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무 [그림]
권나무의 음악은 단순한 연주, 단순한 가사이지만 단순함을 표방하지 않는다. 고운 목소리를 지향하지만 고움 그 자체를 인위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의 음악들이 담고 있는 바는 바로 이제야 서른을 바라보는 그의 솔직한 생각들이다. 물론 그 솔직함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는 사랑, 자연스러움, 추억, 때로는 관계나 부조리에 대한 답답함을 노래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개인적인 영역 안에서 느낀 그대로를 표현할 뿐 거대한 관점에서 우리들에게 어떤 당위를 강요하는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권나무의 포크가 우리에게 진짜 위로를 줄 수 있는 점이다. 우리는 권나무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 받는다는 느낌 없이 그냥 감상하게 될 뿐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리가 마음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편안한 그림이다. 그림 같은 노래를 하고 싶다는 그의 꿈이 그가 그 동안 발표했던 두 장의 EP앨범들을 지나 비로소 정규 1집 [그림]에 담기게 되었다.
‘마부의 노래’는 가벼운 컨트리리듬을 타고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사랑의 복잡함과 어려움들을 한 순간에 해결해 내는 것은 어쩌면 귀여움뿐일지도 모른다. ‘노래가 필요할 때’는 위태로운 청춘을 막 벗어나오는 시점을 노래한다. 이리저리 어려운 청춘의 끝에서 차분함을 발견한 심정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희망, 기쁨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숙된 체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배부른 꿈’은 소박함에 대한 찬가이다. 물론 소박함이라는 관념조차 우리 삶을 부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지만 우리는 고독이 기른 눈빛을 가진 채 끝없이 사랑을 노래함으로써 딱딱해지기 쉬운 관념들을 녹여내 보기로 한다. ‘여행’은 한결 가벼운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 감명을 받은 고독한 삶이 아닌 비밀스러운 삶에 대한 찬가.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것을 나누며, 좋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일상에의 동경을 깨끗하게 노래한다. 앨범의 타이틀곡인 ‘어릴 때’는 친숙하지만 낯선 소재들이 뒤섞이며 한편의 회화를 보는 듯이 전개된다. 어떻게 들으면 20년쯤 된 읽기 책 느낌도 나지만 그만큼 정직하고 왜곡 없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그림처럼 노래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림 같은 이야기를 노래하고 싶다는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서 이만한 곡이 있을까. ‘이건 편협한 사고’는 앨범 중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한다. 우리들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을 관조하듯 노래 하지만 결국 그것은 이 세상 속에 깊숙이 포함되어있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몰랐네’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 그래서 진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밤 하늘로’는 지난 사랑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며, 그 그리움들마저 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자 하는 집착과 미련에의 저항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또 그만큼 어려운 것이 바로 지난 사랑에 대한 마음을 정리해내는 것이 아닐까. 앨범의 마지막 곡 ‘내 탓은 아니야’는 진정한 포크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영원한 포크의 주제이며, 이 노래는 우리들의 일상과 시대를 모두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