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순' [고사리장마], 고요한 변곡점을 위하여...
제주에 사는 '장필순'의 집에는 제주로 여행을 왔다 조용히 들르는 음악하는 동료나 선후배들이 몇몇 있다. 사는 이야기, 음악 이야기 자연스레 주고 받다 보면 또 이런 저런 영감을 받기도 한다. 이전 앨범의 "맴맴"도 후배 '이규호'가 제주로 여행왔다 쓰게 된 곡이었다. 7집 음반이 마무리된 즈음, 후배 '이적'이 방문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녀와 너무 어울릴 것 같은 곡을 썼다며 그녀의 거실에서 기타를 잡았다. 그 곡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조용히 2015년 '장필순'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한 곡, 한 곡 공은 들이되 무겁지 않게 그때 그때 부려놓기로 했다. 올해, 장필순은, 여러차례의 싱글로 새 앨범을 향한 여정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제주의 봄에 짧은 장마가 있다. 안개비가 지나고 나면 키 작은 고사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훌쩍 자란다. 그 짧은 비가 뭐라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그 비를 제주 사람들은 '고사리장마'라고 부른다. 삶에는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도 있지만 서서히 준비를 응축시키고 있다가 어떤 시점 크게 터트려 보이는 변화도 있다. 인생의 변곡점이 되는 이런 순간들은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전과 달라졌음을, 그리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고사리장마"는 그런 삶의 조용하지만 폭발적인 변곡점을 은유한다. 늘 함께 걷던 길이 이별 뒤 달라보인다. 비 한 번 지난 후 키가 훌쩍 큰 고사리처럼. 누군가의 상실을 통해 전과 후가 도무지 같을 수 없는 큰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잃은 뒤에는 뭔가 자라는 것도 있다.
'이적'은 제주에서 이런 이야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곡을 썼다. '이적'과 '장필순'의 조합은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던 이례적인 조합이지만, 한 번 떠올려보니 또 수긍이 가는 발견이다. 그리고 이 곡, '이적' 자신이 "누나와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내놓았다는 말 그대로 너무나 잘 어울린다. 차곡차곡 투명하게 쌓이는 음성은 그대로 부슬부슬 비가 된다. 안개비처럼 뽀얗게 퍼지는 코러스 사이 건반이 뚜벅뚜벅 걷는다. '이적'의 가사는 무심하게 여백을 품고 '장필순'의 음성은 촉촉하게 비내리고 사이사이 바람이 부는 숲길이 된다. 이제, 훌쩍 자란 고사리들과 함께 찾아온 봄, 이 한 곡의 노래는, 이전과 이후를 달리 할, 주의 깊은 여정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언제나 현재를 살고, 현재의 노래를 부르는 삼십여년 경력의 아티스트는 여전히 삶의 변곡점을 만들어내고 의미있는 변화를 받아들인다. 이제, 이 노래로 시작되는 여정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면 될 일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