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는 존재들의 연대를 위하여
대중성과 현장성의 조화를 이룬 록 싱어송라이터
임정득 2집 [당신이 살지 않았던 세계]
어느 겨울,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은 한 남자가 3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굴뚝 아래에 그가 마이크를 쥐고 섰다. 구미시 외곽에 위치한 스타케미칼 공장 근처로 모여든 사람들은 여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절로 손뼉을 쳤고, 이탈리아 민요를 록 버전으로 만든 를 불러줄 때엔 서로에게 흥을 얻어 몸을 흔들었다. ‘아스팔트 위 작은 그녀’는 임정득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평범한 이들을 투사로 만들고, 가난한 이들이 인간으로 살기 위하여 죽음을 택하게 만드는 사회, 그러니까 죽음으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노동문화와 진보예술의 장은 급격히 축소되었고, 창작집단에선 젊은 피의 수혈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형 노동조합들마저 자체 노동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문화행사 하나 스스로 기획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행사기획사에 의뢰하여 ‘액수’에 따라 노래패와 가수를 섭외하는 실정이다. 예술노동과 작품의 가치에 대한 개념은 아직도, 문화운동을 여전히 도구화하는 수준 언저리에 낙후되어 있다. 새로운 문화자극도 미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예술과 인간 그리고 작품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작과 연대로써 항상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렬함과 부드러움, 현장감과 서정의 조화
영남대학교 ‘예사가락’ 출신으로 ‘좋은 친구들’에서 노래운동을 한 임정득은 2010년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에 발표한 첫 정규앨범 [자유로운 세계]를 통하여 스스로 작사하고 작곡하는 음악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2015년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앨범 [당신이 살지 않았던 세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사와 작곡 그리고 프로듀싱을 맡아 자기 음악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 일곱 곡을 작곡하면서도 박재홍과 김우직 그리고 이지은 등의 편곡과 여러 연주인의 도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앨범의 완성도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노랫말을 쓰면서 권정생과 김남주의 글을 인용하고, 장정일과 신경현의 시를 가져오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만들어낸다. 혼자만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음악이 지닌 특징은 평범한 사람들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음악적 발전을 함께 도모하는 것이다. 오페라와 록의 만남을 잘 소화한 <당신이 살지 않았던 세계에 관하여>라든가, 록발라드의 형식을 취한 <멈추지 말아줘>와 <평범한 사람에게>는 서정성과 강렬함을 함께 품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예쁘게 부르는, 정확하게 말하면 힘겨운 상황 속에서 희망을 불러내고자 애쓰는 <평범한 사람에게>가 있으며, 이국의 선율을 담은 <그랬으면 좋겠다>와 고단한 노동자들의 겨울풍경 너머로 캐럴송을 흐르게 하는 <눈물겹지만 첫눈이다>가 있다. 이 장면들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를 초대하여 풍성하게 조율한 사운드가 동행한다.
특별히 귀를 기울이게 될 곡들도 여럿이다. 한번 들어도 후렴구를 기억할 수 있는 와 1990년대 록 스타일인 <아스팔트 위 작은 깃발>은 공연장과 현장에서 힘을 발휘할 곡들이다. 또한 비참한 세계를 그리며 다른 삶을 가르친 권정생 선생과 함께 부르는 듯한 <가난한 사내>와 <그 이름>은 품과 스케일이 넓어 좋은 곡들이다. 일렉트릭 기타가 적절한 역할을 하는 록의 강렬함과 세심하게 다듬어낸 부드러움을 조화시켰다. 이러한 시도들은 결국 현장성과 서정성의 조화로 귀결된다.
존재와 저항 그리고 위로의 음악
임정득의 노래들을 따라 가보면 만나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살아서, 싸우면서 존재한다. 다른 하나는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창작자와 동료들의 마음이다. 그들은 저들과 하나가 된다. 저항함으로써 존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지지와 위로의 마음을 품고 있는 이 음악을 다시 세 개의 낱말로 압축하면 ‘존재와 저항 그리고 위로’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너를 넘어선 ‘저항하는 존재들의 연대’가 [당신이 살지 않았던 세계]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다.
벽이나 둑의 벽돌 틈을 뚫고 고되게 자라는 풀들을 발견하면 경외심을 품곤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어디에든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든 줄기를 뻗는다. 요란한 환영행사는 없을지라도 세상 여기저기 새롭게 돋아나고 있는 음악들을 모두 담기엔 마음바구니가 부족하다. 우리가 할 일은 생기어린 반항과 치열한 저항이 만나 희망을 전망으로 바꾸도록 지지하는 것이다. 여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임정득”이 있다.
나도원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위원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