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밤의 감성과 흥겨운 절정의 선율을 선사하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얼렌드 오여 (Erlend Øye)
그의 두 번째 솔로 앨범,
기억의 언저리부터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를 처음 들은 건 8년 전 즈음, 호주 멜번에서 잠시 일하던 베이커리에서였다. 누군가 자신의 아이폰에 저장된 음악을, 옅은 파란 새벽에 틀어 놓았던 것이다. 이른 시간이 주는 고요함과 은은한 햇빛이 들어오는 순간, 작은 공간에 울려 퍼진 감미로운 사운드에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멜로디와 목소리, 그리고 반복적으로 듣고 싶은 중독성이 강렬했다.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음을 오랜 만에 마주한 날. 즉시 동료에게 누구냐고 물었고 그는 무뚝뚝하게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라고, 요즘 엄청 많이 라디오에서 나온다는 말을 하고는 묵묵히 밀가루 반죽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휘감았던 이들을 자세히 알기 위해 일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을 뒤졌고 노르웨이 출신이란 사실에 1980년대 광적으로 좋아했던 아하(a-ha)가 떠올랐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노래는 아하와 로익숍(Royksopp)을 비롯한 노르웨이 신스팝/일렉트로닉 밴드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란 점이 일단은 신선했다. 이렇게, 거의 10년을 줄기차게 듣고 잊고 또 듣고 잊고 들었던 이들의 음악. 물론,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핵심 인물이 얼렌드 오여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의 개인 앨범은 굳이 찾아 듣지 않았었다.
1975년 생인 얼렌드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그의 첫 밴드 ‘스코그(Skog)’에서 활동했던 멤버 아이릭 글람벡 뵈(Eirik Glambek Boe)와 함께 1998년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를 결성했다. 이들 듀오는 지금도, 또 앞으로 프로젝트 파트너로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깊은 인연을 멈출리 없겠으나, 지금 소개하는 앨범 은 철저히 얼렌드 오여만의 두 번째 솔로 앨범으로, 2003년 를 발표한 지, 11년에 만에 나온 따끈한 새 앨범이다.
서프라이즈 팩트
얼렌드 오여의 명백한 목소리 때문에 아무 정보 없이 앨범 를 듣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라는 착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의 존재가 이들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어도, 이미 20년 가까운 음악활동을 하는 동안, 다양한 장르를 넘나 들었고 누군가의 앨범을 프로듀싱했고, 로익숍이 피처 멤버로 들어갔었고, 앨범 리믹스와 영화배우(디제이로) 등, 자신에게 흥미로운 작업이라면 고향인 노르웨이를 떠나 얼마든지 다른 나라에 머물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얼렌드 오여.
한편, 그의 이번 솔로 앨범의 첫 싱글 영상으로 유튜브에 공개된 ‘Garota’가 서울재즈페스티벌로 방한한 그가 언더그라운드에서 노래하는 한국 싱어송라이터(탤런트 이하나)와의 짧은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 처음에는 한국인가 일본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다가 금새 한국의 지하철역이 나오고 이하나가 등장하자 순간 깜짝 놀랐다.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녀의 궁극적인 정신의 힘은 음악인 건 알았는데 아무래도 밴드 출신의 아버지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나 보다. 단국대학교 생활음악과를 졸업한 음악분야 재원이기도 한 그녀는 최근 케이블 방송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드라마 이후, 조만간 개인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라고. 여하튼, 개념 있는 캐스팅과 의외로 잘 어울리는 얼렌드와 이하나 커플. 그들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생생하게 그려 있는 동영상은 짧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경계가 모호하나 들을수록 다양한 디테일
얼렌드 오여의 온전하고 당시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 앉은 소포모어 앨범 는 한마디로 굵고 짧다. 어느 곡 하나 뛰어 넘어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하나 듣고 이어지는 하나를 고스란히 들어야 한다. 제목의 연관성 보다는 사운드의 연관성에 좀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한편, 솔로 2집 징크스란 말이 허용되지 않는 건, 이미 수많은 앨범 작업을 통해 다듬어지고 그만의 독자적인 영역이 형성되었기 때문. 따라서, 5분이 넘는 곡이 두 곡 밖에 없지만, 그리고 10곡을 모두 합해도 37분이 채워지지도 않지만,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특징처럼 얼렌드의 노래는 발랄하고 상큼하며 사랑스러운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어쿠스틱하면서도 재즈적인 느낌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슬랜드 레게 그룹의 멤버인 하말(Hjalmar)과 함께 아이슬랜드 수도인 레이캬비크에서 작업한 차가움과 흥겨움이 공존하고 있는데, 특히, 3번째 트랙인 ‘Say Good bye’, ‘Peng Pong’, ‘Whistler’ 등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포문을 여는 ‘Fence Me In’에도 레게 스타일이 숨 쉰다. 그러나, 가벼운 일렉트로닉 기타와 얼렌드의 조화는 가벼운 포크라 해도 상관 없을 듯. 탤런트 이하나와의 뮤직 비디오로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Garota’는 드럼과 클라리넷의 세션이 들어간 애시드 재즈 스타일과 포크의 중간 정도 톤. 이 곡에 좀더 빠져들고 싶다면 비디오클립과 함께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와 가장 가까운 곡은 개인적으로 ‘Who Do You Report To’라고 생각한다. 이 곡을 듣는 누구나 울컥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심도 있는 가사 또한 음미해 보시길. 피아노와 얼렌드의 목소리만으로 완성된 추천 트랙이다. 가장 활기 넘치는 ‘Rainman’의 경우,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 마지막은 가장 블루지하고 재지하며 킹스의 내면과 얼렌드의 내면이 결합된 ‘Lies Become Part of Who You Are’으로, 시작과 끝의 루핑(looping) 요소는 비슷하나 진지하게 끝내는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감상의 모서리에서
어느 블로그에서 얼렌드 오여를 천재로 부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단언컨데, 그가 아주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 같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에 대한 존경심은 대단하단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9년 이후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만 만났었던 얼렌드 오여. 그의 활동에는 멈춤이 없으니 듀오의 공백기는 한동안 얼렌드의 두번째 솔로 앨범으로 채우면 되겠다. 충분하게 그리고 잔잔하게 올해의 마무리를 천천히 준비하면서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