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hained (언체인드) [호저]
2001년 1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그 무렵, 부산에서 한 록 밴드가 활동을 시작했다. 언체인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를 뒤흔든 시애틀 그런지, 그 중에서도 '앨리스 인 체인스'의 영향이 여실히 느껴지는 음악을 선보였다. 묵직하고도 단단한 연주를 바탕으로 한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매너가 입소문을 타고 여기저기 알려질 무렵, 밴드는 미니앨범 [Push Me] (2005)를 발표했다. 언체인드의 노래를 들은 록 마니아들은 '시애틀 그런지를 제대로 구현한 음반'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랬다. 마치 미국에서 앨범을 낸 것처럼 노래 가사조차 모두 영어로 썼다.
하지만 언체인드는 결국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실력 있는 밴드, '빠다 삘'나는 밴드라는 수식이 별다른 의미가 없어진 지금 같은 때에 그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더군다나 행사에 나가 '소리 질러'를 외칠 붙임성도,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할 융통성도 없는 밴드라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 밴드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대개 해체되곤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번의 멤버 교체가 있긴 했지만 언체인드가 해체되는 일은 없었다.
2010년에는 경성대 강당에서 거하게 10주년 기념 공연을 벌였으며, 2012년에는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공연을 통해 신곡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그 곡들이 음원으로 공개되는 일은 없었다. 2013년, 그들이 존경하는 뮤지션 윤병주 (노이즈가든, 로다운30)의 조언아래, 첫 정규앨범 발매에 앞서 싱글을 발표하기로 한다. '호저 (豪猪)'. 고슴도치를 연상시키는 이 동물은 몸에 난 가시 때문에 아무리 추워도 서로 붙어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호저의 딜레마). 8년 만에 공개되는 언체인드의 새 음원, '호저'는 이처럼 가시를 바짝 세우고 음악 팬들을 찾아왔다.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자신을 들을 수 있겠느냐는 듯한 얼굴을 하고.
가슴을 조이게 만드는 리듬 섹션과 묵직한 기타 리프. 암울한 멜로디 라인과 절규하는 보컬. 그리고, 역시 윤병주의 소개로 이루어진 천재 프로듀서 '나잠수 (붕가붕가레코드, 술탄오브더디스코)'와의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은 레코딩을 통해 손실될 수 있는 그들의 음악적 에너지를 오롯이 담아내는 것은 물론, 각각의 소스에 새로운 생명력까지 부여하고 있다. 8년 전과 같은 듯하면서도 완숙미가 더해진 편곡과 연주는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반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가시'가 되어 아프게 찌를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호저'의 가사가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본래 언체인드가 영어로 가사를 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이 표현하는 음악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신곡을 통해 언체인드는 한글 가사로도 충분히 자신들의 음악을 살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관계 맺음'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호저'라는 존재로 형상화시킨 솜씨는 성장의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솜씨는 '명인'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진지한 태도와 뛰어난 연주력을 겸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호저'는 언체인드가 바로 그 흔하지 않은 예라는 것을 여실히 들려준다. 이 말이 허풍인지 아닌지는 직접 들어보고 판단할 일이다. / 박근홍 (게이트플라워즈 / AFA 보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