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통 없는, 오로지 자신만의 ‘끝내주는’ 음악 – [이재철]
무리를 짓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홀로 자라나는 이름 없는 식물이 있다.
왜 하필 그런 곳에 억척스레 자라나서 누구를 향해 피는 것도 아닐진대 자신만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향기로 피는 꽃을 우연히 발견하곤, 그 앞에 걸음을 멈추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바라보던 경험이 우리들 중엔 있다.
여기 그런 식물을 닮은 노래들이 있다.
다소 어색하고 기묘하지만, 듣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만드는 신기하고 독특한 멜로디, 기존의 박자 체계를 무시하는 듯한 예측불허의 리듬, 그리고 누구와도 닮은 구석이 없는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와 제멋대로의 노랫말. 이렇게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이재철의 노래 9곡은 기존의 가요나 팝의 작법과는 사뭇 동떨어져 있으며 그 계통을 짐작할 수 없다.
나를 비롯해 내가 아는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으레 선배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기술이나 창법 등의 영향을 받기에 크건 적건 그것이 자신의 결과물에 묻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재철의 음악은 그 당연함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나 있다. 어떤 뮤지션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짐작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또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재철 본인은 red hot chili peppers를 좋아하고 nirvana를 즐겨 카피하며 오랜 시간 자신의 곡을 만들어 왔다고 밝혔지만 솔직히 그의 음악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도통 짚이지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적어도 한국 가요계만을 놓고 보더라도 이런 생뚱맞은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재철의 음악이 그로테스크하다거나 지나치게 실험적인 음악이라는 말은 아니다. 처음엔 당혹감과 어색함이 먼저일 테지만 두 곡, 세 곡이 지나고 마침내 마지막 곡이 끝날 즈음에는 어느새 마음의 경계가 풀어져 다시 처음부터 또 듣고 싶게 만드는 묘한 음악. 하지만 이재철 노래의 어떤 부분이 그런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가를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며 애석하게도 나에겐 그런 글재주가 없다. 소설가 페터 회의 말처럼, 어쩌면 좋은 음악을 언어로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표현력이 한참이나 부족한 나는 그런 멋진 음악들을 줄곧 이렇게 부르곤 했다. -‘끝내주는 음악'.
이재철의 거칠고 투박한 원석 같은 노래들을 보석 같은 한 장의 멋진 앨범으로 다듬어내기 위해 애쓴 친구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밴드 게이트플라워즈의 베이시스트 유재인은 긴 시간 동안 이번 앨범의 프로듀싱과 어레인지, 베이스 연주까지 담당하였고 그의 수고와 열정, 탁월한 감각이 아니었다면 이 앨범이 이토록 멋진 사운드를 걸치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 외 세션으로 이번 앨범에 참여한 염승식(게이트플라워즈), 남궁숙(POW), 전진희(하비누아주)의 빼어난 연주는 각각의 트랙 안에서 꿈틀거리며 빛을 발하고 있다.
짐작컨대 이재철의 앨범은 달콤한 인디팝을 기대하는 이들에겐 칡뿌리를 씹는 기분일 것이며, 근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의 근사한 목소리를 기대하는 이들에겐 어느 술꾼의 푸념 섞인 노랫가락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내주는’ 노래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이들에게는 지난 밤 뒷마당에 떨어진 운석 같은 귀한 선물이 될 것임을 나는 진정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