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ying Nut X No Brain - 스플릿 앨범 [96]
1996년. 한국 대중음악사의 격변기였다. 그 해 초 김광석이 죽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했다. H.O.T.가 데뷔했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다른 시대가 열리는 교차로 같은 해였다. 그 뿐 만이 아니었다. 그 이전까지 신촌의 곁가지처럼 여겨졌던 홍대 앞이 새로운 문화의 중심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인디의 폭발이었다. 홍대 앞은 이미 너바나로 시작된 90년대 얼터너티브 혁명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이었다. 신촌과 대학로의 음악 술집들이 레드제플린과 도어스를 고수하고 있을 때 펑크와 레게, 데스메탈과 브릿팝을 전문으로 트는 음악 술집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80년대와 스스로를 단절시킨 90년대의 청춘들이 홍대앞에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그 중 한국에서 처음으로 펑크바를 표방한 가게가 있었다. 1994년 문을 연 드럭이 그 곳이었다. 너바나와 섹스피스톨즈, 그린데이와 클래시가 밤 늦도록 울려 퍼지는 그 곳은 자연스레 ‘루저’들의 아지트가 됐다. 1995년 4월 5일, 커트코베인 사망 1주기를 맞아 이 아지트의 죽돌이들이 밴드를 결성, 커트코베인 추모공연을 했다. 그 순간, 홍대 앞이라는 공간에 소비와 향유에 더해 창작과 생산이 얹혔다. 하드록과 헤비메탈이 아닌 펑크와 그런지, 모던록 등 동시대의 음악을 하고 싶은 이들이 얽혀 새로운 밴드들을 만들었고 어제의 팬이 오늘의 뮤지션이 되어 무대에 올랐다. 바야흐로 씬(scene)의 탄생이었으며 언더그라운드가 인디로 대체되는 시기였다. 이 새로운 움직임에 기존의 언론들이 몰려들었고 홍대 앞을 소개하는 기사는 일간지 문화 면의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그 기사를 보고, PC통신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홍대 앞으로 향했다.
그 중심에 드럭이 있었다. 드럭은 펑크를 넘어, 인디의 상징 같은 공간이었다. 그 이전 한국의 공연장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슬램과 모싱이 탄생했고 스테이지 다이빙이 난무했다. 1996년 5월 홍대 앞과 명동에서 이틀간 열린 ‘스트리트 펑크쇼’는 그 펑크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혁명의 순간이었고 뭔가 엄청난 일이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만방에 알리는 선언의 순간이었다. 그 중심에 크라잉넛이 있었다. 그리고 음악을 하고자 마산에서 홀홀단신 상경한 이성우가 있었다. 그 해 여름 옐로우키친과의 조인트앨범이자 음반사전심의제도의 폐지와 맞물려 발매된 최초의 인디앨범 [Our Nation]으로 크라잉넛은 인디신의 중심에 섰다. 이성우는 차승우, 황현성, 정재환을 만나 노브레인을 결성했다. 주말마다 그들은 드럭이라는 퀴퀴한 지하실에 화산 같은 열기를 뿜어내곤 했다. 위퍼, 갈매기, 벤치, 기타로쏜다 등 많은 밴드들이 드럭을 스쳐갔지만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은 결코 투톱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이 공연할 때, 드럭은 관객들이 내뿜는 수증기로 가득 찼다. 때로는 산소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 무아지경의 시간에서 크라잉넛은‘말달리자’ ‘펑크걸’로, 노브레인은 ‘바다 사나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관객들에게 남은 최후의 넋까지 빼놓곤 했다. 밴드와 관객 모두 완전 연소되고, 또 그로 인해 자신의 청춘을 확인하는 나날이었다.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한 시대의 에너지가 용트림처럼 꿈틀대던 해, 바로 1996년이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은 드럭에서 한솥밥을 먹던 시절, 종종 협연을 하곤 했다. 때로는 공연을 펑크낸 멤버를 대신하여 무대에 올랐다. 때로는 예고없이 무대에 난입하여 마이크와 기타를 잡을 때도 있었다. 때로는 작심하고 서로의 노래나 펑크의 명곡을 함께할 때도 있었다. 1998년 노브레인이 드럭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걸을 때까지, 그들은 꽤 많은 순간을 함께 했다. [96]은 그들의 뜨거움이 발화점에 도달하던 시절, 그들이 함께하던 시절을 다시 환기시키는 앨범이다.
