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이발관 이석원이 소개하는 유정균 1집 [외롭지 않을 만큼의 거리]
경쟁과 생존이라는 두가지 사슬에 얽매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뮤지션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음악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남과 경쟁해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한다. 때문에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강박이 앨범에, 혹은 음악에 채 숨기지 못한 채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잘했건 못했건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불안해하며 다음 앨범은 어떻게 꾸며야 할까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와중에 이 앨범을 접하게 되었다.
앨범을 들으며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자유로움이었는데 이 앨범에는 누굴 이겨야 겠다는 경쟁심이나 뭔가 보여주겠다는 우월감 혹은 과시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말해 멋지게, 잘, 이런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사랑하는 걸 한다는 편안함과 만든이의 '성의'만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 앨범의 주인공인 유정균이라는 뮤지션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밴드 세렝게티의 정규 앨범 뿐만 아니라 그간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온 앨범이 물경 수십장에 이르는 베테랑 뮤지션이다. 그 많은 앨범에서 베이시스트로서 작곡자로서 또는 보컬로서 혹은 디렉터로서 참여해 왔다. 그러면서 쌓여온 음악적 공력이 앨범에 녹아있되 다만 그것이 과시적으로 담겨있지 않다는 점에서 고수의 풍모가 느껴진다. 다시 말하지만 과시할려면 얼마든지 과시할 수 있는 그다.
내가 아는 유정균은 잠시도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뮤지션이다. 음악을 일로서만 대하거나, 자기표현의 수단으로밖에 삼지않는 여느 뮤지션들과 차별되는 대목이다. 그는 흔히 유수의 세션 베이시스트로서 잘 알려져 있지만 내가 아는 그는 베이시스트 이전에 창작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많은 아티스트이다. 그는 거의 항상 언제나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며 앨범에 대해 구상하고 생각을 모으는데 그게 내가 한결같이 지켜본 유정균의 모습이다. 농부가 농사를 짓듯 그에겐 쉼없이 앨범을 만드는 일이 자연스러운 행위인 것이다.
이 앨범은 세렝게티라는 확고한 음악세계가 있고 또 제이케이 김동욱과 함께 한 프로젝트 지브라라는 프로젝트 이후로 처음 선보이는 그만의 솔로앨범이다. 작사, 작곡, 연주, 노래, 프로듀싱등 앨범 전반에 걸친 거의 모든 것들을 그 혼자서 '처리'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만의 솔로앨범을 발표하는 이 시점에서 그가 택한 코드가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 나는 너무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의 여러 가치중 가장 중요하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간과되기 쉬운 덕목이 바로 자연스러움이기 때문이다. 팝음악의 본고장인 서양에서는 어떤 예술가든 무엇을 만들든 자연스러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가령 화면의 매끄러움 - 즉 자연스러움 이야기의 매끄러움 - 즉 자연스러움 인 것이다. 하여 음악에서도 하나의 앨범이 어느 한 부분 도드라짐 없이 - 가령 기계적인 손질이 많이 되었다던가, 중첩되는 더빙을 여러차례 반복해 인위적인 소리를 만들어낸다던가 위악적으로 가공된 소리의 힘을 강조한다던가하는 일 없이 그저 트랙 하나 하나가 물 흐르듯 편안히 흐르고 또 귀에 감겨온다. 모든 곡이 사심없이, 그저 흐른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내츄럴한 사운드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곡을 조각 조각 만들어 붙인 느낌이 아니라, 원래부터 하나의 곡이었던듯 자연스러운 곡쓰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위악적으로 힘을 강조하지도 않고 스타일리쉬함에 목매지도 않고 최근 유행하는 어쿠스틱 사운드의 정형성과도 상관 없는 유정균만의 자연스러움과 편안함. 또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멜로디가 진해지고 가사 표현이 풍부해진 점인데 이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음악에 고스란히 담는 뮤지션인만큼 나이가 들고 그가 겪는 세월만큼 그의 음악세계 또한 깊고 넓어진 탓이리라.
잠시도 쉬지 않고 음악을 만들기에 다른 멤버들의 일정때문에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금세 새로운 곡을 만들고 앨범에 대한 구상을 하는 그가 어느날 솔로앨범을 내겠다며 뚱땅 거린지 내가 알기로 이년이 훨씬 넘은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삼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자연스럽게 쌓인 곡을 추려서 거기에 곡을 붙이고 노랫말을 붙여 나간 것이다. 다듬고 또 만지고. 자 삼개월안에 작업을 마쳐야 해, 요이땅 해서 계획 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느슨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스트링이 고급스럽게 들어갔으나 그것으로 무얼 과시적으로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고 또 마냥 대책없는 느슨함도 아닌 관조하고, 조금은 축 늘어진 어느 가을 오후의 막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십일월의 날씨와 맞닿아있는 음악들. 중요한 것은 어떤 작품이든 듣는이가 편하게 느끼려면 그걸 만든 사람은 그 편안함을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유정균은 책장이 필요하면 가구점에 가서 규격화된 공산품을 사는게 아니라 나무랑 톱 망치등을 가져다 본인이 뚝딱 뚝딱 직접 만들어 쓰는 그런 사람인데 그래서 이 앨범은 마치 목수가 만든 책장같다. 물론 마음에 들때까지 작업은 계속 거듭되었다. 마음에 설탕을 마구 발라주다가 또 금세 처연하게 가라 앉히는.
당신이 이 앨범을 만나게 되면 그건 단순히 하나의 음악이나 한 장의 앨범을 듣는게 아니라 어떤 한사람을 만나게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유정균이고 처음엔 카스테라 같기도 하고 솜사탕같기도 한 부드러움이 마지막 곡 '마이룸'의 처연함에 이르면 어느새 앨범을 거꾸로 다시 듣게 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한 사람의 감정의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한 듯한 기분을,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을 진하게 만나본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