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일의 첫 미니앨범 Boylife In 12"
데뷔 앨범의 가치는 음악의 질만큼이나 아티스트의 전혀 새로운 존재를 발하는 데에서 밝게 빛난다. 유별난 발성과 플로우의 MC로 이름을 알리던 김아일이 데뷔 앨범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건 프로듀서 신세하의 비트였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신세하의 습작들을 텀블러를 통해 듣고, 드럼의 차진 질감과 디페시 모드, 울트라복스로 위시되는 뉴 로맨티시즘을 떠올릴 만한 무드에 반해 그와 앨범 전체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 습작들 가운데 유일하게 앨범까지 수록된 ‘사과를 깨무는’은 그 때 김아일이 느꼈던 흥분이 무엇이었는지 더듬을 수 있는 트랙이다. 김아일(과 신세하)은 데뷔 앨범 < Boylife in 12” >를, 델 라 소울이,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가, 프린스가 내놓았던 ‘처음’의 다듬어지지 않은 바이브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앨범을 발표하는 지금, 김아일의 유별난 랩은 한국 힙합의 번쩍이는 독보가 되었다.
< Boylife in 12” >의 라임엔 밑도 끝도 없는 허영이나 세상을 해설하겠다는 의지가 없다. 순수보다는 치기가 더 어울리는 남자애의 일상은, 끝내주는 여자에게 동서고금의 가인을 빗대며 찬탄을 바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사랑 앞에서 비기 스몰도 ODB도 스눕 독도 부럽지 않을 그의 구애는 구차하지 않다. 그저 “날 치유하는 윗니”의 그녀에게 진짜 원하는 건 “명품보다도 값진 속살”인 그는, “새벽 춤에 널 빼앗기기엔 너무 아름”답다고 침대로 이끌어 질펀하게 새벽을 맞고도 “너를 예술로서만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려 할 따름이다. 여자를 등지고 뻣뻣하게 앉은 김아일의 모습이 담긴 커버는 앨범 전반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미지인 셈이다. 제 삶을 꼭 붙든 여성들에게 존경을 드러내고, 한국 최고의 대부를 아무렇게나 치켜세우거나, 짝퉁 폴로를 입고 친구들과 마시며 놀던 날을 그리워하는 건 귀여운 사족처럼 보인다.
앨범 크레딧은 단출하다. 2007년 게리스 아일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김아일은 상당한 곡들에 랩을 보태온 공이 있지만, 자기 앨범에서는 아마추어인 정윤희와 골드티의 목소리만 빌렸다. 정윤희는 앨범 곳곳에서 노래를 한다는 기색도 없이 어린 목소리로 흥얼대고, 정체불명의 레게 뮤지션 골드티는 7분짜리 대곡 ‘D.A.I.S.Y’의 괴상함을 부풀리듯 ‘지껄임’을 얹을 뿐이다. 그리고, 빈지노의 'Boogie On & On'를 만든 이다흰은 비트와 아트 어드바이징을, 부당하게 외면 받은 재지 아이비의 걸작 < Illvibrative Motif >의 모든 사운드를 관장한 프로듀서 비니셔스는 믹싱과 첫 싱글 ‘V*$*V’의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았다. 자코의 마스터링은 데이빗 보위, 루 리드, 디페시 모드 등과 작업한 엔지니어 에밀리 라자의 솜씨를 거쳐 더 분명한 소리를 자랑한다.
10개의 노래, 40분 4초의 러닝타임. 사실 더 많은 곡이 준비돼 있었다. 김아일은 루츠의 퀘스트러브가 < The Tipping Point > 를 내놓으며 썼던 “명반은 10곡이다”라는 언급을 그냥 따라서 앨범의 수록곡을 10곡으로 맞췄다. 앨범을 채운 말들마냥 치기 어린 결정. 하지만 여기서 곧장, 힙합이 힙합일 수 있었던 시대의 위대한 데뷔 앨범들 - 나스의 < Illmatic >, 에릭 비 앤 라킴의 < Paid in Full >, 부기 다운 프로덕션의 < Criminal Minded > (...) - 을 떠올릴 이들이라면, 김아일의 의도가 그저 농담처럼 닿진 않을 것이다.
김아일의 데뷔 앨범 < Boylife in 12” >는 레이블 Greater Fools Records가 내놓는 첫 작품이기도 하다.
_ 문동명 (imetmusic)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