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스테레오 EP] 장르의 전형에서 노래의 원형으로
치즈스테레오에겐 다소 아픈 과거사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탑밴드2에 관한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바로 그 지점이 그들의 음악을 발견하는데 있어 가장 전망 좋은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차고 넘치는 밴드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보니 비로소 ‘좋은 음악을 하는 팀’들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고 치즈스테레오 역시 그런 팀들 중 하나였다. 필자, 아니 대부분의 대중음악 리스너들이 수긍하는 좋은 음악이란 결국,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을 진솔하게 투영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품고 있는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사운드의 유기적인 조합일 것이다. 이 본질에 대한 이해와 기본이 튼실한 음악이야말로 비로소 문화적 가치가 있고 나아가 대중의 사랑을 이끌어내는 법이다. 이건 변하지 않는 대중음악적 진리이다.
치즈스테레오는 데뷔시절부터 그들을 따라다닌 한 줄 카피 즉 댄스플로어를 진땀 범벅으로 만드는 밴드이기 이전에, 이야기로서의 노래를 꾸릴 줄 아는 팀이다. 이것이 바로 무수한 밴드의 홍수 속에서도 필연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던 합당한 근거인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탑밴드2의 심사는 피상적인 기교와 권위주의적 현학에 충실했고, 그 바람에 치즈스테레오는 몇몇의 다른 원석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발견’될 공평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채 쓸쓸히 공중파 무대를 내려와야만 했다.
이 외에도 작년 한해는 분명 치즈스테레오에게 적지 않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붕가붕가레코드와 결별했고 멤버의 이탈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삶이 그러하듯 시련의 마디에는 어김없이 변화의 씨앗이 잉태한다. 위치스, 쏘울파크, 스퀘어 더 써클이 소속된 세븐다이얼즈레코드로 이적을 완료하고 오랜 음악적 동지였던 하양수가 기타파트로 새롭게 합류하면서 치즈스테레오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2013년 2월 멀리 영욕의 시간을 넘어 심기일전한 그들이 새로운 EP ‘Lonely Man’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은 지난 디지털 싱글에서 시도했던 장르적 테두리를 시원하게 벗어 던졌다는 점이다. 비록 장르 음악이 주는 자극과 재미 요소는 사라졌지만 그것이 오히려 특정 장르의 레퍼런스 안에 묻혀있던 치즈스테레오만의 저력을 더욱 뚜렷하게 건져 올리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이 초창기 몰두하던, 장난기 가득한 붕가붕가식 팝 사운드로 회귀한 것도 아니다. 그저 노래 자체로서의 원형에 더 충실해졌을 뿐이다.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진화라고 부른다. 치즈스테레오는 장르의 전형에서 노래의 원형으로 오롯이 성장했다.
EP ‘Lonely Man’은 이러한 변화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 오늘날 치즈스테레오의 정서적이며 기술적인 자화상이다. 예컨대 타이틀 곡인 [불타는 내 마음]은 전작의 연상선 위에 있으면서도 진화된 면모를 동시에 담아낸 대표적인 곡이다. 여전히 댄서블한 그들의 리듬워크에 취한 듯 어깨가 들썩이고 귀가 번쩍 트이는 훅에 매료되어 어느새 후렴구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되는, 타이틀곡의 미덕을 온전히 체득한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사로잡겠다 당차게 선언하면서도 정작 자기 위안에 몰두하고야 마는 소심하고 또 때론 상처받기 쉬운 보통 남자들의 이야기를 단출한 구성 그리고 무심한 듯 내뱉는 빈티지한 기품과 병치하여, 이 시대 가장 역설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의 세레나데를 선사한다.
[왜 그래]는 특히 새로 합류한 멤버 하양수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그 동안 치즈스테레오가 보여주지 못한 형태의 사운드를 일궈내는데 일조한 곡이다. 마치 초창기의 국산 모던 락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듯 따뜻한 어프로치와 이별의 아픔을 담담하게 읊조리는 보컬의 이질적인 만남이 하양수라는 새로운 음원의 숙련된 지휘 아래 목표한 감정선에 온전히 안착한다.
[You are so chic]은 치즈스테레오가 가장 편하게 할 수 있고 또 기존 팬들에겐 가장 익숙할 만한, 이들 음악의 원형이다. 쉴새 없이 펼쳐지는 반복적인 리프 위에 특유의 위트 그리고 낭만적인 허세, 자조가 공존하는 묘한 매력의 트랙이다. 과거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쯤에서 발현된 과시적인 남성성을 해체한 뒤 리얼리즘에 기반한 첨단의 남성성을 익살스러운 제스처로 새롭게 재구성한다.
[그대 찾아가는 밤]은 치즈스테레오식 사운드로 그려낸 한편의 서정시에 가깝다.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그리움이 쓸쓸한 풍경들 사이를 잔잔하게 오가며 그들 음악의 B-side 한 켠을 엿보게 해준다.
치즈스테레오의 음악은 데뷔 이후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거듭해 왔다. 그루브한 리듬과 키치적 사운드로 플로어를 달구기도 했고, 모던 비트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세련된 장르적 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은 작위적인 스타일이나 일시적인 유행에 기대지 않는다. 그리 거창하지 못한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심플한 사운드로 깔끔하게 엮어내는 것에 주력한다. 외부에 존재하는 인스턴트하고 자극적인 재료들은 걷어치우고 오로지 그들 자신만의 재료를 탐구하기 시작한 셈이다. 드디어 치즈스테레오 스스로가 자신들의 매력과 강점을 ‘발견’한 것이다.
대중음악의 원초적인 매력, 즉 작가주의적 내러티브가 가능한 밴드는 시간이 흐르고 유행이 바뀔수록 오히려 더욱 빛이 난다. 치즈스테레오의 미래가 기대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치즈스테레오의 볼륨을 한껏 높이자. 이젠 우리 모두가 치즈스테레오의 음악을 ‘발견’할 차례다.
글 | 골방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