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묵 EP [흔적]
- 꾹꾹 눌러 쓴 글씨처럼, 조용하게 견고하게
어쿠스틱 기타 기반의 발라드는 늘 있어 왔다. 김광석이 있었고, 양희은이 있었고, 데미언 라이스가 있었고, 글렌 한사드가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정직했고 조금 남루했다. 대중들은 항상 그들의 정직함에 공감했고 남루함에서 낭만을 찾았다. 그래서 그들 중 누군가가 사라져도 또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나며 대중들의 공감과 낭만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켜 왔다. 여기 첨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세상과 음악의 흐름 속에서 바보같이 정직한 노래를 들고 나온 사내가 있다.
[흔적]은 싱어송라이터 임승묵의 EP앨범이다. 그는 2013년 어쿠스틱 펑크에 가까운 싱글 [좋까♥]와 투박하고 유머러스한 트로트 넘버 [안달루시아]를 발매했으나, 사회를 향한 분노나 실소를 자아내는 유머코드는 온전히 그에게 딱 맞는 옷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특기를 숨긴 채 다른 무기를 슬쩍 보여준 것에 가깝다. 2014년 발매한 싱글 [발자국]을 기점으로 그는 비로소 그의 공연에서 주를 이루던 어쿠스틱 발라드를 풀어놓기 시작하고, 본 작 [흔적]은 이러한 방향으로의 행보가 본격화되었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그렇게 보지 말아요」와 「답장」은 근래 범람하는 수많은 여타의 러브송들 사이에서 그의 음악이 갖는 변별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곡이다. 코드 진행과 연주는 능란함보다 간결함을 추구하고 있으며 가사 역시 현란한 미사여구보다는 연애하는 이들의 평범한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절제미는 애상적인 트랙 「스쳐가네」와 「엄마」에서 더욱 빛난다. 가창과 연주 면에서건, 곡 구성과 가사 면에서건 화려한 기교보다는 넘치지 않는 절제가 청자의 감성에 다가가는 보다 유리한 수단이라는 것을 임승묵은 알고 있다.
마지막 트랙 「사랑한 적 없어」는 다른 트랙들에 비해 개량된 질감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는 그의 절제가 의도된 것이라는 증거이며 차후에 그가 만들어 낼 정규 앨범에서 선보일 음악들은 조금 더 다양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시사한다.
음악은 산업이기 이전에 예술이고, 예술이기 이전에 감정을 담은 언어이다. 임승묵의 EP앨범 [흔적]은 이러한 본질의 지척에서 만들어진 앨범이다. 기술과 이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음악은 진솔해야 하며 낭만적이어야 한다.
강백수 (싱어송라이터, 시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