그들은 [96]에서 그 후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축적한 방법론을 통해 서로의 음악을 해석한다. 노브레인이 고른 크라잉넛의 노래들은 ‘말달리자’와 ‘룩셈부르크’, 그리고‘비둘기’다. ‘말달리자’는 크라잉넛의 초기버전을 연상케 한다. 지금에야 리듬도 다채로워지고 사운드도 풍성해졌지만, 1996년을 기억하는 노브레인은 이 노래를 그 때처럼 단순하게 해석했다. [Our Nation]에 담겨있던, 아니 그 때의 드럭에서 울려 퍼지던 날 것의 에너지를 2014년에 환기시킨다. ‘룩셈부르크’는 올드스쿨 하드코어 스타일로, ‘비둘기’는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기발한 인트로를 입혀 편곡했다. 노브레인이 크라잉넛의 초기부터 지금까지의 노래들을 골랐다면, 크라잉넛은 초기곡인 ‘바다사나이’와 ‘아름다운 세상’ 그리고 그들의 가장 큰 히트곡인 ‘넌 내게 반했어’를 해석한다. 노브레인과 위퍼의 조인트 앨범 [Our Nation 2]에 수록, 인디 사상 처음으로 가요톱텐 순위에도 올랐던 ‘바다사나이’는 김인수의 어코디언과 함께 스카에서 폴카로 재탄생했다. 파티펑크인 ‘넌 내게 반했어’는 랜시드 스타일의 질주감 넘치는 펑크스타일로, 초기 노브레인의 대표곡이자 그 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현실을 직설적으로 담아낸 ‘아름다운 세상’은 원곡의 에너지를 살리되 아코디언과 기타 멜로디를 덧입혀보다 풍성한 소리를 들려주는 쪽으로 발전시켰다. 앨범의 백미는 단연 ‘96’일 것이다. ‘우린 마치 시한폭탄 같았어’라는 가사는 과장도, 허세도 아닌 정확히 그 때의 그들 모습이다. 발라드로 시작해서 펑크의 기본에 충실한 사운드의 전개. 한 때 펑크의 상징적 구호였던, 이제는 어디서도 듣기 힘든 ‘오이!’의 연발. 무엇보다 박윤식과 이성우가 주고 받는 보컬. 이 모든 것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1996년의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했으며 오늘 만이 있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기에 일말의 부족함이 없다.
긴 시간이 흘렀다. 20대 초반의 열혈 펑크키드들은 어른이 됐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걸치는 나이가 됐다. 가정을 꾸리게 된 친구도 있고 밴드를 떠난 친구도 있다. 하지만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은 한번도 홍대 앞을 떠나지 않았다. 점점 늘어나는 동생들과 어울리며 계속 공연을 하고 술을 마셨다. 홍대 앞의 스타에서 전국구 록스타가 되었지만 1996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에 다름이 없다. 그들이 존재하기에 지금은 홍대 앞을 찾지 않는, 한 때의 펑크키드들이 자신의 18년 전을 계속 떠올릴 수 있는 것이리라. [96]은 그래서, 함께 하나의 시대를 만들었던 모든 이들을 소환하는 부름이다. 그 시절을 전설 속 이야기들로 접하는 지금의 펑크키드들에게 건내는 사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끝내 함께한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의 이 앨범은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그 시대를 재조명하는 발화점이 될 것이다. 스무살 남짓한 아이들이 자신의 음악으로 세상을 어떻게 뒤흔들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