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성이 노래를 황명수가 시타르 연주를 어설프게 연기하며 지금과 사뭇 다른 홍대 거리를 걷다 옛 곱창전골에 들어서면 전자올겐 치는 시늉을 하고 있는 김재권이 있다. 코코어의 ‘슬픈 노래’ 뮤직비디오 속, 따뜻하고 귀여운 소리를 낼 것 같은 건반 앞에 흔들대는 김재권의 모습은 마치 .59의 원형처럼 보인다. 지금의 .59와 다른 점이 있다면, 김재권의 곁에 그의 아내 문지혜가 함께 한다는 것. .59는 사랑에서 비롯돼 사랑을 노래하는 밴드다. 나이를 더해 분노가 사그라들면서, 김재권은 둥글둥글해진 마음으로 사랑을 향하는 노래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수년간 쌓인 노래들을 모아 2012년 독자적으로 앨범 [가고 오는 정든 길]을 발표했다. 공연 한번 없이 갑자기 나타난 .59의 첫 앨범이 인디 신에 떠들썩한 반응을 끌어낸 건 아니었지만, .59를 아는 이들은 공연장을 찾아 그들의 노래를 조용조용 따라 불렀다.
“뜨겁던 그 여름은 가고 투명히 빛나는 하늘. 서늘한 바람결이 좋은 그대는 지금 어디. 조금씩 느려지는 걸음 낙엽이 구르는 거리. 쓸쓸한 뒷모습만 남은 그대는 지금 어디.” (‘여기 있어요’)
.59 의 새 앨범 [사랑이 머무는 자리]는 “우리 모두 리듬의 세계로 떠”나자고 권하는 댄서블한 트랙들이 도드라진다. 하지만 도통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런 감상은 아마도 .59의 두 번째 앨범의 트랙들이, 사랑이 (머물렀던 자리가 아닌, 여전히) 머무는 자리에서 저 멀리 있는 사랑을 부르는 노래로 채워진 것처럼 배치됐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 머무는 자리]에는 서글픈 노래 ‘여기 있어요’의 흔적이 흩어져 있다. 인트로부터 “여기 있어요, 여기잖아요.”라는 문지혜의 높은 부름으로 시작하는 앨범은, ‘여기 있어요’를 일렉트릭/어쿠스틱 두 버전으로 나눠 실었다. 다함께 춤추자는 노래들을 ‘여기 있어요’가 둘러싼 모양새. 직접적인 제목의 앰비언트 ‘Alone in the city’ 이후, 춤을 멈추고 “느리게 돌아선 마음”을 기억하는 노래가 이어지는 구성 역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 어미 ‘-요’로 끝나는 .59의 노랫말을 두고 김재권은 “말을 공손히 해서 숨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3번 트랙 ‘어느샌가’ 옆에 붙은 날짜는, 이번 앨범 속 사랑이 연애의 그것보다 훨씬 넓은 말이라는 걸 가만히 드러내는 기호다.
데뷔작 [가고 오는 정든 길]이 김재권 혼자 만든 소리와 멜로디에 문지혜가 목소리를 더한 격이었다면, [사랑이 머무는 자리]는 두 사람이 엄연한 밴드의 유닛으로 만든 앨범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보컬의 명도다. 낮게 읊조렸던 [가고 오는 정든 길]이 바로 옆에서 주고받는 대화 같았다면 한껏 소리 높여 부른 [사랑이 머무는 자리]는 저 멀리서 서로를 부르는 노래같이 들린다. 외향적인 사운드 또한 대번에 전작과 구분된다. 신디사이저는 종종 과격하게 음을 높이고 곳곳에 적극적으로 노이즈를 차용했다. 오랜만에 기타와 베이스를 들어, [사랑이 머무는 자리]의 사운드를 대표하는 댄스 트랙들에 박력을 보태는 한편, 디스토션 머금은 기타 솔로로 마지막 트랙 ‘여기 있어요’ 어쿠스틱 버전의 비감을 극대화 했다.
덧붙임. 밴드 이름 .59는 윤대녕(이 인용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문장 “1분이 되기 전의 영원한 59초”에서 따왔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쩜오구”라고 부른다.
문동명
2015 Helicopter Record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