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헌진은 블루스 뮤지션이다. 블루스 뮤지션으로 음반에 참여했고, 델타 블루스의 문법을 준수하며, 보틀넥을 자주 사용하지만, 수트를 입고 모자를 쓰진 않는다. 사실 처음엔 그렇게 입고 공연한 적도 있는데, 본인 스스로 옷을 벗었다. 지난해 발표한 두 장의 EP 와 으로 걸쭉한 블루스를 구사해놓고선, 김일두와의 스플릿 음반에선 포크 뮤지션에 가까운 면모도 선보였다. 변신이라기 보단 덜어낸다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리는 음악. 블루스맨의 복식을 포기했던 것처럼, 몇몇 곡에선 잠시 블루스를 내려놓았다. 질주하는 슬라이드 기타와 화려한 싱코페이션 대신, 정직한 아르페지오와 균등한 리듬이 그 자리를 꿰찼다. 하헌진은 그렇게 1년 동안 블루스란 장르에 함몰되거나 천착하지 않고, 방대한 블루스의 아카이브에서 필요한 부분을 꺼내고 조립하며 당대의 블루스, 서울의 블루스, 그리고 하헌진의 블루스를 정성껏 세공했다.
다시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하헌진이 세 번째 EP를 발표한다. 이름은 . 외자인 음반 이름에서 자연스레 를 연상케 되는데, 아무래도 는 최근작 의 연장선이라기보다 쪽에 좀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는 하헌진이 새로 마련한 녹음실에서 녹음했다. 그렇지만 소리의 결은 다시 홀로 하헌진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것처럼 들린다. 음반에서 규칙적인 뭔가를 찾는 노력은 그만두는 게 좋다. 사인파 곡선 같은 바이브레이션, 박자에 딱 들어맞는 연주 같은 건 없다. 그런 감흥보단 호흡곤란, 음정 이탈마저 불사하고 일단 불러 젖히는 과감한 목소리, 메트로놈을 조롱하듯 본능적으로 밀고 당기는 연주가 남았다. 원초적이고, 날 것으로 펄떡인다. 마지막 곡 ‘오 이젠’의 한 번만 더 떨면 숨이 멈춰버릴 것 같은 목소리를 듣는 일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노랫말 역시 의 느긋함과 약간의 흥분, 의 관조적인 태도를 돌아 다시 처럼 대체로 무뚝뚝한 채, 간혹 직설적이다. 그러나 ‘난 뭐든 좋아’의 “너만 원한다면, 너랑 잘 수 있다면, 좋을 대로 해”, ‘이렇게 살 바엔’의 “이렇게 살 바엔 불타서 죽지, 이렇게 살 바엔 얼어서 죽지”같은 직설적인 가사는 그 말의 진위나 의도를 파악하기보다, 그저 그 표현과 위트 자체를 즐기게 된다. 최근 에 수록된 ‘내 방에 침대가 생겼다네’의 “정신없이 물고 빨고 땀에 쩔어 뒹굴고”란 구절 역시 같은 궤에 둘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헌진의 ‘지금’이라면, 이런 변화에 대해 한마디 보태기보다 있는 그대로 그 가사와 노래를 받아들이는 게 옳은 일이 아닐까.
하헌진의 현재를 추측하는 일은, 그의 한 곡을 정성껏 듣는 것과 같다. ‘원 테이크’란 말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2분, 또는 3분간의 밀도 높은 고농축의 개인적 순간들. 그 순간은 하헌진이 곡을 녹음한 순간, 이야기를 담아낸 순간과 그 무엇보다 가까이 맞닿아 있을 것이다. 풋풋하고 새롭기에 흥미로운 단계를 훌쩍 넘어, 하헌진은 세 번째 EP에서 더욱 더 하헌진의 블루스를 확고히 했다. 음반 디자인은 역시나 하헌진의 전작을 모두 책임진 신덕호가 맡았다. 박다함의 헬리콥터 레코즈가 발매하는 두 번째 음반. 향뮤직에서 단독으로 판매한다.
-유지성([GQ] 피처 에디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