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의 '접속'을 듣는다. 홍대에 있는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음반에 들어있는 노래다. 음악도 하면서 글도 쓰는 회기동 단편선은 김사월의 노래에 대해 "' 여성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느리고 침착한 핑거 스타일에 애상적인 정서를 담아"냈다고 썼다. 사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이제 홍대 앞 클럽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또 한 번 단편선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잔의 룰루랄라를 비롯, 전통의 클럽 빵과 역시 홍대 앞에 위치한 아담한 카페 언플러그드" 등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 흔함 사이에서 김사월을 특별하게 만 드는 건 그의 목소리이다. 그의 목소리는 어둡고 서늘했으며, 이미 인생을 다 알아버린 소녀 같았다.
김해원의 [셔틀콕] 사운드트랙을 듣는다. 김해원은 혼자서 작곡과 편곡은 물론이고 연주와 녹 음까지 도맡아 영화 [셔틀콕]의 사운드트랙을 완성했다. 김해원의 음악은 영화의 곳곳에 자연 스럽게 스며들어 함께 호흡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김해원은 평온함이나 불안함, 상실감 같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낸다. 영화와 별개로 음악만을 들어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김해원은 생각보다 훨씬 품이 넓은 음악가였다. 그는 빼어난 작•편곡자의 재능을 갖고 있었고, 또 그걸 공명할 수 있게 하는 정서도 갖고 있었다.
김사월과 김해원은 2012년 즈음 홍대 앞의 클럽에서 공연을 하며 만났다. 김사월의 특별한 목소리는 김해원에게도 다가왔다. 김해원은 김사월의 음악과 목소리를 갖고 자신이 프로듀서 로 참여하는 것을 상상했다. 둘의 실질적인 교류는 김해원의 개인 음반에 수록할 계획이었던 '사막 part 2'를 함께 부르면서부터이다. 이후 김해원이 김사월의 공연 세션에 참여하면서 자 연스럽게 함께 노래하기 시작했다. '레코드폐허'에 김사월X김해원의 싱글 '비밀'이 100장 한정 으로 발매됐고, 그 작업을 더욱 확장한 것이 EP [비밀]이다.
싱글 '비밀'이 발표되고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특히 이들의 레퍼런스에 관해 많은 이름들이 거론됐다. 실제로 이들은 "1990~2000년대 얼터너티브 록, EDM 등을 들으며 감수성을 키워왔 고, 1950년대 스탠더드 팝에서부터 컨트리, 포크, 프렌치 팝, 1960~70년대 한국 음악까지" 들으며 선택적으로 이 음악들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즉각적으로 떠오른 건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와 제인 버킨(Jane Birkin)이었고, 그 뒤를 이어 떠오른 건 저 옛날의 한국 포크 음악들이었다. 나에게 김사월X김해원의 음악이 더욱 특별하게 들린 건 이 때문이었다.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에게 김사월X김해원의 음악은 저 멀리 불란서에서부터 여기 한국까지의 정서가 관통하고 있었고, 또 저 멀리 1970년대부터 지금 2010년대까지의 시간마저도 관통하고 있었다. 이들의 음악에는 수많은 레퍼런스가 존재한다 하지만 또 이런 음악은 이들만이 유일하다.
음반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건 역시 이들의 목소리다. 가령 '비밀'이나 '회전목마'에서 김해원 과 김사월의 목소리가 더해지는 순간의 감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김사월은 그 특유의 서 늘함에 부유하듯 몽롱함을 더해 노래한다. 보통 이런 형식의 음반에 여성 보컬과 남성 프로듀 서라는 도식적인 구성을 생각하곤 하지만, 김해원의 목소리는 그 이상이다. 목소리만으로 절 반의 비중을 갖고 있는 김해원은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고 김사월 못지않은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김해원이 주도하는 편곡과 연주는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따로 언급이 필요할 만큼 인상적이다. 김해원은 단출한 악기 구성으로 곡 각각의 분위기를 바 꾸고 새로운 무드를 만들어낸다. 조금 뒤로 물러나있지만 귀 기울여 들을수록 새로운 맛이 전 해지는 연주 위에서 김사월과 김해원의 목소리는 더욱 빛난다.
