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김일두의 밴드 경력이나 지역, 장르를 잠시 잊고 이 앨범 [곱고 맑은 영혼]만을 생각한다. 김일두 콜렉션은 두 장의 시디에 담겨 있다. 그가 2010년에 발매한 [난 어쩔 수 없는 천재에요]의 리마스터링 음반 ‘2010’ 한 장과, 같은 노래를 다시 부르고 신곡을 더한 음반 ‘2013’ 한 장. 열네 곡의 이전 앨범을 고스란히 반복한다. 그리고 그 시작을 버리지 않고 함께 담아낸다. 긴 세월에 의해 검증받은 곡들을 안전하게 리메이크하는 시대에 [곱고 맑은 영혼]은 무척 희귀한 태도를 보여준다. 음악가 자신의 2010년과2013년을 한 상자 속에 (앨범으로) 겹쳐 넣으면서 동시에 (2CD로) 모두 붙잡는다. 내려놓거나 골라내거나 덮어쓰지 않고 그때와 지금을 충돌시킨다. 그리고 더해진 노래들이 그의 지금을 넓힌다.
김일두의 목소리는 조금 이상하다. 그의 노랫말을 곧바로 ‘아름다운 가사’라고 짧게 수식하기에는 너무 흔하거나 너무 격하다. 진부해서 이제 모두가 앞뒤로 숱한 수사를 붙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 말, 거칠어서 이제 모두가 예쁘장한 표현으로 언어를 속이게 된 말이 김일두의 입속에서 뼈만 남아 그대로 내뱉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정과 분노가 그의 목소리를 거치면 하나같이 처연하고 애달프게 들린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따로 또 같이 행복하세요”를 반복하다 마지막 갈라지는 목소리를 참아낼 재간이 없다. 김일두의 노래를 들을 때면 언제나 울먹이는 표정으로 낄낄거리거나 흐뭇한 인상으로 한숨 쉰다. 모순된 감정과 반응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한 덩어리의 노래가 모여 ‘아름다운 음반’이 된다.
404의 [1]과 하헌진의 [오]로 이곳 외에 어디에도 없을 음반을 제작하고 있는 헬리콥터 레코즈의 드문 행보는 [곱고 맑은 영혼]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김일두의 밴드캠프 홈페이지에는 “1978.8.13. 4AM”이라 커다랗게 적혀 있다. 그는 여러 경로로 자신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강조하는데, 노래를 계속 듣다 보면 그 날짜가 아주 잘게 쪼갠 시간의 천성처럼 느껴진다. (오래된 신문에 의하면) 가끔 흐린 날씨에 곳곳에 따라 소나기가 내렸다는 1978년 8월 13일 새벽 네 시 태생만이 드러낼 수 있는 선천적인 감정들.
모쪼록 두 장 시디를 시간순으로 나아가듯 혹은 역순으로 돌이키듯 번갈아 듣기를 권한다. 이 음반을 소장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같은 노래에 얹힌 휘파람 하나가 만드는 간격과, 똑같은 “이백오십만 원”을 발음하는 두 시간과, “욕심은 끝이 없다”는 문장이 생겨난 까닭에 대해. 두 가지 시간에 동시에 빠져들 때 진심과 가식은 우스운 잣대로 변하고 우리 앞에는 김일두라는 곱고 맑은 이름 하나만 남는다.
_이로(무명의 쓰는 사람, 유어마인드(your-mind.com) 운영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