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경 홍대 앞에서 만난 독특한 뮤지션들 중 '오롯이 어울리지'는 유난히 그 색채가 강렬했다. 대개의 신인 뮤지션들이 그렇듯, 그들 스스로의 젊음과 아이디어를 무기로 홍대 인디씬에 승부를 걸 때, ‘오롯이 어울리지‘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른스러운 진중함으로 관객에게 다가갔다. 얼핏 보면 재즈 밴드 같기도 했고, 좀 들어보면 대중가요 차트에나 나올 법한 팝발라드 밴드 같았다. 홍대씬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관현악의 울림은 특유의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에 이름 그대로 오롯이 어울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시영' 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2013년 '오롯이 어울리지' 의 싱글이 연이어 나왔을 때, 그들이 나아갈 미래, 정확히 말하자면,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인 '이시영' 의 행보에 주목했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밴드를 해체하고 돌연 새로운 음악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운드로 돌아왔다. ‘오롯이 어울리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는 원래부터 그런 뮤지션이었다. 홍대 인디씬의 흐름을 정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래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뮤지션.
'이시영'은 이번 디지털 싱글 [고래의 창자] 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하나의 소리로 결집시켰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사운드에 도전해왔던 그의 행보에 일종의 방점을 찍은 격이다. 조각조각 나뉘어 있던 그의 음악들이 하나로 맞춰진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이시영이라는 뮤지션의 결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의 음악은 함부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이번 신곡을 어떤 장르에 포함시키건, 어떤 스타일로 부르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제목 [고래의 창자] 는 성경의 한 대목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구약성서 중 요나가 신의 계시를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며 도망 다니다 고래의 뱃속에 들어간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오랫동안 여러 작가에게 영감을 줬었다. 시, 소설, 희곡, 심지어 만화에도 영향을 준 기록들이 있다. 대개 신의 계시로부터 도망친 요나가 이를 뉘우치고 반성한다는, 다분히 교훈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시영이 의미를 부여한 고래의 뱃속은 전혀 다른 의미로 듣는 이에게 묘한 여운을 남긴다. 마치, 잊고 싶은 추억들이 아직도 고집을 피우며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제 음악에는 영상미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을 읽거나, 시집을 읽는 것처럼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디지털 싱글, [고래의 창자] 는 그가 과거에 들려준 사운드의 종결이자, 앞으로 들려줄 새로운 사운드, 그가 보여주고 싶다는 새로운 이미지의 시작이다. 그래서 더욱, 곧 발매될 EP앨범이 기대된다. 그가 선보일 이미지는 과연 어떤 그림일지, 어떤 풍경을 담을 것인지 말이다. (원피스매거진 에디터 이승헌) ....