앞서 나는 김사월의 '접속'과 김해원의 [셔틀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김사월X김해원의 [비밀] 은 둘의 장점이 극대화된 음반이다. 둘의 만남이 더없이 이상적이라는 간단한 이야기를 이렇 게 길게 글로 풀어낸 셈이다. 둘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을 관통하는 음 악을 얻게 됐다. 그 거리와 시간 사이에는 수많은 음악들이 있어왔다. 이들은 그 음악들 사이 에서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것들만을 영민하게 취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것으 로 만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들의 음악에는 수많은 레퍼런스가 존재한다 하지만 또 이런 음악은 이들만이 유일하다.
- 김학선, 음악평론가
****뮤지션 코멘트****
"이 에너지로 지옥을 관통해 나간다."
저는 이렇게 축축한 공기로 가득찬 음악이 좋습니다.
한국에서는 유일무이할 것만 같은
건조한 공기로 가득찬 사막을 축축함으로 채우고
서로 등을 누인 오누이처럼
한면에는 사월이, 한면에는 해원이
감미롭고 고혹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이
노래들을 세번째로 듣던 저는 저도 모르게 거울을 보면서
만우절처럼 허리를 돌리며 춤을 추었습니다.
- 한받, 뮤지션
꽤 오랜만에 누군가의 데뷔 음반을 들었다. 그런데 뭐가 이리 딥해. 깜짝 놀랄만큼 완성(??)에 가까운 음악적 캐릭터. 갱스루브식의 데까당한 프렌치팝도 생각나고. 아이러니의 쓴 맛이 깃든 사랑노래들. 섹시하고 퇴폐적인데 투명하다.
- 송은지, 뮤지션
좋은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송라이팅을 기본으로 그것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여러 '감각'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 우리는 모든것이 조화로운 가운데 특별한 몇몇 감각들이 자신있게 튀어나와있는 앨범을 들었을 때 좋은 앨범이라고 이야기한다.
김사월X김해원의 [비밀]은 누군가는 도시적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섹시하다고 말하는, 어쨌든 그동안 쉽게 듣지 못했던 뭔가 야릇한 분위기를 가진 앨범이다. 지난 레코드폐허에서 공개되었던 버전도 충분히 그러했지만 이번에 정식으로 공개되는 앨범은 신곡들과 함께 기존의 소리들, 새로운 소리들이 적절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며 그 분위기가 더욱 깊어졌다.
어떤 분위기를 의도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분위기를 완성해 내는 것은 결국 적절한 송라이팅에 더해진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감각'인데, 이토록 감각적인 [비밀]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좋은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천학주, 머쉬룸 레코딩스튜디오 대표, 밴드 스테레오베이 리더
"원래부터 삼계탕은 전복이 들어가지 않아도 맛있다는 것이다."
왠지 부끄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소녀는 나는 사실 시이나 링고 빠─순이─입니다, 라고 말했다. 특히 (시이나 링고가 리드한 밴드인) 동경사변Tokyo Jihen의 "군청일화Gunjou Biyori"의 PV를 '인생뮤비'라고 표현했다. 남자의 녹음된 음원을 처음 들은 날, 나는 깜짝 놀랐다. 그전에 내가 처음 본 남자의 공연은, 그날따라 더욱 그랬는지는 몰라도, 별로였기 때문이었다. 녹음된 음악에선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향이 짙게 묻어났다. 그제서야 나는 남자가 뭘 하고 싶은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소녀와 조금 더 친해졌다. 가끔 남자의 집에 소주를 들고가 밤새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해뜰 무렵이 되서야 좁은 방에서 함께 웅크리고 잠을 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소녀가 남자와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시이나 링고나 세르쥬 갱스부르가 아니라 김사월과 김해원, 그리고 둘이 함께 모여 만든 김사월 X 김해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비밀]은 김사월과 김해원이 지난 몇 개월 동안 함께 작업한 결과물로서 발매된 일곱 곡 짜리 EP이다. (다섯 곡이라 볼 수도 있다. 4번 트랙으로 처음 등장하는 "사막"은 총 세 종류의 다른 버전으로 실려있다.) 사운드는 전반적으로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포크 기타가 주된 리듬을 잡고 그 위에 남녀의 보컬을 교차로 얹는다. 리듬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 엄지와 검지를 이용한 스냅snap이나 박수 혹은 단순한 드럼 비트를 추가하기도 한다. 노래와 노래 사이사이엔 침착하지만 다이나믹을 잘 살린 일렉트릭 기타가 감초처럼 끼어든다. 때로는 잔뜩 리버브 걸린 신디사이저가 멀리서 울려퍼지기도 한다. 이것이 사운드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요소다. 달리 말하자면, 특별할 것이 없다.
