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음악으로 증명한 사유의 힘
지적인 쾌감이 돋보이는 스몰오의 정규 1집 [Temper Of Water]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참 욕심도 많구나. 스몰오의 정규 1집 [Temper Of Water] 마스터 시디를 들으며 내내 생각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밴드의 첫 정규 앨범이니 더 그렇겠지만 스몰오는 이 앨범에서 가사, 멜로디, 연주, 사운드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어느 하나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한 가지 스타일에만 머무르지도 않아 스몰오의 음악은 프로그레시브 했다가, 어쿠스틱했다가, 록킹했다가 종횡무진에 변화무쌍이다. 심지어 한 곡 안에서도 그렇다. 한국적인 사운드의 통속성에도 발목을 잡히지 않은 음악은 동시대적이며 보편적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지를 작심하고 알려주는 음반,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지를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자랑하는 음반. 그래서 욕심 많은 음반이다. 욕심 많을 수밖에 없는 음반이다.
이 음반이 남다른 지점은 여럿이다. 무엇보다 노랫말과 사운드가 가리키는 사유의 튼실함과 음악적 재현능력의 단단함을 호평하고 싶다. 음악은 문학이 아니고 영화가 아니기에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해 더 적확하고 의미 깊은 표현을 사용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명확한 단어와 장면으로 지시하거나 재현하지 못하고 노랫말과 음들로 짧은 시간 안에 표현하는 방식은 표현의 정서적 효과만 강화시키곤 했다. 그러나 스몰 오는 음악의 한계 혹은 특성에 맞게 말들을 벼리고, 말에 준하는 사운드로 말이 제시한 사유의 깊이를 체감하게 함으로써 말과 소리를 일치시켰고, 말이 이룬 것과 소리가 이룬 것이 합쳐졌을 때 음악이 비로소 음악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으로 믿음을 노래한 '까마귀'의 단순명료한 노랫말에 더해지는 소리의 극적인 파노라마는 음악이 소리를 통해 명쾌해지지만 노랫말이 소리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서로의 역할을 다할 때 좋은 음악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곡의 사이키델릭하고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의 쾌감은 분명 음악만이 줄 수 있는 쾌감이다. 이처럼 스몰오는 서사를 설정하고 연주로 서사의 스케이프를 그리며 실현해내는 능력까지 부족한 것이 없다.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특히 문학적인 서사가 돋보인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은유와 환유로 말하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더욱 빛나는 것은 스몰오의 음악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이다. 환상과 낭만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인 정서와 세계의 비의와 모순까지 사선을 확대하며 또렷하게 시선을 맞추는 지적인 자세는 지금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어떤 빈 틈을 충분히 메꿔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언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직접적이지 않은 언어의 묘미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도 매력적이다. 앞서 언급했듯 스몰오는 이러한 자신들의 문제의식, 혹은 주제의식을 직관하고 공감하고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음악 언어로 재현함으로써 음악으로 완결시키고 있다. 사운드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두드러지는 것은 선명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극적인 구성, 그리고 울림에 울림을 더하는 사운드의 풍성한 결이다. 스몰오는 보컬을 합창으로 자주 노래하고, 연주에 환상적인 울림의 아우라를 더함으로써 음악의 환상적인 여운을 강조했다. 여러 번 흐름을 바꿔가는 스케일도 한 몫을 단단히 한다. 그래서 스몰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흡사 꿈을 꾸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이니 당연히 그렇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한 분석인가.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지시하는 대상의 시니피에만 주목하지 않고, 시니피앙을 통해 시니피에까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스몰오 음반의 수록곡들 대부분이 그렇다. 음악을 듣는 순간의 감정을 듣는 이들의 개별적 공감으로 무한확대하는 것이 음악의 힘인데 소년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별을 담은 노래 '74'의 연주와 멜로디가 ‘난파된 희망’과 ‘혼자 남은 소년의 두려움’을 지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듣는 이들이 그 순간의 소년이 되게 하는 것처럼 스몰오는 바로 그 보편적 공감과 개별적 확대를 해내고 있다.
굳이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까마귀', '마의 산', '74', 'That Will Fall', '호밀밭', '코끼리', '몽상가', '암울한 계절'을 비롯한 수록곡 다수는 서로 다른 스타일로 직관적으로 영롱하고 은밀하며 뜨겁고 아름답다. 그래서 노래로 진입하자마자 흥얼거리며 노래 안에서 흘러다니게 된다. 또한 스몰오는 특정 곡 안에 내재한 파노라마에 한정되지 않고 앨범 전체를 강약과 고저가 분명한 하나의 파노라마로 만들었다. 수록곡의 편차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해도 한 곡 한 곡의 음악에 흠뻑 젖었다 나오면서 곡 하나 하나에 깃들여져 있는 새로운 세계의 흥취에 젖어드는 일은 즐겁다. 장편과 단편에 모두 능한 작가, 희극과 비극에 모두 강한 작가의 작품집을 읽는 듯한 느낌. 음악 듣는 맛, 음악을 들어야 할 이유를 새삼 알려주는 음반이다. 모쪼록 당신에게도 그 지적인 쾌감이 함께 하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