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성과 대중적 멜로디의 힘을 놓치지 않는 관록의 신스 팝 듀오, 펫 샵 보이즈. 로맨틱함과 정적인 면이 부각된 새 앨범 [Elysium]
펫 샵 보이즈는19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꾸준히 댄스 플로어와 팝적인 멜로디와 교집합을 형성하며, 그것이 이제는 바로 그들만의 확고한 ‘개성’이 되었고, 이들을 수많은 후배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존경하고 대중도 꾸준히 애정을 표하게 만드는 근거가 되었다.
단순한 비트 속에서 후렴 파트의 보컬의 화음으로 부드럽게 진행되는 첫 곡 ‘Leaving’, 잔잔한 몽환적 낭만을 주는 ‘Invisible’ , 올림픽 테니스 예선 경기에서의 퍼포먼스를 통해 처음 공개한, 밝고 경쾌한 느낌의 첫 번째 싱글 ‘Winner’등 12곡 수록!
항상 그들은 팝적인 부분을 견지해왔지만, 이번 신보는 그 가운데서도 더욱 부드럽고 편안하며, 낭만적인 면을 강조했다. ‘고집쟁이 신스 팝 형님들’이 들려주는 이 로맨틱한 사운드에서도 전자음이 전하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소리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진짜 ‘음미’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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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성과 대중적 멜로디의 힘을 놓치지 않는 관록의 신스 팝 듀오,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의 로맨틱함과 정적인 면이 부각된 새 앨범 「Elysium」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의 2010년 지산 벨리 록 페스티벌 무대는 나와 같은 1980년대 팝 음악 팬들은 물론 일렉트로닉 계열 음악, 댄스 팝적인 음악을 사랑하는 현재 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던 멋진 무대였다. 취재를 위해, 그리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 여전히 열심히 공연장을 찾지만, 그에 비해선 예전처럼 무대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열성적으로 방방 뛰면서 공연에 온 몸을 맡기기가 체력의 한계 때문인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래도 그 날 만큼은 정말 신나게 뛰고 몸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공연을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그 날의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종이 상자들’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함께 공연을 즐긴 독자라면 이 상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마 알 것이다. 다른 유명 아티스트들이 대부분 화려한 LED전광판을 활용해 배경화면을 띄워 공연의 분위기를 살렸던 것과 달리, 펫 샵 보이즈의 경우는 바로 거의 어린이 사람 한 명이 들어가도 될 만한 크기의 정육면체들 수십 개를 무대 뒤에 배치하고 이것들이 줄에 매달려 위 아래로 오르내리는 방식으로, 또는 댄서들이나 스탭들에 의해 곡에 따라 재배치되면서 거기에 각각 다른 영상을 프로젝터로 투사하는 방식을 택했다. 사실 그것은 아이디어 면에서 ‘혁신적’이면서도 동시에 ‘고전적’인 방식이다. 공연이 다 끝난 후, 관객들의 요구로 무대를 철거하는 스탭들은 그 상자들을 던져주었을 때 살펴 본 바로는 그냥 평범한 흰 색 골판지 종이상자였을 뿐이지만, 공연에서는 그렇게 멋진 소품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펫 샵 보이즈가 펼친 음악 역시 지난 30년간 이런 느낌으로 우리 곁에 있지 않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같은 일렉트로닉 팝 음악 중에서도 펫 샵 보이즈의 음악은 그들의 데뷔 시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그렇게 ‘첨단의 사운드’로 승부수를 띄운 적인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이들과 함께 ‘신스 팝의 살아있는 트로이카’로 불릴 만한 밴드들인 디페쉬 모드(Depeche Mode)나 뉴 오더(New Order)를 떠올려보자. 세상이 얼터너티브 록에 한창 물들어 있을 때, 디페쉬 모드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가장 어두운 면을 극대화하여 오히려 인더스트리얼 록에 비견할 트렌디함을 끌어냈고, 뉴 오더는 브릿팝의 시대가 오자 자신들의 전신인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포스트 펑크가 남긴 기타 록의 스트레이트함을 다시 앞으로 끌어내 자신들이 후배들에게 뒤쳐질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펫 샵 보이즈는 굳이 그런 변화를 주려 애쓰지 않았다. 19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그들은 꾸준히 댄스 플로어와 팝적인 멜로디와 교집합을 형성하는 지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이제는 바로 그들만의 확고한 ‘개성’이 되었고, 이들을 수많은 후배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존경하고 대중도 꾸준히 애정을 표하게 만드는 근거가 되었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어떤 방향으로 음악에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보편적 대중은 그 속에서도 비트를 압도하는 좋은 멜로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충실히 지킨 뮤지션들은 트렌드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결국 펫 샵 보이즈는 바로 이 점에서 최고의 재능을 발휘한 그룹이었다. 계속 꾸준히 새롭고 귀에 와 닿는 멜로디를 담아내면서도 그것을 담는 그릇은 굳이 억지로 최신 디자인을 고집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바로 펫 샵 보이즈를 시대를 뛰어넘어 음악적 아이콘(Icon)의 자리에 올라 있는 아티스트로 이제는 당당히 평가해도 좋은 이유라 할 것이다.
