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곡의 상투성을 깨고 나온 우동희의 예술가곡
모든 양식(樣式)의 음악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가곡’이라는 양식의 음악은 기법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가곡이 표현하고자 하는, 악보 너머의 내면적 사상과 철학도 중요하다. 기법이라는 건 사실 표현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이다. 기법은 일종의 기(器)이며, 사상과 철학은 도(道)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기(器)는 현상이며, 도(道)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음악은 도(道)와 기(器)가 적절하게 조화된 음악, 즉 도기조화지악(道器調和之樂)인 것이다.
필자가 작곡가 우동희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가곡 작품이 단순히 기(器)에만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도(道)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器)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동희의 가곡은 엄격한 조성적 가락과 기능화성에서 자유롭다. 홍난파 양식의 가곡과는 전혀 다르다. 그의 가곡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별들은 따뜻하다」의 경우를 보기로 하자. 이 곡의 조성은 G장조이다. 그런데 G장조의 전형적 가락에서 벗어나 있다. ‘G장조가락’이라기보다는 ‘G조 흐름’이라고 하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일 듯싶다. 본 음반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다.
피아노 파트의 화성 처리도 주요 3화음 중심의 속박에서 아주 자유롭다. 그러면서도 조성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본청’이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게 전개되는 전통 국악의 시나위 합주음악과도 아주 유사하다. 이러한 방식의 가락과 화성 처리는 고도의 기적(器的) 능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우동희의 가곡 작품은 이 단계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여기에 한국적인 악도(樂道)가 더 해져 있다. 그럼, 작곡가 우동희가 추구하는 한국적인 악도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자연’이다.
…평소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고 자연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기에 가락 속에는 꽃향기가 있고 새들의 노래가 있고 맑은 바람소리가 있다.(『우동희 한국예술가곡』, 저자 서문 중에서)
그래서 본 음반에 수록된 가곡 작품들은「폭풍의 노래」,「나무 그늘 아래서」,「 노을」,「겨울바다」,「흐르는 강물에」,「남한강」,「저무는 날에」,「낙화」등등 거개가 자연이 소재이거나 주제이다. 동양 음악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동희의 악도는 도가(道家)에 가깝다. 하지만 최고 경지의 음악은 소리 자체를 초월하여 ‘소리가 없는 음악’으로 요약되는 도가 음악 사상은 현실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우동희는 ‘소리’라는 현상을 최대한으로 절제하여 표현하는 유가적(儒家的) 방식으로 자신의 악도를 아주 견고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가 이성선 시에 의한 가곡「여음」이다. 여음은 덜어내고 비워내는 음악이다. 가곡「여음」에서 가락을 좀 더 적극적인 형태로 ‘흐름’을 표현했으며, 피아노 파트의 여러 마디를 빈 공간으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서양악기인 피아노 파트의 연주 방식을 동아시아의 고(古) 악기 공후(箜篌)와 아주 유사한 연주 기법으로 처리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우동희의 가곡 작품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기존의 한국가곡에 비해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대중들은 기존에 이미 학습된, 감미롭고 화려한 음악이 아니면 좀처럼 귀를 열려고 하지 않는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는 모든 예술가들이 안고 있는 현실적 과제인데, 보수적인 청각을 통해 감지되는 음악을 창작하는 작곡가들에게는 특히 더 심각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작곡가 우동희에게 남겨진, 어쩌면 사족(蛇足)과도 같은 과제는 대악필이(大樂必易), 즉 ‘최고 경지의 위대한 음악은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쉬운 음악’이어야 한다는 음악적 화두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본 음반에 수록된 17 곡의 노작(勞作)들은 작곡학도들에게는 물론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기성 작곡가들에게도 좋은 작곡 매뉴얼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임 수 철(음악평론가, 철학박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