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싸이키델리아에 대한 현대적 대답
오늘 SNS에서 어떤 국내 밴드의 인터뷰를 보았다. 내용의 핵심은 자신들이 들은 훌륭한 뮤지션들에게 일종의 부채 의식을 느낀다는 것이었고 때문에 자신들도 후배들에게 부채 의식을 심어줄 만한(?) 세계적인 명반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값싼 오마주와 뻔한 레퍼런스 담론을 넘어 또 하나의 오리지널을 만들어내겠다는 다부진 일념. 지금 당신이 마주한, 핑크 플로이드의 1968년 싱글 'It Would Be So Nice' 비사이드 트랙 제목을 밴드 이름으로 택한 줄리아 드림(Julia Dream) 역시 그 일념으로 일어난 밴드다. 이들은 핑크 플로이드와 킹 크림슨이라는 동시대의 두 천재 밴드를 도마 위에 올려 채를 썰고 으깨고 다져내 기어이 자신들의 내장으로 소화까지 시키고 마는 장관을 우리 앞에 펼쳐낸다. 어설프게라면 시도하지도 않았다는 듯 그들의 음악은 거장들의 그림자를 기세좋게 쓱쓱 지워내고 있는 것이다.
팀 에서 메인 송라이팅과 기타, 보컬, 건반까지 맡고 있는 박준형의 불안한 목소리로 실질적인 '가위 파트 1'은 시작된다. 이번 데뷔 싱글은 사실 네 곡으로 보이는 한 곡이다. 누군가에겐 일상의 공포일 가위눌리는 심정을 주제로 삼은 이 네 파트 컨셉은 가위눌림이 시작되고 가위눌림이 끝나는 과정을 코드의 반복에 실어 쾌락을 탐닉하는 인간, 그 인간의 심리적 불안, 욕망, 외로움 그리고 그런 인간들의 자가당착에까지 사유의 폭을 잇거나 확장한다. 염상훈(드럼)과 손병규(베이스)가 빈틈없이 엮어낸 미드 템포 위에서 귀신처럼 서성대는 엠비언스 느낌이 섹시한 공포감을 자아내는 'Lay it down on me'는 바로 그 중심에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데이비드 길모어를 깊게 들이마신 박준형의 기타는 어느새 톰 모렐로처럼 들끓는 와와로 몸부림치는가 하면(여기서 염상훈의 강렬한 드럼 솔로가 펼쳐진다) 접속곡 같은 'Echoes and Dance' 도입부에선 그의 장기인 긴 블루스 솔로를 주저없이 쏟아낸다. 제목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 이 곡은 핑크 플로이드의 71년작 [Meddle]의 마지막 23분29초를 무아지경으로 채색한 'Echoes'의 부분을 가져와 그대로 'Echoes'에 되바치는 뜻을 담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가위눌림은 여기에서 절정에 이른다.
'Lay it down on me'라는 가사의 반복으로 '가위'의 세 번째 파트 'Breathe of Life'는 시작된다. 역시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대한 오마주가 녹아있고 악몽이 끝난 뒤 땀에 전 평화가 같은 앨범의 전반을 지배한 포근한 불안감을 재현해내고 있다. 박준형은 여기에서 플룻까지 직접 불고 있는데 개인이 겪은 충격과 고뇌를 반영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그의 호흡에선 남은 알 수 없는 슬픈 진정성이 묻어난다. 그렇게 가위눌림은 여기에서 끝이 나는 듯 싶다가도 다시 1번 트랙으로 돌아가면 물음은 코드처럼 또 가사처럼 반복된다. "Do You Wanna Sleep?" 마치 에셔의 [손을 그리는 손]처럼 '가위'는 끝이 없는 끝을 향한 곡처럼 느껴졌다. '반복'은 때문에 줄리아 드림의 데뷔 싱글을 관통하고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인데 처음 썼던 1, 2, 3절 가사가 모두 똑같았다는 뒷이야기가 의미심장한 건 그래서이다.
순간의 즉흥적 에너지를 위해 그들은 홍대의 한 엘피바를 빌려 원테이크로 녹음했다고 한다. 이것은 6~70년대 빈티지 스타일을 지향하는 줄리아 드림이 "지미 헨드릭스가 연주하는 핑크 플로이드"를 들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한 첫 번째 흔적이다. 다음 작품들에서 당신은 또 어떤 식으로 데이비드 길모어와 로버트 프립을 듣게 될 지 모른다. 물론 'Lay it down on me'에서처럼 디페쉬 모드의 환영을 느껴볼 여지도 이 밴드의 음악엔 언제나 있다. 순수한 기대와 긴장의 영역 안에 청자를 데려다놓는 차분한 수완. 줄리아 드림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2014년의 발견"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글 / 김성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