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음악적 비전과 열정의 소유자 Joker 세련미와 파워를 겸비한 데뷔작 [kaleidoscope]
김범수, 바비 킴, 김태우, 이소라, 임재범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여러 국내 가수들의 앨범과 라이브에서 연주를 맡아했던 뮤지션이며 그들의 앨범 작업에서 편곡과 디렉팅을 맡기도 했으며 자신의 곡까지 만들어 주었던 경력의 소유자. 그런 뮤지션이 자신의 솔로 앨범을 만들어내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아마 여느 음악 팬들이라면 나름 자신의 경력을 쌓아온 세션 뮤지션이 첫 리더 작을 발표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 세션활동을 해온 만큼 이 말은 당연히 틀리지 않다. 하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이 앨범을 제대로 감상하고 받아들이는데 이런 외형적인 경력은 솔직히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좀 더 순수한 관점에서 새로운 신인의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게 훨씬 더 편하고 어색함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음악적 색깔은 이 뮤지션이 지금까지 국내에서 해온 여러 가지 사이드 맨 작업들과는 별다른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을 만큼 동떨어져 있다. 그 점에서 건반주자이자 작, 편곡가인 이효석이 만든 솔로 프로젝트 Joker는 아마도 그의 자유로운 음악적 표현을 위한 ‘얼터 에고’ 같은 종류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이야기할 내용은 오로지 이효석이라는 뮤지션의 음악에 관한 것, 그의 또 다른 자아인 조커에 대한 것만이 전부임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먼저 이 앨범은 최근 국내에 발표되었던 어떤 종류의 가요 앨범과도 완전히 다른 사운드를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록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과한 음량을 드러내지 않으며, 트랙에 따라서는 토토나 저니, 후반기 두비 브라더스 같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계열의 세련되고 깔끔한 팝 록 스타일까지 감지되는 면도 있을만큼 서구의 팝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여기에 요즘의 트렌드인 모던 록적인 사운드도 분명히 반영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적인 가요패턴의 멜로디 운용이 아주 희박하다. 앨범에 참여한 연주자들의 어프로치도 상당히 뛰어난데, 특히 드러머인 하형주와 기타리스트 홍진호는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다. 리듬 패턴도 가요에서는 시도조차 잘하지 않는 엇박에 폴리 리듬까지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곡의 다양한 이미지를 구현해내고 있다.
그리고 트랙마다 사운드의 색깔이 적잖이 차이가 있다는 점도 이 앨범의 특징이다. 앨범 타이틀인 [Kaleidoscope]가 의미하는 것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음악적 아이디어들을 의욕적으로 구현해보고자 한 의도가 다분한데, 감상자에 따라 다소 산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첫 앨범에 최대한 다양한 모습을 담아보고 싶어 하는 것도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수긍할 만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런 의욕적인 모습이 결코 거슬려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트랙 각각의 완성도가 수려해서 필자로서는 그의 노력에 상대적으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다.
