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원' [소셜포비아 OST (Socialphobia Original Soundtrack)]
'홍석재' 감독이 말하는 [소셜포비아 OST]... '소셜포비아'는 '김해원'과 내가 함께 작업하는 3번째 영화이면서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이전에 만든 2개의 단편, 학부졸업작품인 '필름'과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과정작품인 'keep quiet'의 음악을 그가 맡았다. 우리는 중앙대 영화학과 02학번 동기이다. '김해원' 또한 연출전공으로 졸업영화를 찍고 졸업했으나 이후 영화가 아닌 음악으로 진로를 정했다. 찍은 영화가 딱히 별로라서 그런 건 아니다. 그의 졸업영화는 그 해 졸업작품 중 손에 꼽았던 괜찮은 작품이었다. 다만 '김해원'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의 지난함보다 음악과 무대가 만들어내는 1회적이면서 그 순간에 완성되는 형태의 예술에 더 큰 만족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선택에 감사한다. 덕분에 나는 경쟁자가 아닌 음악감독이라는 동료를 얻었다. 영화연출을 전공한 음악감독과 작업하는 가장 큰 이점은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이해와 접근방식에 있다. 우리는 보통 편집단계에서 만난다. 물론 그 전에 시나리오를 보여주지만 본격적으로는 편집단계에서 만나서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눈다. 음악에 관한 얘기는 아주 늦게 시작하는 편이다. 초반엔 편집 자체에 대해 아주 상세한 수준까지 얘길 나눈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무슨 영화이냐, 어떤 영화이냐에 대한 얘길 주고받게 된다. 이 때의 '김해원'은 음악감독이라기 보단 동료연출자로서 영화에 대한 코멘트를 들려주는데 그 코멘트들이 후반작업에 있어 귀중한 지침과 놀라운 해결책이 될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한참 편집얘기만 들먹이다가 내가 생각하는 어떤 이미지와 전체 컨셉을 '김해원'에게 툭 던지면 음악작업이 시작된다. 보통은 레퍼런스를 하나 가지고 와서 그걸 통해서 얘길 시작해보는 편이다. '소셜포비아'의 경우 맨 처음 들고 간 레퍼런스는 '인디게임 더 무비' 라는 다큐멘터리였다. 영화에 독립영화가 있듯이 게임 쪽에도 인디게임 이란 영역이 있고 그런 인디게임 산업과 인디게임 제작자에 관한 다큐멘터리인데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업을 살아가는 사람이면 크게 울컥할 내용의 좋은 다큐이다. 쌩뚱맞게도 저 다큐를 가져간 이유는 '소셜포비아'로 맨 처음 떠올렸던 이미지가 RPG 게임이어서다. 영화 속 아이들이 '민하영'을 찾아간다고 우르르 몰려가는 모양새가 내겐 RPG 게임 속 플레이어들이 파티를 이루어 몹을 잡으러 가는 양상을 연상시켰다. 거기에 한술 더하면 영화 중반부 장세민을 만나러 호텔을 올라갈 때는 던젼에서 보스가 있는 방에 들어가기 직전의 계단을 오르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이 아이들이 반성 없이 계속 새로운 용의자를 사냥해나가는 형국을 고전 8비트 게임에 흘러나올법한 미디 풍의 음악으로 터치해준다면 아주 묘한 느낌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범인을 만들어내고 쫓아갈 때 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일반적인 형사 영화처럼 진지하고 처절하기 보다 그냥 재미난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컨대 '장세민'과 트윗 공방을 벌일 때의 장면처럼. 그 유희적인 느낌을 음악이 더 노골적으로 다루면 어떨까였다. 하지만 '김해원'이 말렸다. 그렇게 될 경우 이 아이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떠한 감정이입도 혹은 극 전개를 위한 최소의 동의도 하기 힘들 거라는 염려를 내비쳤다. 불행히도 그의 말이 맞았고 우린 다시 음악의 출발점을 찾아 헤맸다. 개인적으로는 입어보지 못한 옷에 대한 호기심처럼 8비트 RPG 게임 풍의 음악이 깔렸을 '소셜포비아'가 궁금하다.
