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켈리는 뛰어난 보컬리스트인 동시에 프로듀서로, 지금까지 자신의 작품들을 대부분 직접 만들며 역량을 입증하였다. 그는 ‘따뜻한’ 음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곡으로는 “I Believe I Can Fly”가 그렇고, 앨범으로는 [Happy People/U Saved Me]가 그랬다. 그리고 지난 두 앨범 [Love Letter], [Write Me Back]이 그런 부분에 있어 정점이 아니었나 싶다. 베테랑으로서의 내공과 여유가 느껴지는 음악은 말 그대로 아티스트로서의 알 켈리를 증명하는 대목이었고, 동시에 그가 가진 하나의 맥락을 뚜렷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그의 시작은 [12 Play] 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데뷔 앨범에는 12 트랙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동명의 트랙에는 12가지 ‘플레이 방법’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후 TP(Twelve Play) 시리즈와 함께 [Double Up], [Untitled]로 이어지는 그의 정체성은 그 누구도 함부로 따라하기 힘들 만큼의 완성도 높은 음란함을 보여주었다. 비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음악을 이끌어 온 것도, 슬로우 잼(Slow Jam)이나 잠자리 무드의 음악들을 한 차례 끌어올린 것도 알 켈리이다. 그는 TP 시리즈 외에도 [R.], [Chocolate Factory] 등의 앨범을 통해 계속 성인용 음악을 선보여 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섹시함에 열광하였다.
이번 앨범 [Black Panties]는 그런 섹시함으로 무장한 작품의 연장선이다. “Legs Shakin”, “Marry The P***y”에서의 피치 다운된 후렴구 랩이나 트랩 사운드를 강하게 차용한 “Cookie”, “My Story”, “Crazy Sex”를 포함, 요즘 유행하는 디제이 머스타드 특유의 힙합 트랙 “Spend That”까지, 힙합 팬이나 알앤비 팬 모두가 반길 만한 트랙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Genius”, “Right Back”은 트렌드 중 하나인 피비알앤비(PBR&B)를 의식한 듯 하며 특유의 감미로움을 새로운 방식으로 선보인다. 딜럭스 버전에는 올해 가장 핫한 아티스트 퓨처(Future), 애틀랜타의 기대주 미고스(Migos), 최근 솔로 앨범을 낸 현재진행형 전설 주시 제이(Juicy J)까지 참여하여 좀 더 강한 느낌의 힙합 트랙을 만들어냈다.
본래 [12 Play] 때부터 지니고 있던 거친 면모를 세월이 지난 지금 그간의 원숙미를 더하여 다시 재단한 듯 하다. 과거의 구설수 때문에 그의 이런 음악들을 불편해 하는 일부 청자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가 지금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남성 아티스트들의 원조 격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세련된 19금 음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슬아슬한 선을 지켜내는 능력, 그리고 음악적 완성도가 뒷받침되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 대부분의 청자들은 ‘질펀하다’, 혹은 ‘더럽다’고 비난하기 마련이다. 다행히도 [Black Panties]는 음악적으로 접근해도 훌륭한 앨범이다. 그리고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정 무드를 즐기는 팬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작품이다. 프로듀서로서, 싱어로서, 앨범 아티스트로서 각각 그의 음악을 접근하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 방법일 것이다.
3곡의 보너스 트랙이 추가된 딜럭스 에디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