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하헌진이 세 번째 EP를 발표한다. 이름은 . 외자인 음반 이름에서 자연스레 를 연상케 되는데, 아무래도 는 최근작 의 연장선이라기보다 쪽에 좀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는 하헌진이 새로 마련한 녹음실에서 녹음했다. 그렇지만 소리의 결은 다시 홀로 하헌진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것처럼 들린다. 음반에서 규칙적인 뭔가를 찾는 노력은 그만두는 게 좋다. 사인파 곡선 같은 바이브레이션, 박자에 딱 들어맞는 연주 같은 건 없다. 그런 감흥보단 호흡곤란, 음정 이탈마저 불사하고 일단 불러 젖히는 과감한 목소리, 메트로놈을 조롱하듯 본능적으로 밀고 당기는 연주가 남았다. 원초적이고, 날 것으로 펄떡인다. 마지막 곡 ‘오 이젠’의 한 번만 더 떨면 숨이 멈춰버릴 것 같은 목소리를 듣는 일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노랫말 역시 의 느긋함과 약간의 흥분, 의 관조적인 태도를 돌아 다시 처럼 대체로 무뚝뚝한 채, 간혹 직설적이다. 그러나 ‘난 뭐든 좋아’의 “너만 원한다면, 너랑 잘 수 있다면, 좋을 대로 해”, ‘이렇게 살 바엔’의 “이렇게 살 바엔 불타서 죽지, 이렇게 살 바엔 얼어서 죽지”같은 직설적인 가사는 그 말의 진위나 의도를 파악하기보다, 그저 그 표현과 위트 자체를 즐기게 된다. 최근 에 수록된 ‘내 방에 침대가 생겼다네’의 “정신없이 물고 빨고 땀에 쩔어 뒹굴고”란 구절 역시 같은 궤에 둘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헌진의 ‘지금’이라면, 이런 변화에 대해 한마디 보태기보다 있는 그대로 그 가사와 노래를 받아들이는 게 옳은 일이 아닐까.
하헌진의 현재를 추측하는 일은, 그의 한 곡을 정성껏 듣는 것과 같다. ‘원 테이크’란 말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2분, 또는 3분간의 밀도 높은 고농축의 개인적 순간들. 그 순간은 하헌진이 곡을 녹음한 순간, 이야기를 담아낸 순간과 그 무엇보다 가까이 맞닿아 있을 것이다. 풋풋하고 새롭기에 흥미로운 단계를 훌쩍 넘어, 하헌진은 세 번째 EP에서 더욱 더 하헌진의 블루스를 확고히 했다. 음반 디자인은 역시나 하헌진의 전작을 모두 책임진 신덕호가 맡았다. 박다함의 헬리콥터 레코즈가 발매하는 두 번째 음반. 향뮤직에서 단독으로 판매한다.
-유지성([GQ] 피처 에디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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