펫 샵 보이즈의 역사 속에서 최고로 낭만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새 앨범 「Elysium」
라이브 앨범 「Pandemonidum」(2010)의 발표와 함께 이어진 투어를 마친 후, 이미 지난 해 9월부터 펫 샵 보이즈는 다음 스튜디오 앨범을 위해 총 16곡의 노래를 작곡해놓았다고 발표했다. 그 후 실질적인 레코딩은 작년 11월부터 진행되기 시작했고, 거의 1년 정도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올해 2월에는 1996년부터 2009년까지 그들이 발표했었던 비사이드 곡들을 모은 두 번째 비정규 트랙 모음집 「Format」을 공개했다. 실질적으로 그들의 앨범 레코딩은 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새로운 프로듀서 앤드류 도슨(Andrew Dawson)과 함께 진행되었다. 그 중 한 곡인 ‘Invisible’이 6월 경 밴드의 공식 홈페이지와 유튜브 페이지에 공개되면서 서서히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앨범의 타이틀이 「Elysium」으로 밝혀진 것도 이 때 즈음이었다. 그리고 올림픽 테니스 예선 경기에서의 퍼포먼스를 통해 싱곡 ‘Winner’를 처음 공개했고, 8월 초 아이튠즈 전용 EP 「Winner」를 공개해 앨범의 일부를 팬들을 위해 빨리 디지털로 공개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英雄)이나 선인(善人)이 사후에 가는 낙원, 즉 이상향이나 천국으로 묘사된 곳의 이름인 「Elysium」을 이번 앨범에 사용한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앨범의 커버는 (정말 어느 낙원의 바닷가에 온 것처럼) 파랗고 맑은 바닷물 위에 햇살이 부셔져 반사되는 낭만적 장면이 담겼다. 그 위를 덮은 하얀 사각형에 쓰여진 그룹명과 앨범 타이틀이 커버의 전부다. 그리고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간의 펫 샵 보이즈의 앨범들 가운데 가장 정적(靜的)이고 로맨틱한(?) 느낌들로 가득하다. 쉽게 말해서, 이 앨범에서 ‘Go West’나 ‘Se A Vida E’, ‘New York City Boy’같은 경쾌하고 화려한 비트의 댄스 팝 트랙들을 기대하는 것은 일단 접어두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펫 샵 보이즈의 디스코그래피를 따라왔었던 팬들은 이런 사운드가 항상 그들 음악의 일부였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결국 지난 지산 밸리에서 그들이 2집 「Actually」(1987)에 수록되었던 ‘King's Cross’나 ‘Always on My Mind’ 12인치 싱글의 비사이드 곡이었던 ‘Do I Have To?’를 연주했던 것은 바로 이 앨범을 위한 전조였던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단순한 비트 속에서 후렴 파트의 보컬의 화음으로 부드럽게 진행되는 첫 곡 ‘Leaving’을 시작으로 마치 1980년대에는 아트 오브 노이즈(Art of Noise)의 ‘Moments In Love’에서 느꼈던 것 같은 잔잔한 몽환적 낭만을 주는 ‘Invisible’이 지나면, 그나마 이 앨범에서 가장 밝고 경쾌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Winner’가 들려온다. 하지만 예전 같았으면 이런 곡에서 썼을 빠른 비트를 그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코러스와 박자를 맞추는 것 같은 신스 드럼 사운드가 귀를 집중시키는 ‘Your Early Stuff’, 비트의 속도감에서는 앨범에서 가장 빠른 편에 속하는 (그래서 더욱 초기 시절의 히트곡들이 연상되는) ‘A Face Like That’를 지나면 이 앨범에서 가장 아름답고 국내 팬들의 취향에도 맞을 발라드 ‘Breathing Space’가 흐른다. 심플하고 깔끔한 닐의 보컬이 정말 로맨틱하게 와 닿는다.
한편, 가사의 내용이 레이디 가가(Lady Gaga)를 비꼬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NME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토리나 은유를 전혀 담지 않고 일기를 쓰듯 가사를 쓰는 요새 팝 스타들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이라 해명한 트랙인 ‘Ego Music’은 ‘West End Girls’이후 오랜만에 닐의 무덤덤한 ‘나레이션 랩(?)’을 들을 수 있다. 펫 샵 보이즈의 낙원에서 울려 퍼질 ‘찬송가’라고 하면 딱 어울릴 여러 게스트 코러스의 화려한 코러스, 그리고 매우 복고적인 신시사이저 연주가 인상적인 ‘Hold On’, 1980년대 소피스틱 팝(재즈 팝+신스 팝) 사운드의 향수를 끌어오는 듯한 분위기를 전하는 ‘Give It A Go’, 차분하지만 영롱한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보컬의 매력이 빛나는 ‘Memory Of the Future’, 살짝 어두운 분위기를 견지하면서 그 속에 펫 샵 보이즈가 슬로우곡들에서 자주 보여준 특유의 우울한 서정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Everything Means Something’, 정말 그들의 초기 앨범의 스타일로 회귀한 듯한 신시사이저로 만든 스트링 세션이 낮지만 조밀한 비트와 조화를 이루는 마지막곡 ‘Requim in Denim And Leopard Skin’까지 이번 앨범을 통해 그들이 작정하고 풀어가는 ‘낭만주의’는 계속 이어진다.
항상 그들은 팝적인 부분을 견지해왔지만, 이번 신보는 그 가운데서도 더욱 부드럽고 편안하며, 낭만적인 면을 강조했다. 어쩌면 최신의 한국 틴 팝 댄스뮤직에서조차 덥스텝의 무겁고 귀를 자극하는 비트를 듣는 요즘 10대들이 이 음반을 들으면 ‘밋밋하다’는 불평을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고집쟁이 신스 팝 형님들’이 들려주는 이 로맨틱한 사운드에서도 전자음이 전하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소리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진짜 ‘음미’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