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우리는 충분할 것이다.
주윤하의 새로운 이야기
하필이면 창문 너머로 공항철도 게이트 앞이었다.
아침내 내리던 겨울비가 막 그친 참이었다.
찬 바람이 새어드는 찻집 창가에서 주윤하의 새 노래를 들었다.
밤새 꿈 속에 옛 연인을 만났더랬다.
눈을 뜨니 아침 빗소리.
음악이 흐르자 순식간에 휘발되어 버린
지난 밤의 꿈이 재생된다.
멜로디는 설레는데
스며드니 아련하게 슬프다.
어제에 있는 나와
살아야 하는 오늘,
너 없이 그려가야 할 나의 미래.
진심이었던 약속들은 거짓이 되었고
나중에 우리 이렇게 하자,
예쁜 집을 짓고 강아지도 키우자,
함께 그리던 미래는
손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몇 번을 부정해도
결국 현실이 되어 버린
이별 뿐이었다.
주윤하의 노래는
생채기 위에 겨우 앉은 딱지를 떼어낸다.
괜찮은 줄 알았던,
과거 완료인 줄 알았던 이별을 새삼 아프게 한다.
하지만 그의 음악이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다.
아픔 너머 이별 너머 사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기 때문이다.
7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주윤하에게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연인과 꽤나 길게 이별했지만
한 번도 헤어졌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 물었다.
“잠시 쉬어가는 거라고 생각했어” 덤덤하게 그랬다.
그들은 재회했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았다.
고비를 넘어 계속 사랑하는 사람
멀리 있어도 함께 있는 법을 알며
사랑의 힘으로 잔인한 시절과 깊은 밤을 통과하는 사람,
주윤하가 만드는 음악은 그리하여
어떤 식으로든 따스하고
이별을 말하는 순간에마저 포근하다.
이 노래들을 건네주며 주윤하는 말했다.
“이별은 고하든, 사랑을 고백하든, 남겨진 사람의 노래든
이 모든 게 ‘우리’라는 시절에서 비롯된 이야긴 거니까
앨범 제목을 라고 지을까 해. ”
그가 맞았다. 6곡의 노래를 듣는 동안 나는
우리들의 봄과 우리들의 여름과 우리들의 가을과
우리들의 겨울을 통과했으며, 알았다.
사랑의 겨울. 다투고 화내고 원망하던 순간마저도
행복했다는 것. 그래도 그 땐 우리 함께였으니까.
주윤하의 는
3부작으로 이어질 이야기의 첫번째 편이라고 한다.
프로듀서, 작사, 작곡, 편곡, 스트링편곡, 피아노, 나일론 기타, 콘트라 &E.
베이스, EP까지 모두 주윤하 본인이 담당하였다.
이 겨울에 특히 듣기 좋은 곡은 <사랑의 섬광>
EP 연주와 따스한 나일론 기타의 앙상블이 좋다.
브라스 연주가 온기를 더한다.
“여우별이라는 게 있대.
구름 사이에 감춰져 있다가 잠시 빛나는 별이라는데
우리도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해봤어.
우리 모두는 다 빛나는 사람들인데
잠시 구름에 가려 반짝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상상해서 만든 곡이야.”
주윤하가 덧붙인 노래 설명이다.
‘우리’라는 말이 갖는 온기가 음반 가득 담겨 있다.
섬세하여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몇 번이나 듣고 또 듣다가 고개를 드니 창밖의 사람들.
커다란 슈트 케이스를 끌고 공항 철도 안으로 사라진다.
그래, 가거라, 사랑이 남긴 슬픔.
나는 포근했던 기억과 있겠다.
비가 그쳤으니 구름이 걷힐테고 가려졌던 별이 빛날 것이다.
어둠이 내려도 별이 있어 우리는 걱정이 없을 것이다.
사랑으로, 우리는 충분할 것이다.
[그래도, 사랑] 저자. 라디오 작가 정현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