첫 번째 트랙 ‘Romi’ 에서 두번째 트랙 ‘So Sexy’ 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형적인 어덜트 팝 록 넘버인데, 가사가 만약 한국어가 아니었다면 외국음악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아주 깔끔하고 세련된 연주와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3번째 곡인 ‘Sue’ 는 업템포에 상쾌한 느낌의 팝 넘버로 드라이브할 때 듣기에 아주 마춤한 그루브와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귀에 감긴다. 아마도 국내 음악시장에서는 이 앨범의 다른 곡들보다 가장 호응이 높지 않을까 기대되는 곡이기도 하다. 여기까지가 이 앨범의 Bright Side 라면 뒤이은 트랙들은 좀 더 마이너하고 다소 가라않아 있는, 무겁고 서정적인 곡들이 주를 이룬다. ‘21C 청춘’은 이펙트걸린 보이스를 인트로로 하여 이어 하드하고 스트레이트한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가 일렉트릭 기타처럼 음량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와닿는다. 가사에서 느낄 수 있는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모습을 그대로 사운드로 옮긴 것으로 보이는데 반복되는 후렴구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가 하면 ‘Tonight’ 같은 곡은 이 앨범에서 가장 사운드와 구성의 변화가 심하게 이루어져 있다. 인트로에서 마치 사카모토 류이치를 살짝 연상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급작스럽게 하드 록적인 사운드로 변화하는데 이후 중반부의 브릿지에서 피아노와 드럼 솔로 이후 곡의 코러스 부분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상당히 파워풀하며 또 극적이다. 다소 힘이 들어간 게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지만 그다지 오버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상’은 이 앨범에서 눈물과 더불어 가장 가요에 가까운 곡이자 발라드 넘버다. 하지만 실제 가사로 이루어진 부분보다는 중반부 키보드(마치 무그 소리를 재현한 것 같은) 연주가 아주 애상적으로 와 닿는데 보통 가요에서는 담지 않는 무려 2분여에 다다르는 간주를 담아낸 것이 놀랍다. 이어지는 곡 ‘April’ 은 이상과 음악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도 작곡자가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닌가 여겨질만큼 코드와 멜로디 진행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9번째 트랙 ‘눈물’역시 앞의 두 트랙처럼 발라드 넘버다. 하지만 두 곡이 일관된 연결고리가 있는 것에 반해 이곡은 독립적인 성격을 갖고 진행된다. 다소 동일한 분위기들이 이어져간다 싶을 즈음 미드템포의 모던 록 넘버 ‘2011’로 분위기의 전환이 이루어지는데, 기타 사운드와 드럼이 적당한 공간을 두고 둔탁하면서도 적당히 감칠 맛나게 연주된다. 이어 앨범에 마지막 트랙이자 유일한 인스트루멘틀 넘버인 ‘KADOSH’가 또 한 번 감상자를 놀래게 만든다. 사실 이 곡에서 뮤지션으로서 ‘Joker’와 그의 동료들의 음악적 역량이 어떤지를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데, 곡의 마지막부에 기타리스트 홍준호의 솔로를 필두로 한 퍼커션과 키보드 사운드는 이 뮤지션들의 음악적 범주와 시선이 단지 팝과 록에만 머물러 있지 않음을 짐작케 만드는 이채롭고도 멋진 트랙이다.
Joker는 총 11개의 수록곡을 통해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과 음악적 비전을 최대한 표현해보고자 노력했다. 사실 가요 판에서 오랫동안 세션활동을 해온 뮤지션들의 경우 상당수가 자신의 작품을 내지 못하고 소위 생계형 뮤지션으로서 활동을 하다가 커리어를 끝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볼 때 키보디스트 이효석은 결코 그렇게 가길 원치 않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이들에겐 그만큼의 도전의식과 열정이 내부에 살아있다는 얘기다. 더불어 한 가지 더 긍정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작품 전반에 시류와 유행에 영합하기 위한 의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주관과 개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데, 예컨대 요즘 인디 신에서 종종 인기를 끌곤 하는 달콤하고 나긋하기만 한 아마추어리즘 가득한 음악이 아니며, 하물며 흔해빠진 아이돌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또한 적잖은 기간 동안 악기를 다루어온 숙련된 연주자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앨범을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Joker의 데뷔작은 고전적인 미덕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그저 자기가 오랫동안 좋아해온 여러 음악들을 스스로의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이를 자신의 작곡과 어레인지로 다시 만들어내고자 적잖이 고심하고 또 노력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를 구체화시킬수 있는 좋은 동료들을 만난 것도 아주 큰 시너지로 작용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Joker의 이번 데뷔작은 자신의 의도와 창작력, 거기에 준수한 연주력까지 제대로 담겨진 흔치 않은 국내 아티스트의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저 솔직한 속내를 이야기하자면 최근 국내 음악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모 가수의 복귀작보다도 Joker의 이 첫 데뷔앨범이 필자로선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단지 작품에 담긴 음악 때문만이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접근방식 때문에. 부디 이런 열정과 도전의식이 앞으로도 퇴색하지 않고 오랫동안 계속 유지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글/음악 칼럼니스트 , MMJAZZ 편집장 김희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