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구, 아를 [들]
서교동에 옥상상점이란 곳이 있다. 그곳에서 볕 좋은 날엔 가끔 옥상마켓이란 시장이 열리기도 했다. 한번은 친구가 파이를 구워 판다하여 맛도 볼 겸 들른 적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선 한 여자 분이 클래식 기타를 퉁기며 노래하고 있었다. 서늘한 톤이었다. 친구는 외진 귀퉁이에서 파이를 팔고 있었다. 파이를 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이번엔 남자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조동진의 제비꽃을 둘이 불렀다. 남자는 차분하고 지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기타를 느린 아르페지오로 연주했다. 내가 들었던 것들 중에선 오리지널을 가장 잘 살린 훌륭한 커버였다. 공연이 끝나고서 나는 그가 누굴까 궁금해졌다. 우리는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연주자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맞은 편에 오며가며 한번 씩 마주쳤던 태구씨가 앉아있었다. 나는 태구씨에게 물었다. "태구씨, 방금 노래한 사람 누구에요?" "예? 농담하시는 거죠? 전데요?" "예?" 나는 그날 태구씨를 다시 봤다. 그리고 그날 함께 노래한 여자 분이 아를씨다. 그 이후로 가끔씩 만났다.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고 그냥 조그맣게 밥이나 술을 먹는 자리에서도 볼 일이 있었다. 인간적으로도 그렇지만 음악적으로도 좋은 연주를 들려주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태구씨는 한국의 서정적인 옛 포크들과 비슷한 음악을 연주하고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다. 그 뿐이라면 흔한 한국의 포크 싱어송라이터들 중 한 사람일 테니 별로 흥미가 안 갔겠지만 단순한 이미테이션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무엇보다 그는 '절제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를씨는 태구씨와는 다른 스타일이었다. 그녀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린다 퍼핵스 같은 사이키델릭 포크싱어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녀가 좋아한다는 포스트록 그룹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 취향을 기타 한 대로 구현하려고 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좋게 들렸다. 어쨌건 우리는 계속 만났다. 어느 날엔 음반을 녹음하러 강원도에 간다했다.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이란 밴드에서 연주하는 이재훈 형이 프로듀서를 맡기로 했다 들었다. 왠지 나는 딱히 도와 달라한 것도 없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졌다. 영상 찍고 음악 하는 해원 씨까지 태우고 우린 강원도 횡성의 한국 통나무 학교로 향했다. 원래는 통나무 쓰고 다듬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당연히 학교의 집들은 모두 통나무집이었다. 우리는 Inspiration이란 문패가 붙은 가장 울림이 좋다는 집으로 들어섰다. 날은 추웠으나 울림은 과연 따뜻했다. 이 반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가장 먼저 앰비언스를 받을 마이크부터 설치했다. 그곳에서 몇 날 며칠을 묵으며 한 곡 한 곡 녹음했다. 그게 10월 초였다. 시간이 흘렀다. 공교롭게도 완성된 음반의 실물을 처음 보게 된 것은 내가 자주 가는 한 카페에서였다. 개인 일이 바빠져서 후반작업에 많이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조금 늦게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같이 만든 사람보다 카페에 먼저 뿌리다니, 툴툴거렸지만 이내 마음이 풀렸다. 음반에 담긴 음악이 좋았기 때문이다. 정말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좋은 음악들이 담겨있었다. 나는 점차 차분한 마음이 되어갔다. 살짝 먹먹해져 오는 것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잘 팔리겠네." - 음악가 '회기동단편선' - 싱어송라이터 강태구와 아를이 각각 5곡씩 참여한 앨범이다. 우리들, 그들의 들을 뜻하기도 하고 들녘의 들을 뜻하기도 한다. 들 에서 표현하고자 했던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