥슥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음악 없이 아무 것도 그리지 못한다. 고백하건대 내게 음악이란, 그저 잡생각을 멈추고 비로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백색소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희정씨의 음악과 목소리는 오히려 듣는 사람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려내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가올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는 적어도 무엇을 그릴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무나씨 (화가)
멜로디, 그리고 목소리에 낯선 애수가 있고 공간은 지극히 차갑다. 육신보다는 마음을 동하게끔 유도해내는 그루브의 댄스뮤직이다. - 한상철 (불싸조)
홍대여신의 반격 - 네가 ‘한희정’을 알아?
"솔로로 데뷔할 때, 대중에게 접근이 가장 쉬운 이미지를 선택했던 거였어요. 이른바 홍대여신이라는 상품, 저는 이제 그거 너무 재미없어요. 재미있는 거 할래요."
어느덧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일명 ‘홍대음악’. 말랑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나긋나긋한 목소리, 귀엽고 부드러운 멜로디는 주류 음악에 지친 대중들의 귀를 위로해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기타를 둘러 멘 여성 뮤지션, 게다가 얼굴까지 예쁜 ‘홍대여신’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고, 현재까지 그 신드롬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2013년, 대표적인 ‘홍대여신’으로 그 열풍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싱어송라이터 ‘한희정’이 다시 돌아온다. 그것도, 여신의 탈을 스스로 벗어 던지며.
데뷔 12년차, 특유의 맑은 음색과 편안하고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음악으로 사랑을 받아왔던 한희정이 두 번째 솔로 앨범 [날마다 타인]을 통해서 보여주는 음악들은 기존의 색깔들과는 사뭇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다. 기존의 어쿠스틱한 곡이구나(‘더 이상 슬픔을 노래하지 않으리’)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다가도 광활하고도 거대한 50인조의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들려오고(‘나는 너를 본다’), 도저히 한희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디스코(‘흙’)가 치고 든다. 때로는 무겁다가도 어느 순간 한없이 가볍다. 다채로운 색깔로 중무장한 11개의 트랙은 이미 일정 정도의 궤도에 오른 뮤지션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해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타이틀곡 ‘흙’은 이러한 한희정의 변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다. ‘흙, 흙’ 거리는, 도대체 감탄사인지 울음소리인지 모를 이 도입부의 엉뚱함은 ‘뿅, 랄라!’로 끝나는 마지막까지 계속된다. 하나 둘씩 선물 받은 화분들을 바라보다가, 흙과 식물이 생태계의 실질적 일인자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만들게 되었다는 이 곡은 곳곳에 주문 같은 위트와 생경스러움이 넘쳐난다. 이러한 시도는 그녀가 직접 연출하고 편집한 뮤직비디오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체력 증진을 위해 배우게 된 발레 동작들을 진지하면서도 허술(?)하게 소화해내는 한희정의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때문에 ‘흙’은 낯설면서도 신기하지만, 묘한 중독성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간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그녀의 도전이 더욱 새롭게 주목 받아야 할 이유다.
미술,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의 스페셜 콜라보레이션 작업
이처럼 새로운 모습과 새로운 사운드를 고민하던 한희정이 택한 건 단순히 곡 스타일의 변화뿐만이 아니었다. 참여 앨범으로는 열 번째, 솔로 앨범으로는 두 번째인 이 앨범을 위해 그녀는 국내 전자음악의 선구자격인 달파란과의 믹스 작업을, 그리고 Sonic Youth, Devendra Banhart, Rachel's, Superchunk, Innocence Mission 등 내로라 하는 해외 뮤지션들의 앨범이 거쳐간 미국의 Golden Mastering Studio에서 마스터링 작업을 진행하며 사운드의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이번 앨범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어내기도 하였는데, 시인 허수경의 2001년 작품을 가사로 인용해 멜로디를 입힌 ‘바다가’는 국악그룹 잠비나이의 멤버인 김보미의 해금연주를 삽입하여 몽환적인 매력을 더했으며, 앨범 커버 이미지는 화가 무나씨가 선뜻 작업에 나서는 등 미술, 문학, 음악 등 각계각층의 예술계 인사들의 결과물을 한 앨범 안에 응축해 내었다.
앨범을 제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의아함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수많은 가면이 늘어놓아져 있는 커버 그림이다. 흑백의 대비가 서늘함마저 불러일으키는 이 일러스트는 앞서 언급했듯 화가 무나씨의 작품인데, 이제껏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한층 자유로워진 한희정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언뜻 모두 같은 표정인 듯 하나 각기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이 가면들은 12년 간 한희정 속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모습들이기도 하며, 우리 안에 숨겨진 수많은 타인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껏 보여준 모습들보다, ‘날마다’ ‘타인’처럼 더 꺼내어 보여줄 매력이 훨씬 더 많은 한희정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스스로의 틀을 깨고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새처럼, 새로운 한희정식 노래의 표본이 될 음악들이 여기 [날마다 타인]에 가득 담겨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야심찬 행보를 함께 지켜보자. 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