그 무렵 지인에게 위키리크스와 줄리언 어싼지에 대한 다큐 '우리는 비밀을 훔친다'를 추천 받았는데 그 다큐가 다루는 정서적인 측면이 '소셜포비아'와 맞닿을 수 있다는 지점을 깨달았다. 나는 본질적으로 용민과 줄리언 어싼지가 동일한 타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물론 만랩 찍은 줄리언 어싼지에 비하면야 용민은 쪼랩에 지나지 않는다만. '김해원'도 이 다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는데 동의했고 우리는 그 다큐를 연거푸 감상했다. 사실 딱 잘라서 그래서 어디의 무슨 부분이 '소셜포비아'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 다큐를 보고 얘길 나누면서 '소셜포비아'의 음악작업이 시작된 것만은 분명하다. 편집할 때 우선은 음악이 필요하니 가이드를 깔아야 하는데 나는 원래 음악을 전혀 깔지 않고 편집하는 스타일을 선호해왔다. 그러나 전과 달리 장편편집이고 편집자의 스타일이 가이드음악을 사용하는 걸 선호하여 이번엔 가이드를 깔고 편집을 했다. 대신 '김해원'이 작업한 이전 단편에 쓰인 음악들을 가이드로 사용했다. 어차피 같은 사람이 만들 테니 아주 낯선 음악이 나오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헌데 편집하면서 놀랐던 건 대충 얹혀놓은 음악들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다. 현피 멤버들이 낮에 '민하영' 아파트를 찾아서 베란다 밖을 헤집으며 현장 검증하는 장면이나 목동공원에서 카론을 찾아 헤매는 장면 등에서 음악과 편집의 인-아웃점이 거짓말처럼 딱 맞았다. 연출자나 음악가나 계속 같이 호흡을 맞추다 보니 서로가 가지고 있는 호흡 자체가 거의 일치한 느낌이어서 신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딱 맞게 떨어지는 가이드음악이 진짜 음악작업을 할 때 큰 어려움으로 돌아왔다. 연출자 자신이 가이드음악에 너무 익숙해져서 오염된 상태가 된 것이다. 심지어 그 가이드음악이 음악감독이 만든 기존 곡이라서 더 멘붕인 상황이 되었다.
사실 실제로 '소셜포비아'에 쓰인 트랙에는 오리지널로 작곡된 곡 말고 예전 작품 '필름'과 'keep quiet' 음악이 다수 사용되었다. 최종적으로 6:2:2의 비율로 오리지널과 예전 음악이 섞여있다. 여기에는 가이드 자체가 너무 영화랑 잘 맞아떨어진 부작용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 이전에 만든 두 단편과 '소셜포비아' 사이에 어떤 일관된 흐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거칠게 말해서 '소셜포비아' 자체가 전반부는 'keep quiet'를, 후반부는 '필름'을 각각 이전 단편의 자장에서 움직인다고 느끼고 있다. 캐릭터 구분으로는 '용민'은 '필름'에서 자신의 잘못을 정정하기 위해 새로운 서사를 재구축해나가는 주인공 캐릭터의 연장선이고, '지웅'은 'keep quiet'에서 수많은 보통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가 커다란 사건에 휘말리고 종래 그 결말의 씁쓸함을 응시하는 주인공 캐릭터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지점을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다 만들고서야 문득 깨닫게 된다. 결국 창작자는 평생 똑같은 얘기를 조금씩 비틀어서 계속 반복한다는 어디선가의 문구가 맞았다. 음악의 혼재가 처음에는 불만족스러웠지만 위의 사실을 깨닫고 종래에는 필연적인 결과 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OST는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트랙을 말한다. 그런 의미라면 '소셜포비아'의 OST는 단어 그대로 오리지널하지 않다. 대신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김해원X홍석재' 3부작의 완결판 이라고 할 수 있다.
01. "Timeline" - 원래 가이드보다 훨씬 차갑고 뉴트럴하게 뽑혀서 만족하는 트랙이다. 머물지 않고 계속 흘러가는 실시간의 인상이 정확하게 음악에 담겨있다. / 02. "Socialphobia - The Beginnig" - 건반과 전자음 베이스 라는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주악기의 라이트모티브를 이 트랙을 만들면서 결정지은 걸로 기억한다. / 03. "양게 TV" - 사실 할 말이 많은 트랙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버전이 있었으나 그 버전은 '김해원'과 나 둘 다 몹시 아쉬워해서 새롭게 만들었다. 전의 버전이 밴드 풍의 음악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좀 더 EDM 풍이다. 만드는데 아주 오랜 시간과 공을 들였다. 어딘가 장난치는 듯한 느낌의 멜로디가 양게나 인터넷 이슈에 몰려드는 네티즌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 04. "현피 - 레나 (부산국제영화제 ver.)" - 피씨방에서 '민하영' 집으로 출발할 때 나오는 트랙이다. 앨범에 개봉 버전이 아닌 부산국제영화제 버전이 순서적으로 실린 이유는 '김해원'이 이 버전을 더 애정 하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버전은 현피멤버 아이들을 좀 더 극 밖에서 논평하는 듯한 차가움이 감돈다. 마치 갱스터를 보는 것 같은 이 나쁜 애들 이라는 늬앙스가 훨씬 강하다. / 05. "She’s dead" - 편집단계에서는 '민하영' 집에서 뛰어나오는 순간을 인점으로 잡아서 가이드곡을 깔았는데 '김해원'이 이 곡을 만들어오더니 인점을 현피멤버들이 댓글을 지우는 순간부터 놓았다. 덕분에 아이들을 돌아보는 '지웅'의 얼굴과 사람 시체를 앞에 두고서 자신들이 쓴 악플을 지우는데 정신이 팔린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훨씬 살아났다. / 06. "Post-it" - 학원에서 신상이 털린 '지웅'이 결국 포스트잇을 발견하는 장면에 쓰인다. 