전복 같은 거, 그러니까 아무래도 조금은 비싸고 희귀한 것들을 넣어 맛을 만드는 맛집이 있는가 하면─물론 나는 아직도 삼계탕에 왜 전복을 넣는지 이해를 못 하겠지만─별 거 안 들어가는데 정말 구수하게 내오는 집도 있는 법. TV에선 손맛이니 뭐니 호들갑을 떨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손맛이나 정성, 그런 게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세세한 디테일이다. [비밀]의 비결은 바로 그 것, 디테일이다. 이를테면 스냅에 걸린, 프렌치 팝의 팬이라면 아주 익숙할, 숏 딜레이. 그리고 박수에 일부러 과하게 덧붙인 꼬리가 길게 빠지는 리버브. "사막"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멀리서 일렁이듯 밀려오는 신디사이저. 도회적인 세련미가 돋보이지만 이내 삐져나오듯 욕정을 드러내는 일렉트릭 기타. 데카당한 남성의 저음과 순결하디 순결해, 역으로 유령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는 소녀의 목소리. 각자가 각자의 사연을 가진 개별적인 캐릭터처럼 느껴지는 사운드들이 한 데 모여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를 세공하듯 만들어낸다. 그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이윽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원래부터 삼계탕은 전복이 들어가지 않아도 맛있다는 것이다.
세르쥬 갱스부르에겐 제인 버킨Jane Birkin이 있었고, 김해원은 김사월을 만났다. 그러니까 세르쥬 갱스부르에게 김사월이 있던 것이 아니고, 김해원이 제인 버킨을 만난 게 아니다. 이것은 중요하다. 소녀는 시이나 링고가 되진 못할 지도 모르지만 대신 다른 이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모습의 뮤즈가 될 것이다. 비밀은 본디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씩 새어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새어나온 '조금'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방금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말 그대로 비밀이라면 여전히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한 무언가도 존재할 것.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우리는 그와 그녀의 검은 입 속으로 손을 넣어본다.
- 회기동 단편선, 단편선과 선원들 리더
김사월X김해원 음악을 들으면 시너지 효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보통 둘이 모여 음악을 하면 두 배의 효과는 커녕 혼자 한 것 보다 별로이기 일쑤인데
그들은 수십 배의 효과를 내는 걸 보니 찰떡 궁합이 따로 없다.
김사월의 신비롭고 꿈결 같은 관능적인 보이스에 김해원의 중후한 보이스가 더해 지고
필충만한 그의 기타 사운드가 묘하게 믹스되어 세련된 사운드로 탄생한다.
마치 꿈 속을 경험 하듯 환상 특급 열차를 탄 느낌이 든다.
- 노래하는 권지영, 투스토리, 단편선과 선원들 바이올리니스트
어둑해진 저녁에 '비밀'을 들으면서 걸었다. 기분이 참 좋았다.
'비밀'을 처음 언뜻 들었을 때는 정적이고, 조용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듣는 동안, 의외로 동적이고, 리드미컬한 음악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가만히 앉아서 듣는 것보다, 걸으면서, 아니면 조금이라도 리듬을 타면서 들으면 기분이 훨씬 좋아지는 음악이다. 그렇다고 해서 흥겹거나, 가벼운건 아니다. 침착하고,담담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나와 차분한 기분으로 산책을 하고 싶을 때 '비밀'을 추천한다.
- 최우영, 단편선과 선원들 베이시스트
곡들은 미묘하지만 분명하게 확장된다. 꼼꼼하게 프로듀싱한 흔적이 엿보인다.
곡 전반에 있어서 김해원의 기타톤은 고집스럽다. 취향이 분명하다. 하지만 편곡은 무척 영리하다. 몽롱한 김사월의 보컬 뒤에 숨어서 보일듯 말듯 움크리고 있다가도, 기회가 생기면신경질적으로 울부짖으며 튀어나온다.
김사월의 보컬은 몽롱하지만 세세하게 각인된다. 먼곳을 바라보면서 차분하게 노래하는 듯 하지만, 어느새 귓가에 다가와있다.
이들은 무척이나 축축한 앨범을 만들어 냈다. 꼭 밤에 들어야한다.
- 장도혁, 단편선과 선원들 퍼커셔니스트
김사월X김해원 {비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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