리버브를 먹여 신경을 건드리며 울리는 기타의 베이스음이 '지웅'의 심리를 정확히 건드린다. 원래 '필름'의 음악이다. / 07. "Catch The Murder" - 영화에서 '지웅'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에 깔린 음악이다. 트리거 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원래 'keep quiet'의 음악이다. / 08. "Keyboard warrior (B-cut)" - 카페에 처음 모인 현피멤버들이 '민하영'이 사실 악명 높은 키워 베카였다는 얘길 나눌 때 넣으려고 만든 곡이다. '김해원'은 이 곡이 자신이 가장 이 영화에 피트 되어서 만든 곡 중 하나라고 얘기한다. 다만 이 음악은 실제 영화에 쓰이지 못했다. 연출자로서 이 곡은 존재감이 너무 강해서 화면과 그 순간에 오가는 정보들을 다 잡아먹는다고 판단했다. / 09. "Socialphobia - The Reason" -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정서의 라이트모티브이다. 그 아이들은 왜 그런걸까? / 10. "Detectives" - '민하영' 집 베란다를 넘어가서 현장검증을 할 때 나오는 곡이다. 그 외에도 영화에 여러 번 사용되는데 장세민과 트윗공방을 할 때에도 쓰인다.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쫓아다니는 에너지가 잘 그려진 곡이다. 원래 '필름'의 음악이다. 당시에 '스필버그'의 '뮌헨' 오프닝시퀀스를 보면서 이 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던 걸로 기억한다. / 11. "Comeback 양게 TV" - 8비트 RPG 게임풍 까지는 아니지만 뿅 뿅 거리는 전자음들이 마음에 들어서 듣자마자 오케이 했던 곡이다.
12. "저스티스 님,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 '장세민' 이라는 캐릭터와 호텔 이라는 럭셔리한 공간을 그리기 위해서 버터 바른듯한 괜히 세련된 느낌의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역시 처음 듣자마자 오케이 했던 곡이다. 영화 안에서 인점의 타이밍이 기막히다. / 13. "수많은 살인마" - 역시 영화 안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쓰이는 곡이다. 달리는 에너지와 동시에 절대로 붙잡지 못할 것 같은 결말의 느낌이 공존한다. 원래 '필름'의 음악이다. / 14. "Can We Catch" - 대학교를 헤맬 때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반복되는 베이스가 존재하지 않는 헛것을 붙잡으려는 용민의 강박된 심리와 잘 어울린다. 원래 '필름'의 음악이다. / 15. "Ego Trip" - '민하영'의 캐릭터와 상황 그리고 정서 이 모든 걸 음악에 담아내려고 노력한 곡이다. 작업할 때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다. / 16. "The Kids" - 대학교에서 서울 올라오는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곡이다. 개인적으로 애정 하는 곡. / 17. "살인마가 살인마를 쫓는다." - 부산국제영화제 버전은 지금과 다른데 그 때보다 몇 십 배는 좋아진 케이스이다. "Socialphobia - The Reason" 의 라이트모티브가 발전되었다. 곡 후반에 음들이 떨리며 분절될 때와 '지웅'의 '용민'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의 싱크로가 절묘하다. / 18. "Is That You" - '용민'의 정체를 들은 다음 장세민 차에서 나와서 뛰어가는 지웅의 장면에서 쓸려고 만든 곡. 실제 영화에서는 쓰이지 않았다. '지웅'의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는 있으나 장면이 가져야 하는 에너지를 획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 19. "내가 이렇게 된 이유" - 처음에는 '용민'이에게 너무 연민을 품게 만드는 거 아냐 라는 경계심이 있었으나 편집본 위에 올려본 다음 오케이 했다. / 20. "Socialphobia - The Judge" - '김해원'이 천재였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 곡이다. 당시 '김해원'은 '김사월X김해원' 앨범과 공연을 준비한다고 정말 바쁜 상황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마감 때문에 둘이 며칠째 작업을 하고 있는데 둘 다 반 혼수 상태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곡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 21. "현피 - 도더리" - 차갑고 뉴트럴한 톤의 음악이 되려 현피를 하러 모이는 이 아이들이나 노량진의 풍경을 기묘하게 터치하는 지점이 있다. 원래 'keep quiet'의 음악이다. / 22. "Socialphobia - The End" - 라이트모티브는 박수이다. 집단, 군중이라는 이미지를 품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 전체를 이 곡 하나로 다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23. "Disconnected" - 용산전자상가를 나와 밤거리를 걷던 '용민'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 실은 이 영화 통틀어서 처음으로 '용민'이가 뒤를 돌아본 것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랬다. "The Kids"의 라이트모티브를 발전시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